바닐라 클럽 10부
바닐라 클럽 10부
10장
잠시 무료해졌다. 채팅방을 돌아다니면서 여자를 꼬시고 있다가 5명쩌 포기하자 끊고 가만히 드러누워
뒹굴고 있으려니 전화가 왔다.
[넌 정말 구제불능이야. 나하고 통화한 지 얼마나 됐다고 여자나 꼬시고 다니니?]
카마는 앙칼지게 말했습니다.
[난 그저 습관적으로...]
나는 그렇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정말 나는 여자를 꼬실 마음이 없었다. 뭔가를
하지 않고는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아 컴퓨터 앞에 앉은 거고 잠깐 떠벌렸을 뿐이었다.
[습관? 너도 통신 중독증 환자니? 안됐다 정말.]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정말 통신 중독증 환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나면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었고, 컴퓨터 를 켜면 습관적으로 통신을 하였다. 게임도 온라인 게임만 했습니다. 일을 할 때 빼
고는 거의 통신에 연결되어 있었다.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전자 메일이 와 있지 않을까 불안해서 계속
확인을 해 봐야 했고 직장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보다 통신에 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얘기할 때 더 안정
감을 느꼈다.
[그럼, 용서해 주는 겁니까?]
이해해 주는 거냐고 묻는다는 게 용서해 주는 거냐고 묻고 말았다. 완전히 카마에게 주눅이 들었는지 혓
바닥까지 비굴해졌다.
[그게 어디 금방 고쳐지는 병이니, 어디? 휴... 하지만 대신 약속해. 나 말고 다른 여자를 찾아 다니지
말기로. 그리고 있지? 이왕 통신을 하려거든 좀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해 봐. 이를테면 동호회에 들
어가서 제대로 사람들을 사귀어 본다든지, 아니 면 홈페이지를 만들어 본다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알았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 대답은 카마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겠다? 그런 대답이 어딨어?]
나는 점점 내 몸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내 대답은 예였다. [좋아. 그리고
힘 좀 내. 남자가 그게 뭐니? 그리고 전화 끊는대로 내 홈페이지로 와. 알겠지?]
홈페이지라니 금시초문이었다.
[예?]
카마는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내가 새 주소라며 가르쳐 줬잖아?]
카마는 새 인터넷 메일 주소가 kama@sutra.com이라고만 했었다. 홈페이지가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
다.
[그럼, 홈페이지 주소가 http://sutra.com입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카마는 도리어 반문했습니다.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아 참, 미안. 내 홈페이지 주소는 본래 http://yen.blue.or.jp/~kama거든. 너무 길어서 그래서 인터넷
메일은 짧고 간단하게 바꿨지. 넷 어드레스란 사이트에 가면 그렇게 만들어줘. 잘 받아 적었어?]
[받아 적긴 했는데... 이해가 잘 안되는네요. 그리고 주소 끄트머리가 jp로 끝나는 걸 보니 일본 사이트
에 홈페이지를 등록한 겁니까?]
[넌 그냥 http://yen.blue.or.jp/~kama로 찾아오기만 하면 돼. 그리고 네 아이디는 아수라, 비밀번호는
아루사야. 알겠지?]
카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나는 전화를 끊은 후에 바로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반신반의하면서 위치
를 적는 곳에 카마의 홈페이지 주소를 쓰고 go를 클릭했 다. 화면 왼쪽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쓰라는
상자가 나타났다. 그렇게 해서 겨우 카마의 홈페이지에 도달했습니다. 카마 개인 홈페이지라길래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누가 디자인해 주었는지 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파란 별들이 반짝이는 하얀 바탕의 밑그림
을 배경으로 화면 왼쪽에서 둥근 빨간 달이 떠올랐다. 그 달은 반원을 그리며 오른쪽 으로 떠가면서 점
점 기울더니 화면 중앙에서 초생달로 변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초생달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화면
을 꽉찰 정도가 되었다. 빨간 달의 중간쯤에서 작은 점이 나타나더니 제트기처럼 내게로 곧장 날아오면
서 커졌다. 스피커에서는 제트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엄지손톱만하게 된 그 점이 갑자기 그물이 펴
지듯 커지며 글자를 만들어 냈다.
[잘 왔어.]
스피커에서는 기분 나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 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폭발음이 나면서
화면이 꺼멓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 검은 화면은 평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둠이 살아 있는 듯 검은 화
면은 계속 꿈틀거렸다. 무엇이 나타날지 잔뜩 긴장한 채 화면 속의 어둠에 눈을 붙들어 매두었다. 타이
프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화면 위쪽부터 글자가 찍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긴 내 세계야.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 손님이지. 너를 위해 만든 거야. 어때?]
나를 위해? 나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 글자들은 별처럼 반짝거리기만 했습니다.
[불행스럽게도 넌 내 기대 이하야. 그래서 너를 단련시키는 긴 여행을 보내는 거야. 마음 편하게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러 가 는 게임을 합니다고 가볍게 생각해도 좋아. 이제 지도가 나올 거야.]
글자들 아래로 오래된 보물지도처럼 생긴 누런 지도 한 장이 펼쳐졌다. 지도에는 산과 계곡과 강과 들판
과 마을을 잇는 여러 갈 래의 길들이 보였다. 그러나 어디가 출발점이고 도착점인지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도 중앙에 우뚝 솟은 산 아래 초록색 으로 그려진 마을이 있었다. 지도 아래로 글자가 찍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올 때마다 네가 갈 곳이 초록빛으로 표시되어 있을 거야. 너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오늘은
산 아래 마을로 가. 마을 을 둘러본 후에 뭘 보고 뭘 느꼈는지 내게 편지를 써. 다음 목적지에 가서도
마찬가지야. 내가 가르쳐 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지마. 널 지켜 보겠어. 잘해 봐.]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마우스를 움직여 초록색 마을을 클릭했습니다. 그러자 마을의 한 거
리를 확대된 듯한 지도 가 화면을 채웠다. 남북으로 뻗은 큰 길 양쪽에는 1930년대 프랑스 풍 목조 상점
들이 만화처럼 그려져 있었다. 화면 제일 위, 파 란 하늘에 free market이라는 이탤릭체 글자가 구름 모
양으로 적혀 있었다. 내가 온 곳이 어디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네비게이터에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박스
로 눈길을 돌렸다. http://www.freemarket.com /index.htm라고 적혀 있었다. 프리마켓 주소를 알았으니
북마크를 해 놓기만 하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었으므로 조급할 게 없었다. 그래도 카마가 굳이 프
리마켓으로 왜 보냈는지 궁금했습니다. 컬러 오브 환타지, 스몰 해피니스, 매직 파워, 맥시멈 엑스터시 등으
로 된 상호로는 무얼 파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거 리 중앙에 있는 제일 큰 상점, 스몰 해피니스를 클릭했습니다. 물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어야 했
다.
[저희 사랑의 악세사리 전문점에 잘 오셨습니다. 오늘의 기획 상품은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금줄입니다.]
헤죽거리는 대머리 남자 아래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시선을 반쯤 잘린 화면 중앙의 사진으로 옮겨
갔다. 젖가슴을 드러낸 백인 여자가 활짝 웃으며 약간 비스듬히 서 있었는데 그 여자의 까만 젖꼭지와
젖꼭지가 금줄로 이어져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금줄 끝에 달린 집게가 젖꼭지를 물고 있는 모습이
었다. 여자 사진 아래로 화면을 움직였다. 가격은 14달러 95센트. 비자와 마스터 카드가 가격 아래 그려
져 있었다. 그런 걸 악세사리 라고 합니다는 게 좀, 어쨌거나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아서 그 상점을 빠져 나
와 버렸다. 다음으로 들른 상점은 컬러 오브 환타지로 스몰 해피니스의 건너편에 있었다. 멋들어지게 휘
갈겨 쓴 간판 글씨가 마음에 들어 클릭했습니다.
[당신같은 행운아가 또 어디 있을까요? 저희 인형 전문점에서 당신을 위해 특별 상품을 준비해 두었습니
다. 당신이 남자이면 바 바라를 여자이면 잭슨을 눌러 주세요.]
나는 파란 눈의 금발인 바바라의 코를 마우스로 꾹 눌렀다. 그러자 바바라가 나체로 소파에 기댄 채 고
혹적인 웃음을 띄우며 나 타났다. 사진 아래로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이번에 준비한 상품, 바바라와
함께 떠나는 환상 여행은 당신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성으로 만들어 드릴 겁니다. 실물 크 기로 제
작된 바바라의 몸은 특수 실리콘 재질로 되어 있어서 인체와 꼭같은 느낌을 주며, 온기까지 느껴집니다.
만약 금발이 싫 증나면 어떻하냐구요? 붉은 가발과 검은 가발을 함께 드리는 건 물론 다양한 색깔의 렌
즈와 모조 손톱까지 끼워 드립니다. 잠깐 만요!]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려고 마우스를 누르려던 참이었다.
[바바라의 하이라이트를 말씀드리지요. 바바라의 그곳은 정조대를 채우듯 잠궈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
다. 열쇠는 단 하나, 당신 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와우! 굉장하지 않습니까? 특별 세일 가격 249달러
95센트에 드립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런 인형에게 정조대를 채우겠다는 발상이 웃겨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인형을 몰래 숨겨 놓고 지낼
텐데 정조대가 무슨 소 용이 있겠나 싶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상점은 매직 파워. 컬러 오브 환타지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거기는 남성 모조 성기
전문점이었다. 미국 섹스 샵에서 몇 번 물건들을 본 적이 있어서 별 관심은 없었지만 어떤 괴상한 걸 만
들어냈나 싶어 신상품이라고 크게 적힌 파워 스네 이크를 클릭했습니다. 길이가 12인치라는 파워 스네이크는
투명한 실리콘 재질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안이 훤하게 보였는데, 그점이 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척
추나 목 뼈를 옮겨놓은 듯 휘어진 뼈 모양의 골격이 파워 스네이크의 기능을 무언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므로 어떤 체위로도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은 도리어 구차하게 보였다. 파워 스
네이크는 바이브레이터가 달려 고환을 축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는 모조 성기를 봤을 때처럼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격은 119달러 99센트. 만만찮았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이런 걸 내놓고 판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여성의 성을 엄격하게 통제 하는 가부장적 사회니까 의외로 살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
각이 머리를 스쳤다. [삽입이 뭐 그리 좋다고...]
나는 중얼거리며 다음 상점으로 향했습니다. 매직 파워에서 뚝 떨어져 길 끝 쯤에 있는 스콜피오였다. 락 그
룹 스콜피언스를 떠올리 며 들어간 그 상점에서는 커다란 황금색 전갈 한 마리가 독이 든 꼬리를 끄덕거
리며 나를 반겼다.
[당신의 별자리가 전갈좌가 아니더라도 환영합니다. 스콜피오가 개업 2주년을 맞았습니다. 손님께 감사
의 선물로 기획 상품 초 특별 세일을 마련했습니다. 짜잔! 살아있는 전설, 바이브레이터 스콜피오! 200
달러인 이 상품을 파격적인 가격 120달러에 모시겠 습니다. 거기다 그룹 스콜피언스의 베스트 씨디까지
끼워 드립니다.]
나는 바이브레이터란 말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 상품이 뭔지 궁금했습니다. 나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바이브레이터 스콜피오이란 글자를 클릭했습니다. 화면에 나타난 사진은 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
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사진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다리를 쫙 벌린 여자의 음부 전체를 황금
빛 전갈 한 마리가 가리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전갈의 꼬리가 항문에 꽂혀 있는 걸로 보였다. 어쩌면 항
문을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어 가린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바이브레이터 스콜피오의 용도
를 알 수가 없었다. 아래에 적힌 설명을 읽어 보았다.
[획기적인 신상품 바이브레이터 스콜피오는 여성 여러분의 모든 성감대를 동시에 자극하도록 제작되었습
니다. 스콜피오의 섬세 한 입은 크리토리스를, 다리는 질을, 꼬리는...]
더 읽어보지 않아도 뻔한 소리였다. 그런데 그 사이 잊고 있던 카마가 왜 그때 문득 떠올랐다. 아마도
카마가 나를 왜 그런 곳 으로 보냈나 궁금해서였을 것이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섹시 언드웨어로 스콜피오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길 끝에 있었다. 섹시 언드웨어는
상호 그대로 섹시한 속옷 전문점이었는데 입구가 여러 개였다. 먼저 섹시 웨어라고 적힌 입구로 들어갔
다. 원피스 수영복처럼 몸에 짝 달라붙는 속옷에서부터 비키니 스타일의 속옷까지 여성잡지에서 보아왔
던 그렇고 그런 여성용 속옷 들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거의 모두가 망사나 스토킹 천처럼 아주
얇은 천으로 되어 있어 젖꼭지나 음모가 그대로 보인 다는 정도였다. 그중에서 내 시선을 끈 속옷은 원
피스 수영복처럼 생겼는데 젖가슴 부분만 동그랗게 파인 것이었다. 모델의 가슴이 커서인지 그 런 속옷
이 처음이어서였는지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가격은 55달러로 싼 편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내 시선을 붙들어 매놓은 건 가터 벨트였다. 허리를 조이면서 스토킹이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가터 벨트는 외국 영화나 포르노에서나 나올 뿐, 한국 여배우들이 입고 나온
걸 본 적이 없었다. 왜 다른 건 다 따라하면서 가 터 벨트를 잘 입고 나오지 않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
었다. 영화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이제껏 한 번도 가터 벨트를 한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스토킹이
너무 긴 탓인지 치마를 벗겨 보면 허벅지에 밴드를 둘둘 말아 동그랗게 만든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다리
가 짧은 한국 여자들에게 스토킹은 너무 길었다.
그러나 내 상상 속에서 곽 재원은 언제나 가터 벨트를 하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가터 벨트가 있었다.
나는 레이스로 장식된 검은 빛이 감도는 초록색 가터 벨트의 가격을 마우스로 눌렀다. 곧바로 주문서가
화면에 나타났다. 카마가 준 신용카드 번호와 내 주소를 적어 넣었다. 누구에게 주려고 주문한 건 아니
었다. 여자 속옷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가터 벨트였다.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 는 주문
서를 바로 프린트했습니다. 프린터에서 나오는 주문서를 눈 앞에 보이는 벽에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벽에 덕지덕지 메모지를 붙여 놓는 건 내 버릇이었다. 카피를 쓸 상품 사진이나 중요한 약속을 쓴 메모
지들이 아직도 그대로 벽 에 붙어 있었다. 깨끗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들을 다 떼내고 도배를
하든지 색지를 붙여 정리를 하려고 들겠지만 난 별 로였다. 그냥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붙어 있다가 제
풀에 떨어지면 주워 치우는 정도였다.
섹시 레더 웨어를 파는 입구를 찾아갔다. 속옷의 재료가 가죽이라는 것 빼고는 섹시 웨어를 파는 곳의
내용물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포르노에서 볼 때는 징그럽기만 하던 그
가죽옷들이 감히 만질 수도 없는 값비싼 보석같이 빛이 났다. 가죽이라 속이 내 비취지 도 않고 검고 차
가운 질감이 공포를 자아내는 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같은 게 있었다. 마치 금지된 일을
몰래 할 때의 짜릿함 같은 거였다.
얇은 체인이나 쇠 조각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목걸이나 브래지어, 허리띠, 팬티와 가터 벨트, 그리고 긴
부츠와 팔뚝까지 입는 손가락이 드러나는 장갑 하나하나를 차례로 눈여겨 살펴보다가 한 세트로 파는 가
죽 속옷 사진 앞에서 손을 멈췄다. 체인을 여러 겹으로 겹쳐 축 늘어뜨린 목걸이와 젖가슴이 드러나게
구멍을 뚫은 브래지어와 단단히 허리를 졸라매고 있는 가터 벨트와 음부가 드러나게 갈라진 팬티와 발부
터 허벅지까지 꽉 끼는 가죽 부츠를 신은 모델이 말 채찍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각각의 가격을 다 합
치면 300 달러에 가까웠다. 그걸 사서 카마의 남편에게 보내주면 놀라겠지 하는 생각이 떠올라 피식 웃
고 말았다. 카마야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중독자인 남편에게 물이 들지 않
았다면 왜 나를 이런 곳으로 보냈겠 나 싶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인터넷 메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잘 구경했습니다. 근데 저한테는 필요없는 물건들만 잔뜩 있더군요. 왜 저를 이곳으로 보냈는지 얘기
해 줄 수 있습니까?]
내가 식탁에 앉아 광어회를 잔뜩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을 때 카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카마는 다짜고
짜 말했습니다.
[아무 느낌도 없었단 말야? 거짓말 하지마.]
나는 대꾸를 하려고 입에 있던 광어회를 재떨이에 뱉어냈다. 그러나 카마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쇼핑을 해. 카드는 뒀다 뭐해?]
[뭘... 말입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거, 네가 갖고 싶은 거. 아무 거나 좋아. 그것들로 네 방을 채워. 그리고 주문한 목록
은 내게 보내.]
[그런 게 필요가 없는데요?]
카마는 소리를 빽 질렀다.
[시끄러! 그냥 하라면 해!]
카마가 나를 너무 막 대하는 게 아닌가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나는 카마에게 그럴 처지가 못되었다.
[알았습니다. 특별하게 필요한 건 없습니까? 혹 제가 빠뜨리면 안되는 물건이 있다든지...]
[그래, 바로 그거야. 이제야 고분고분 말을 잘 듣네. 누가 주인인지를 깨닫는 거, 너한테는 그게 제일
중요해.]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듣는 자이지 말하는 자가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잊지 마. 쇼핑한 물건 목록! 내가 필요한 건 그것뿐이야. 알겠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