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임신 중
당시 아내는 임신 8개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어렵게 가진 첫 아이, 그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 건 아내가 다니던 병원의 담당 간호사가 아내의 친구 동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림 밑천을 얻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 거였다.
아내의 뱃속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우리들 성생활에도 장애가 생겼다.
예전처럼 정상위로는 거의 불가능했고, 후배위나 측와위를 택해야 했는데
어느 날은 내 자지 끝에 뭔가 닿는 거 같다 했더니
자기도 그런 느낌이라며 그날 부로 성행위 자체를 거부하는 거였다.
이유인즉 자기 딸 몸에 어찌 아비의 성기를 비빌 수 있냐는 말이었다.
화는 났지만 항거할 수 없는 논리였다.
대신 자기의 손 또는 입으로 내 정액을 빼주었으므로 나도 더 보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도 점점 횟수가 줄어들었다.
당시 이틀에 한번 꼴은 섹스를 즐기던 우리였으나 날로 줄어들어 열흘에 한 번 할까 말까할 정도로까지 줄어 있었다.
거기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의 회사 일이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주로 당일치기였으나 전국을 무대로 영업 출장을 다녀야 했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밤 두 세 시가 보통이었다.
그런데 토요일 출장을 인천으로 가게 된 게 화근이었다.
회사가 부산이라 인천은 너무 먼 게 사실이었고, 더구나 주말이니 더 한층 그랬다.
그렇다고 기분이 썩 나쁘지도 않았다.
내려오는 길에 천안에 있는 동서와 술이라도 한잔하고 내려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새벽 같이 출발한 길이건만 고속도로는 그리 시원하지가 않았다.
아직 초여름이라 짜증날 정도의 더위도 아니었건만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망할, 도로 수리하는 곳은 왜 그리도 많은지 그 탓이 주행을 더욱 지체하게 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엔 거의 오후 두 시가 넘어 그때껏 기다린 구매 담당자가 짜증 섞인 얼굴로 나를 맞았다.
구면이긴 하지만 영업자인 내가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다는 건 자살행위다.
그래서 말꼬리를 돌려...
"김 대리님 사모께서도 임신 중이라 했지요?"
"아마 다 다음달 정도..."
"오 그래요, 제 아내도 그쯤인데..."
그 말이 통한 걸까, 그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말하자면 동병상련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동지의식이 통한 거다.
자기도 딸이랬다.
더 이상의 대화 진전은 위험하다.
그는 내게 인쿼리(견적요청서)를 건네주면서 가격 수준도 넌지시 귀뜸 해주는 거였다.
그 너른 상담실에 둘밖에 없었으므로 가능한 귀뜸였으리라.
아무튼 차를 돌리는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아내는 2녀 3남 중의 막내다.
그리고 천안 처형은 그 맏이다.
일찍이 장모가 세상을 떠신 집안에서의 처형은 아내에게 엄마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이 차가 열 다섯 살이나 나니...
나와 동서도 그만한 나이 차가 나서 처음 결혼할 때는 처삼촌 같은 기분이 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같이 술자리를 몇 번 하다보니 그런 기분이 점점 낮추어져 이젠 형님 뻘 정도로 가까워져 있다.
동서래야 둘 뿐이라 더더욱...
차는 다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주말인 만큼 그만한 정체야 예상했지만 너무 심했다.
주말 피서에 나선 사람들 때문이리라.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천안에 들렀다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저번처럼 술을 할 양이면 아예 푹 자고 술이 완전히 깬 뒤 내려오라는 말을 심심 당부했다.
앞전엔 술이 덜 깬 상태로 새벽에 내려가다가 큰 사고를 낼 뻔한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천안 동서 집에도 전화를 하여 그 당부를 할 것이 분명했다.
천안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동서는 없었다.
이미 아내에게 전화를 받았다면서 나를 맞아들이던 처형은 형님은 어제저녁 친구들과 낚시를 떠났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내가 현관에서 멋쩍게 서 있자 술 대적은 자기가 해주겠다며 나를 끌어들였다.
아마도 내 모습은 닭 쫓던 개 모습이었을 것이다.
저번 형님과 같이 술을 마시던 그 술집이 자꾸 어른거렸으니까.
그날 밤, 한 아가씨를 형님과 같이 함께 주물렀다는 사실... 그러면서 뭐가 그리도 좋았든지 마치 아이들처럼 깔깔거렸던... 질퍽한 가랭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꺼내어 그 냄새로 술잔을 채워 서로 돌려가며 마셨던... 형님의 주태가 원래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마 나를 위해 오버액션을 한 게 아닐까 여겨는 지지만 아무튼 그 일로 우리에게 거리낌이란 게 사라져버린 건 사실이다.
그런 생각들 속에 멍청하게 소파에 파묻혀 있는데 어느새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처형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오늘 같은 주말에 음식 만드는 건 정말 싫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내뱉었다.
아마도 형님에 대한 서운함을 내게 내보이려는 거 같았다.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잡더니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처형과 단둘이서 택시를 탄 것도 처음이지만 좀은 흐트러진 듯한 그런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형님은 50대 초반, 처형은 40대 후반이었다.
흔히 갱년기라는 그 즈음의 나이인 셈이다.
아무래도 내가 그들을 이해하기엔 아직 이르다.
우리가 내린 곳은 그리 외곽은 아닌 듯한 외식 촌 같았다.
민물 매운탕, 닭 요리, 꿩 요리, 멧돼지 요리... 뭐 그런 류의 간판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그 옆엔 또 동동주 주점들이 늘려 있고, 노래방에다가, 카바레인 듯한 조립식 건물도 보였다.
우린 '천안삼거리'란 간판이 붙은 집으로 들어갔다.
토끼 매운탕에다가 소주를 시켰다.
처형의 술 솜씨는 내가 안다.
처음 한 두 잔에 얼굴이 발개지고 마는...
하지만 그게 처형의 주량이라곤 여겨지지 않는다.
오늘이 그걸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생각 탓일까, 나는 안주가 익기도 전에 벌써 반병이나 마신 것 같다.
처형은 나올 때의 우울한 모습과는 달리 내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이모나 고모뻘이 어린 조카가 귀엽다고 내려다보는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조카들 이야기를 했다.
큰조카(女)가 애를 가졌다는 얘기와 군에 간 작은조카(男)가 다음 주쯤 휴가를 나올 것 같다는 얘기, 그리고 다음 달에는 동생(아내)을 처형댁으로 올려 보내라는 부탁까지...
"윤서방, 요즘 많이 불편하지? 민주(아내) 수발도 그렇고, 잠자리도 그렇고...?"
"불편하긴요. 민주가 여러 가지로 더 힘들지요!"
"윤서방은 참 착해! 그래서 참 좋아!"
입에 발린 말일지 몰라도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말 속에 형님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 걸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윤서방, 조금만 참아! 어떻게 얻은 자식인데...?"
그랬다, 우린 결혼 6년만에 겨우 임신에 성공했다.
그 일로 하여 그간 많이 삐꺽거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처형이 나서서 말렸다. 처형이 내게 말을 내리는 건 '처형은 또 다른 누나'라고 자신이 한 말을 입증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런다는 걸 나는 안다. 사실 처형과의 관계는 피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려운 관계가 아니던가.
처형의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술을 따러주자 잔을 든 처형의 눈꼬리에 잔주름이 접히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그처럼 자세히 본 일이 없긴 했지만 의외로 주름이 짙어 보였다.
고동색의 아이라인 속으로 드러난 인생의 깊이를 들여다보며 일종의 연민을 느껴야 했다.
나를 위로하려 나온 게 사실이지만 어쩜 처형이 내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에야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나도 모르게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처형의 손을 붙잡게 만들고 말았다.
처형이 짐짓 놀랐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퍼뜩 손을 놓고 눈을 깔았다.
그리고 변명처럼 떠듬떠듬 말을 흘렸다.
"언젠가 처형이 해주신 그 말, '처형은 또 다른 누나'라 하신 말씀 저 가슴 깊이 새기고 있어요! 사실 저 누나가 없잖아요. 누나의 사랑이 뭔지 모르고 컸거든요. 그래서......"
변명이 통했을까, 내가 놓았던 손을 처형이 잡아오는 거였다.
그리고 두 손으로 꼭 감싸 쥐고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내가 술을 마시기 위해 손을 빼자 자기도 술잔을 들며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우리 여기까지 나왔는데 스트레스라도 좀 풀고 가지?"
나는 마다할 리 없었다.
마다할 수도 없었다.
우린 그곳을 나와 노래방과 나이트클럽 중간에 서서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먼저 발걸음을 옮긴 건 처형이었다.
노래방이었다.
어쩜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니, 반대일 수도 있다. 단지 논란일 뿐이다.
나는 벌써 그런 논란을 즐길 만큼 어지간히 취해 있었다.
처형의 발걸음이 제법 비틀거렸다.
그 비틀거림, 주량과는 상관이 없으리.
통상적으로 분위기에 더 많이 취하는 법이니까...
노래방 안에서 우린 어쩔 수 없는 세대차를 느꼈다.
처형의 슬로우 트로트와 나의 퀵 발라드의 언발란스...
그러나 그건 그리 낯선 것만도 아닌 적당한 거리의 언발란스였다.
얼마든지 좁힐 수 있는...
얼마든지 좁혀지는, 오히려 그래서 좁혀질 수밖에 없는 필요불가분한 간격이었다.
그래서 우린 필연적으로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몸을 부딪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취한 자들만이 가능한 불필요한 고성 방가에 불필요한 간들 웃음들...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멈출 수 없는, 도저히 멈춰지지 않는 그 웃음 속에서 내 어깨에 얹혀오는 처형의 고개에 아찔함도 못 느꼈고, 내 손이 처형의 허리를 감았어도 처형의 살떨림도 감지되질 않았다.
어느샌가 처형의 물컹한 젖살이 가슴에 눌려져 왔어도 내 마이크는 떨지 않았고, 아랫도리에 처형의 허벅지가 기대어 왔어도 그놈은 발악하지 않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너무도 통상적인,
단지 조금 취한 것일 뿐인 그 현상을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바램일 뿐인 나의 오해였다.
갑자기 내 마이크를 뺏어간 처형이 도망 다니느라 박자를 놓쳐버리고 악을 서댈 때,
마이크를 뺏으러 따라가던 내가 등을 돌린 처형을 불끈 안아 번쩍 처들고 말았을 때,
내 앞섶은 불화덕 속의 무쇠처럼 바짝 달구어져 있었고, 처형의 몸도 단칼에 요절이 나버릴 것처럼 팽팽히 긴장되어 있었던 거 같다.
그녀의 몸이 동짓달 문풍지처럼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큰 객기를 부렸는지 모르겠다.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허공에서 바들거리던 몸, 단지 한 남정네 앞의 보지 달린 여인일 뿐인 몸,
그 몸통의 중앙을 내 손이 비집고 있었던 것이다.
물컹했다.
그녀의 몸이 순간적으로 비틀렸다. 그리고 고개로 뒤를 밀었다.
내 어깨가 조금 밀렸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저항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만 산중 메아리처럼 방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내 손바닥에 흥건한 감촉이 전해오는 순간 나는 손을 뗐다.
그리고 마이크를 뺏어선 돌아섰다.
그녀도 내가 했던 것처럼 등뒤에서 나를 안아 왔다.
그리고 노래의 굴곡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내 가슴을 더듬었다.
내가 했던 것처럼 위험한 더 아래로 내려가진 않았다.
그때 호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렸으므로 우리들의 몸부림은 그 즈음에서 토막이 났다.
아내였다.
어디냐기에 노래방이라니까 "절대로 오늘 밤 내려오려 해선 안돼! 알았지? 알았지?" 그 말만 반복하곤 끊었다.
흥이 깨진 우린 그곳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처형은 예전의 그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돌아오는 택시 속에서 우린 거의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집안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그랬다.
발그레하게 달았던 볼은 회복되어 있었다.
서로 민망해진 우리는 거실 소파에 떨어져 앉아 그녀는 TV를 켜서 그걸 들여다보고, 나는 주방 쪽 진열장만 바라보고 있다가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술 다 깨버렸지! 우리 한 잔 더 할까?" 하며 진열장 속의 양주를 꺼내고 냉장고에서 우유와 바나나, 수박을 갖고 와 접시에 쓸어 놓았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나와선 나도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에 내가 갈아입을 옷으로 형님의 것인 듯한 가운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걸 들고 아직도 불룩해 있는 앞섶을 누르며 "너무 까불면 못써!"라 핀잔했다.
그런데 저쪽 구석 옷걸이에 방금 갈아입은 그녀의 옷들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 금방 벗어낸 듯한 팬티가 놓여 있었다. 육안으로도 젖은 앞부분이 흥건해 보였다.
나는 다시 앞섶을 쓸어 쥐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얌마, 너 하기에 달린 거야!!"
사실 난 너무 굶었다.
너무 굶어 피골이 상접한 상태다.
피골상접한 놈이 왜 이리 살이 쪄있는 거니?
살찐 게 아니라 못 먹어 퉁퉁 부은 거야!
속으로 그런 말장난을 하면서 그놈 위에다 가운을 걸쳤다.
불룩한 위를 허리끈으로 질끈 동여매고는 밖으로 나왔을 때 처형은 TV를 끄고 전축 앞에서 레코드판을 고르고 있었다.
"윤서방은 어떤 음악 좋아하지?"
"저야 가리는 게 있나요. 음악에 별로 조예도 깊지 않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어때?"
"좋아요!"
나도 더러 들어본 '카루소'란 곡부터 흘러 나왔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뭔가 깊은 감상에 젖어서는 형님이 자기에게 청혼을 하는 그 장소에 그 '카루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양주를 소주 마시듯 홀짝홀짝 마셔댔다.
그녀의 볼은 더 이상 붉어지지 않았다.
불빛이 그래서인지 볼 살이 점점 하얘지는 거 같았다.
술병이 반 이상 비워졌을 때 그녀의 눈빛이 강물에 물감 풀리듯 흩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더 이상 마시게 해선 안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그녀의 잔을 뺏었다.
그녀도 억지로 저항하지는 않았다.
좌우로 흐느적거리던 그녀의 고개가 소파 등받이에 쓰러졌다.
나는 한 잔을 더 따러 마시고 병 뚜껑을 닫아 진열장 속에 도로 넣고 접시도 치웠다.
그리고 혼자 열창 중인 전축을 끄고 그녀를 번쩍 안아 방안으로 옮겼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풀려 있었다.
침대 위에 내려놓고 그녀의 모습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사지를 大자로 벌린 모습이 "날 잡아 잡수셔!" 하는 모습이었으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여인인 것만도 분명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눈에 든 환상을 털어 내려 애쓰며 장롱을 열어 이불 하나를 꺼내 그녀 위에 덮어 주었다.
거실로 나온 나는 방금 챙겨 넣었던 술병과 안주 접시를 다시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막 한잔을 마시고 다음 잔을 채우려 할 때 요란한 전화벨이 울려댔다.
처형을 깨울 수는 없었다.
깨워지지도 않을 거였다.
수화기를 들었다.
다름 아닌 동서였다.
"아, 형님! 저 윤서방입니다."
"미안쿠만. 가까우면 지금이라도 당장 올라갈텐데... 그래, 술이라도 한 잔 했나?"
"네, 처형 덕분에..."
"그래 그 사람은...?"
"벌써 곯아 떨어졌어요!"
"그 사람 나한테 불만 많지?"
"뭘요, 늘 혼자 계셔야 하니까 그러시겠죠..."
"그래 맞아! 애들마저 다 나가버리니까 모든 화살이 내게만 집중 되군. 자네들은 아직 괜찮지?"
"우리야 아직 젊잖아요."
"그래, 그래! 자네라도 우리 그 사람 잘 다독여 주게! 모처럼 온 건데 미안하네..."
그리고 끊겼다.
들리는 목소리로 보아 형님도 좀 취한 듯 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방에다 눕혀둔 처형이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몸도 못 가누었지만 전화벨 소리와 통화 내용을 들은 모양 같았다.
"그이지?"
"네!"
"뭐래?"
"나라도 처형을 잘 다독여 달랬어요!"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바 없었다.
남편에 대한 증오의 비웃음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아마 후자의 뜻이 더 강했던 모양이다.
"가서 자자! 우리......"
내 가슴으로 엎어져 오는 그녀를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안아들고 침대로 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