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43화
야화 43화
"혼자 있기 무서워요! 같이 가요"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들고 돌아 와 보니, 토끼는 말끔하게 먹어 치우고 없었다. 잡아 온 멧 돼지를 금전표 앞에 내 던져 주었다.
"맹수는 먹이를 먹고 있을 때 다가가는 것이 제 일 위험한 것이오"
"왜 그런 것이지요"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축생(畜生)이고,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오"
옆으로 누워 있던 몸을 간신히 바로 세우고, 배를 깔고 엎드린 체 앞 발 양 다리 사이에 멧돼지를 끼고, 가장 부드러운 복부와 내장을 파 먹기 시작 하였다.
"저것이 짐승이라는 것이오! 우리가 먹이를 빼앗을까 보아서 앞 다리 사이에 끼고 먹는 것이 보이지를 않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방 안으로 피해 줍시다"
내 집이란 좋은 것이다. 돌아 올 곳이 있는 내 집이란 내 인생이 응축 된 곳이다. 누가 먼저 라고 할 것도 없이 경쟁이라도 하듯 옷을 벗어 던지고 천지합벽 18초식의 무공 수련에 돌입을 하였다. 비명 아닌 비명이 터지고 포효 아닌 포효가 몇 차례 지나갔다.
금전표가 놀라 몇 번이나 움찔거렸으나. 너무 쇠약해져 있어서 일어나지를 못 하였을 뿐이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기운이 남아 있었다면 도망쳤을 것이다. 아침이 되어 나가 보니, 멧 돼지를 거의 먹어 치운 상태였다.
아직도 기운을 차리고 회복을 하려면 하루 이틀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배를 들어내고 느긋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경계심을 풀었다는 증거였다. 5월로 접어들려는 산야는 서서히 옷을 갈아 입을 준비를 시작하느라 녹음이 짙어 가고 있었다.
"하하하... 팔자 좋은 상전을 만났구나. 네 놈을 위해 오늘도 사냥을 다녀 오란 말이냐?"
천 풍림의 웃음소리에 놀라 고개를 쳐 들더니, 풍림의 눈과 눈이 마주치자 도로 머리를 땅바닥에 떨어트리고 눈을 감았다. 풍림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는데도 그대로 가만이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함녕이 살짝 다가서서 만지는데도 가만이 있었다.
"동물이란 이런 것이오. 한 번 믿으면 이렇게 온순해진다오. 가장 사냥 하기 까다로운 것이 이 금전표 인데. 죽을 고비에 서자, 인간에게 의지를 해 왔다는 것이 내게는 감동으로 다가 왔소"
"놀라워요. 인간에게 의지 해야만 살 수 있다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
"하하하...지혜라고 하기 보다는 본능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오. 정말 놀라운 경험이오. 앞으로는 함부로 사냥을 하기도 어렵게 되었구려"
"가요! 우리도 뭘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럽시다. 갑시다"
누워 있는 금전표를 한 두 번 탁탁 다독여주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숲 속의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금전표였다. 사냥꾼 들이 제일 많이 다치는 것은 금전표였다. 언제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언제 뛰어 내리는지도 모르게 숲 속에서 아니면 나무 위에서 습격을 하는 것이 금전표인 것이다.
사흘 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금전표 가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려니 했지만 친구를 잃은 것처럼 서운 하였다.
"참으로 운명이란 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금전표를 두고 하는 말이오? 하기야 우리가 돌아 오는 것이 하루만 늦었어도 살아 남기 힘들었을 것이오"
"하느님을 믿지는 않지만, 신의 안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존재 하는 것 아니겠소?! 역병으로 병자들이 퍽퍽 쓸어져 나갈 때, 나도 모르게 오오~ 하나님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 왔소. 인명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홍택에 있는 마교를 그대로 두자고 한 것이오. 우리가 마교를 섬멸 하기 위해서 수 많은 인명을 살상 할 것을 아신 하나님이, 역병을 통해서 인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오"
"호호호...자기 스스로 최면을 걸지 말아요. 지금 금전표를 만나게 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하는 것을 생각 하는 거죠?"
"그냥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라고 보오, 인생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드오. 사부인 누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금전표처럼 못 먹고 굶어 죽지나 않았을까? 만약 함녕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어찌 바뀌어 가고 있을까? 육두자를 만난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금전표가 홀연히 왔다 가 홀연히 사라졌는데 왜일까? 불가에서는 불가육통(佛家六通) 중에 숙명통을 터득하면 우리 인생을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고 어둠 속을 헤매며 더듬고 살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것을 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우리 앞 날을 내다 보고, 우리 앞날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정해진 앞 날이라는 말인데, 희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하하하...오늘보다는 내일이 좀더 났겠지 하는, 희망을 먹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말이로군요"
"목표는 항상 변하는 것이에요. 한 나라의 황제가 되어야겠다 했는데, 황제가 되고 나면 이웃 나라를 집어 삼켜야 겠다. 그리고 이웃 나라를 집어 삼키면 이제는 세계를 모두 발 아래로 두어야 하겠다 하고, 항상 더 더 더, 더 큰 목표를 세우게 되는데, 황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하하하... 나는 목표 따위는 세우지 않소! 다만 신념이 있을 뿐이오" "어떤 신념이오?"
"더 이상 가지지 말자!"
"네에?...더 자세히 말을 해 봐요?"
"마누라는 함녕과 봉선화 그리고 홍아옥 셋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다른 여자는 넘보지 말자"
"호호호... 고마워요 그 다음은요?"
"그 이상 뭐가 더 필요 하오. 재화를 가지게 되면 도둑이 들까 봐 고민을 해야 하고, 수하가 많아지면 먹여 살려야 할 걱정을 해야 하고, 우리 세 사람 만이라면, 가지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가질 수 있지를 않소?!"
"이 산중에서만 산다면 야 그럴 수도 있지만, 어울려 사는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그대야 가족이 있으니, 세상 밖으로 나가 어울려 살아야 하겠지만, 나는 그대들 세 사람이면 충분하니, 꼭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바깥 세상이라는 것이 그리 탐탁하지 만은 않소"
"육두자를 수하로 거두어 들인 것이 불만이로군요"
"불만이라고 할 것 까지 야 뭐가 있겠소! 하지만, 여기를 침범 당하고 싶지는 않구려"
"알았어요! 여기는 오직 우리 두 사람만의 것으로 하자는 것이로군요. 우리가 무림에서 활동을 하려면 작으나마 우리들의 거점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지으라고 한 것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도록 한 것이에요"
"그것은 어떤 의미요?"
"성곽을 사수해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언제나 사상자가 많이 나는 것이에요. 쉽게 버리고, 다른 자리에 또 거점을 만들면 된다는 뜻이에요"
"하하하... 함녕이 잘도 버리겠소! 함녕은 버린다고 해도 나는 지킬 것이오! 함녕이 지은 성곽을 내 준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 얼추 된 것 같은 데 가보지 않겠소?"
"거지 영감이 이 산속까지 따라 붙겠다고 하면 어찌 하지요?"
"노형님 아니라 황상이 오겠다고 해도 여기만은 안 되오"
"그래도 따라 붙으면요?"
"절교를 하는 방법 밖에 없지 않겠소?"
"봉선화와 아옥은 요?"
"그들이야 함녕과 하등 다를 것이 뭐가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