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46화
야화 46화
"아하, 그런 원모심려(遠謀深慮)가 있는 줄은 몰랐구나.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떻게 하기는요? 총채(總寨)를 때려 부수고 태산에서 쫓아 내야지요"
"이놈아! 녹림의 본산지가 그리 호락호락 한 줄 아느냐?"
"하하하...노형님은 녹림 총채에 가보기라도 하셨소?"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난공불락이라는 것을 모르는 무림인이 누가 있느냐? 관군들도 녹림 총채만은 어찌 하지를 못하고 있지를 않느냐"
"노형님! 수 십만 아니라 수 백만 관군들이라고 할지라도, 녹림 총채를 탈환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네 놈은 가본 것처럼 말을 하는 구나"
"사부님 따라서 한 번, 그리고 혼자서 몰래 서너 번 들랑거렸지요"
"뭐야? 왜?"
"태산 속에서 살면서, 가상의 적을 파악 하지 않고 어떻게 마음 편하게 살 수가 있었겠소. 만약의 경우 어디를 어떻게 공략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쯤은 알아 둬야 하지 안겠습니까?"
"그래서? 몰래 들어 가서 독이라도 풀 생각이냐?"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아까 그 놈들 틈에 묻어 들어가서 오늘이라도 요절을 냈지요"
"그렇다면? 너희 사부를 불러 내겠단 말이로구나?"
"하하... 노형님하고 우리 세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우리 세 사람이면 충분해? 알다가도 모를 소리만 하는구나"
"녹림 총채로 올라가는 길은, 우마차도 굴러 갈 수 없을 만큼 험하단 말입니다. 길 한 쪽은 천야만야한 단애이고 한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서, 나란히 말 두 필이 갈 정도로 좁은 길인데, 십만 대군이 밀어닥친들 뭘 어찌 하겠습니까?! 기껏해야 병사 서넛이 나란히 올라갈 수 있는 길 폭 밖에는 되지 않고, 기마 무사라고 해도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밖에는 없는데 다른 도리가 있겠습니까?"
"흐흥 그랬단 말이지? 그래서?"
"노형님도...그래서 라니 오! 노형님이 화살받이가 되어 앞장을 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르면 됩니다"
"이 작은 몸이 화살받이가 된다면 얼마나 되겠느냐? 저 발산자를 앞 세우자"
"호호호... 위대한 시숙이 앞장을 서야, 녹림의 무리가 놀래서 오줌을 저릴 것 아니겠어요?"
"사람을 그렇게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니라. 오줌을 저리면 지린내 밖에는 더 나겠느냐?"
듣고 있던 구경꾼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녹림 총채를 공격 하겠다면서 이렇게 유유자적, 놀이를 가는 사람마냥 희희낙락하는 것을 보고 무림에서 밥을 먹은 자들은 혀를 내 둘렀다.
"가장 위험한 고비가 오늘 밤이 될 것입니다. 차마 밀어 부치지는 못하겠지만 날이 밝고 나면, 어찌해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다면 수습책이 없지도 않겠지만, 많은 사람이 보았는데, 사과를 한다는 것은 지각 있는 몇 사람을 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요. 불과 다섯 사람이 뭘 어찌 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입니다"
"그럼 사과를 해 오지 않는 다는 말이로구나?"
"때를 놓친 것입니다. 싸움은 싸움이고, 사죄는 사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흙 묻은 발로 남의 집 안방에 들어 가겠다는데, 그것을 반기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라면 지금이라도 즉시 달려와서, 수하들이 무례를 범 했는데 그 점은 사과를 하겠다고 한 뒤, 정말 한바탕 싸움을 벌일 생각이냐고 다그친다면, 이 쪽에서도 적당한 선에서 양보를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서로 체면을 구기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지금쯤 그들은 마음 속 한편으로는 꺼림칙한 것을 느끼면서도, 말을 죽였네 독을 풀었네 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인명을 또다시 살상 하겠다는 말이냐?"
"태안반점과 남경의 기루를 때려 부수면서 적잖은 인명을 살상하였는데, 역병으로 무고한 인명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될 수 있으면 살상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모두를 그냥 살려서 돌려 보낸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인명을 살상 하지 않고도 녹림 총채를 때려 부술 방도가 있다는 말이로구나"
"아무리 튼튼한 요새도 빠져 나갈 구멍은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총채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두 도망 갈 구멍을 찾아서 도망간 후가 될 것입니다. 그냥 남아 있는 집기를 불 태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 놈아! 값진 집기들을 그냥 불 태운단 알이냐?"
"하하하...거지의 본성이 들어나는구려...개방 제자들을 모두 모아서 반시진 후쯤 따라 올라 오도록 하여, 거둬들인 재화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고루 나눠 주도록 하십니다"
"뭐야 이 놈아! 거지의 본성? 이놈아 도적들에게 약탈 당한 물건을 도로 찾아 오는 것 뿐인데..."
"노형님! 말이 빗 나갔소! 잘못 했습니다"
"이놈아! 화살은 아니지만, 빗 나간 말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알아야지!"
"그래서 시숙이 죽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시숙이 죽는다고만 한다면, 내가 빗 나간 말은 얼마든지 쏘아 댈 텐데..."
"네가 쏜 빗나건 말에는 면역이 되어서, 아무 효과가 없느니라 히히히..."
"말학 후배(末學後輩) 강호일정(江湖一情) 곡원달(曲遠達)이라고 합니다. 그림자가 일어 서서 말을 때려 죽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하하하...노형님에게 묻는 것이라면 말학 후배라는 말이 맞지만, 내게 묻는 말이라면, 같은 동 연배가 아니오?"
"아닙니다. 삼선 어르신 하고 호형호제(呼兄呼弟) 하시는 사이인데, 마땅히 후배라고 해야 옳지요"
"겸손 하시구려! 섭영공이라고 해서 종영공(踪影功) 기영공(起影功) 무영공(無影功)등 다양한 신공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더 이상 자세히는 설명 할 수 없지만, 그림자가 사람을 죽일 수는 있으나 사람이 그림자를 벨 수는 없다는 것만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소"
"내일 밤 공격을 하실 때 소생을 데려가 주신다면, 소생이 기꺼이 화살받이가 되겠습니다"
"그것은 또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오"
"무인으로 태어나 무림에서 밥을 먹으며 자랐는데, 어떤 신공 일지는 모르나, 인명을 상하지 않고 총채를 부술 수 있는 신공을 견식 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노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화살받이라는 뜻을 알고 나 하는 말입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 아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다 죽으면, 조금 일직 죽는 것 뿐이고, 살아 남는다면,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는 신공을 견식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살아 남으면, 그 다음은 이야기꾼이 되어, 자랑을 늘어 놓겠구려?! 좋소 앞장 서시오! 다만 죽고 살고는 형제의 능력에 달려 있소"
"하하하...형제라고 방금 말씀 하셨는데, 형제가 죽는 꼴을 그냥 보고 있기만 하시겠습니까?"
"히히히...그 놈이 미련한 곰인 줄만 알았더니 여우였구나! 히히히..."
예상 했던 대로 다음날 아무런 사과도 해 오지 않은 체 날이 저물어 갔다.
"이 놈아! 깜깜한 밤길을 어찌 올라 가려고 그러냐? 한 쪽은 천야만야한 벼랑이라면서"
"한 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란 말도 못 들었어요? 절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더듬더듬 기어 올라가면 떨어지지는 않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