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33화
야화 33화
어둠의 장막이 깔리기 시작 하였다. 갓 시집 온 새 색씨처럼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새 옷을 갈아 입은 산야도 잠 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이맘 때면 들려 와야 할 귀뚜라미 소리도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았다.
유난히도 크고 둥근 달이 떠 오른 것을 보니 보름인가 보다. 보름이면 어떻고 열 나흘이면 어떤가... 세월 가는 것을 헤아릴 필요가 없었다. 그믐달이 지고 초승달이 떠 오르면 아하~ 달이 바뀌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뜨거운 물과 찬물이 섞이는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밤 하늘을 쳐다 보니,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던 별들도 보름달빛에 가려 뿌옇게 보였다. 아니 열천수에서 피어 오르는 물 안개 때문에 뿌옇게 보이는 것이리라... 우리들 살아 가는 인생과도 같이 불투명하였다. 마주 앉아 있는 아옥의 눈길도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옛날 옛날에 말이오 어떤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라나고 있었다오. 그래서 그 사부도 소년을 개 뼈다귀라고 불렀다오. 개 뼈다귀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 개울 물로 목욕을 시키고 있던 사부라는 여인은, 개 뼈다귀의 아랫도리에 매달린 고기 한 근이, 말 만큼 커진 것을 보고, 그 날부터는 말 뼈다귀라고 불렀다오" "호호... 호호 호..."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볼 수 없는 깊은 산 중이라 소년은 짐승들만 보며 살고 있었는데, 사부가 아랫도리에 매달린 물건을 바위 위에 걸쳐 놓고 매질을 하라고 하였다오. 소년은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7년 동안 매질을 했더니, 고기 한 근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저기에 뿔이 돋기 시작 한 것이오... 그뿐만 아니라 나이가 차면서 도깨비 방망이가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기 시작을 한 것이오... 소년은 사부에게 수컷이 되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오" "어머나 세상에..."
"사부라는 여인은 겉 보기에는 30대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였지만, 나이답지 않게 실제 나이는 80에 가까운 여인이었소. 팔뚝에는 붉은 수궁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소... 사랑하는 사내가 있었지만, 그 사내가 동자공을 수련하였기 때문에 맺어 질 수 없었던 것이라오... 그런데 말 뼈다귀가 도깨비 방망이를 디밀고 사내가 되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으니, 어찌 되었겠소?" "?...."
"불 같이 노한 사부가, 도끼를 들고 나와 말 뼈다귀의 도깨비 방망이를 자르겠다고 하였다오... 소년은 사부가 준 생명이니 사부가 거두어 가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도끼로 내려치기 좋게 옆으로 돌아 섰다오" "안 돼!...그럴 수는..."
"후후 후후... 사부도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 소년의 도깨비 방망이를 손에 쥐고, 사부도 사내가 되는 길이나 여자가 되는 길을 모르니, 서로 공부를 해 보자고 하였다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소년의 생사현관을 뚫어 주지 못해서 안타까웠는데, 심혼 합혼대법으로 소년의 생사현관을 뚫어 주겠다고 하신 것이오" "어머나..."
"심혼 합혼대법을 펼치게 되면, 사부의 공력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소년은, 싫다고 거부를 하였다오. 그러나 사부는, 가을이 되어 나무 잎이 떨어지기 전에는 붉은 단풍으로 물드는 것이니, 언젠가는 떨어져야 할 낙엽이라면, 소년을 통해서 인생을 불 태워, 붉은 단풍잎처럼 마지막 인생을 불태워 보고 싶다고 하였소" "어머나 어머나..."
"일 년을 약속 하였으나, 열 달이 되었을 때는 사부의 얼굴이 60대 노인으로 변해 있었소...사부는 더 이상 늙고 추한 얼굴을 보이기 싫다고 하며, 마지막 남아 있는 모든 공력을 소년의 몸 안에 쏟아 붓고, 한 잎 붉은 단풍잎이 되어 낙엽이 되고 말았소" "가엾어라..."
"소년은 백일동안, 사부의 무덤 앞에서 울었소... 그 때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짐승에서 조금은 인간이 된 것이오... 그리고 사부의 유명을 지키기로 하였다오"
"사부님의 유명이 어떤 것이었는데요?"
"사부가 가지고 있던 도끼는 무림에서 전설로만 떠돌던 석양부라는 도끼였소... 여명부의 주인을 찾아 전설을 실현하라는 것이 사부의 유명이었다오"
"그럼 사부라는 여인이 소안독심이었겠네요?"
"그렇소... 소년은 백 일째 되던 날 석양부를 들고, 산을 내려가다가 노화자를 만났는데, 그 노화자는 소년이 들고 있는 석양부를 보더니, 여명부를 들고 있는 여인이 가까이에 있다고 하였소... 그렇게 여명부를 든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공주였소" "말괄량이 함녕 공주란 말이에요?"
"나는 소녀를 데리고 사부님과 살던 집으로 되돌아 갔소. 그리고 사부님이 가르쳐 준대로 도끼에 각자의 피를 떨어트려 전설을 확인하게 되었다오. 도끼가 각자의 몸 안으로 녹아 들어 간 것이오"
"어머나, 어머나 어쩜 그럴 수가...그런데 그 소년은 사부로부터 어떤 무공을 전수 받았지요?"
"심독공(心毒功)이라는 무시무시한 독공을 배웠다오...다른 사람들은 독을 가지고 다니지만, 소년은 독을 몸 안에 심고 있어서, 소년이 독을 풀려는 생각만해도 몸 밖으로 독을 내 뿜을 수있는 독사 같은 인간이 된 것이오...그리고 동굴 안에서 얻었다는 천면신마의 천면신공과, 새외의 대뇌음사가 가진 환희천이라는 절기를 전수 받았다오"
"천면신마라면, 한 걸음을 내 디딜 때 열 번도 더 얼굴을 바꾼다는 사람 아닌가요?" "그렇다오"
"환희천은요?"
"환희천은, 얼굴의 코가 코끼리처럼 생겼으며 팔이 열두 개나 된다고 하였소. 그 말은 코끼리 코는 남자의 남근을 상징하고, 열두 개의 팔은 여인의 육체를 쓰다듬어, 여인을 환희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상징한다오. 소녀경이 여인들의 성전(性典)이 듯, 환희천은 남자들이 여인을 극락세계로 이끌어 가는 신공이라오" "어쩐지... 그래서 요?"
"산 속서만 자라난 무식한 소년은 그림 하나는 기막히게 잘 그렸다오. 그러나 그 이외에는 너무 인간세상을 몰랐는데, 공주는 그런 소년을 왕부로 데려 가서 책이라는 것을 읽게 하였다오...그래서 소년은 차츰 인간다워졌는데, 그 때부터 여인의 몸은 점점 음기가 강해지고 소년의 몸은 양기가 강해지기 시작을 했다오. 그래서 음양 합환대법을 펼치기로 한 것이오"
"음양 합환대법이라면, 자칫하면 매미껍질처럼 껍질만 남는 인간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소...그것은 실오라기 같은 마지막 기만을 남겨 두고 상대의 몸 안에 모든 기를 쏟아 내는 것인데, 상대가 그 기를 되돌려 주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오...그래서 절대적인 믿음이 없으면 시행할 수 없으며, 서로의 화후가 엇비슷하지 않으면 펼칠 수 없는 대법이라오"
"그래서요? 그 다음 어떻게 되었지요?"
"대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아주 조용한 장소가 필요 했다오. 그래서 사부님이 천면신공과 환희천의 비급을 얻었다는 동굴로 찾아 들어가 대법을 펼치고, 심안(心眼)을 뜨게 되었다오...심안을 뜨는 순간 동굴 안에 두 구의 유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오. 하나는 천면신마의 유체고 또 하나는 유가신공을 남긴 새외 고수의 유체였는데, 유택에서 천불수라는 장법과 증장조화라는 절기를 또 얻으면서 덤으로 청색 구슬과 홍색구슬을 얻었는데 그것을 먹게 되면 더 이상 늙지 않는다는 불로주(不老珠)인 대신에, 그 효능이 너무 강렬해서 후손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오?
"어머나 어머나... 난 몰라... 그래서요? 어서 요? 빨리 다음 이야기를 해 주셔요"
"사부는 또 하나의 유명을 남기셨는데, 마병기(魔兵器) 중 천하제일이라는 은형철삭(隱形鐵索)을 황금전장의 적금산이 가지고 있으니, 회수하라는 것이었소. 그 은형철삭은 본래 마교의 물건이었는데 천면신마가 훔쳐 내다가 사부에게 들켰고, 천면신마는 사부의 심독에 중독 되었소" "그래서요?..."
"황금전장에 숨어 들어간 나는, 장주 적금산의 부인이 만독노조의 딸이라는 것을 안 것과 동시에, 만독노조가 천면신마라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된 것이오"
"만독노조 사조님이 천면신마였단 말이에요?..."
"천면신마가 만독노조라는 두 얼굴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옳은 생각일 것이오... 천면신마가 사부의 심독에 걸리고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만독노조라는 독의 대가였기 때문이오. 천면신마는 독을 해독하기 위하여 동굴을 찾아 들어 갔고, 거기에서 새외의 고인과 양패구상을 한 것이오"
"어머나... 그럼 사조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이 아닌가요?"
"끈질기게 천면신마를 추적한 사부는 동굴 안에서 결국 천면신마의 절기를 얻게 되었고, 제자인 소년도 천면신공을 수련하고 황금전장에 잠입을 하여, 이런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오... 그 인과의 윤회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그 다음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천면신마는 얼굴을 바꿔 가며 부호들을 죽이고, 그 재화를 긁어 모았소...황금전장의 지하와 독곡의 중지, 그리고 우리가 찾아 가려는 사천성 성도에 또 한곳, 모두 세 곳에 긁어 모은 재화를 감춰 둔 것이오. 공주는 그 재화를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서 쓸 생각으로, 계리에 밝은 봉선화라는 여인 한 사람을 더 끌어 들였다오... 공주와 봉선화가 아옥의 언니들이라오"
"사조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지는 몰랐어요"
"그것뿐이 아니오... 동굴을 탐사하다가, 이 곳 주인이 무영신투(無影神偸)라는 것을 알았는데, 무영신투는 천면신마와 만독노조가 동일인이라는 것을 밝히려다가, 만독노조의 독에 당해서 죽은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