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45화
야화 45화
"하하하...이것이 어떤 의미인줄 알겠소?"
"어떤 뜻이 있지요?"
"새끼들이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온 것이라오. 인간의 냄새가 베어 있는 이 주위에는 맹수가 얼씬도 하지 않소. 그러니 사냥을 나가는 동안은 새끼를 여기 인가에 숨겨 두겠다는 속셈인 것이오"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듯 새끼 두 마리를 남겨 둔 체, 비호처럼 밖으로 뒤쳐 나갔다. 새끼 두 마리를 한 사람이 한 마리씩 나누어 안고 돌보아야 하는 보모가 되고 말았다.
"호호호... 우리가 아기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대신에 보모 역할을 맡길 셈인가 보죠?"
"아기를 원하오?" "아아~니 요? 일 년에 어쩌다 한 번 쯤?..."
"그 어쩌다 한 번이 어떤 때요?"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자기가 내 옆에 없을 때?... 예쁜 귀여운 아기를 보았을 때?"
"그것 병이 깊구려"
"호호호...왜 이래요? 나 말고 다른 여자 배 속에 아기를 가질 생각이에요?"
"내 씨도 온전 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무슨 소리요? 보모 역할이나 충실히 합시다. 저런 왔소 사슴을 사냥해 왔구려"
어미 금잔표가 끄르렁거리자 새끼들이 놓아 달라고 발톱을 세웠다. 땅에 내려 놓아 주었더니 어미 곁으로 달려가 사냥해 온 사슴을 물어 보는데, 이제 젖을 떼는 시기인 것 같았다. 어찌할 바 모르는 새끼들을 위해서 배 가죽을 물어 뜯고 내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새끼들이 배 불리 먹고 난 다음에야 어미도 노루 고기를 먹기 시작 하였고, 배가 부른 새끼들은 사람 곁으로 다가와서 재롱을 부리며 놀아 달라고 하였다. 그 날 아침은 뜻하지 않게 그렇게 보내고, 산을 내려 가면서 언제나 하던 것처럼 날짐승을 잡아들고 육두 주점에 갔다.
대체로 도착 하는 시각은 오시(午時)경이었다.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십여 필의 말을 탄 기마 무사들이 밀어 닥쳤다. 말을 탄 체 그대로 안으로 들어 오려는 것을 다리 위에서 천 풍림이 막아 섰다.
"여기는 사람에게 술을 파는 곳이지 말에게 팔 술은 없소"
"그대가 여명황인가?"
말 앞까지 뻗어 나가 있던 그림자가 벌떡 일어 나더니, 한 주먹으로 말 대가리를 후려쳤는데 박살이 나며 말이 퍽 고꾸라지고, 말을 타고 있던 무사도 땅바닥에 나가 고꾸라졌다. 말들이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소란이 일자 술을 마시든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서 구경꾼이 되었다.
"건방진 놈! 사람의 명호를 물을 때는, 마상에서 내려다 보며 묻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녹림의 도적 떼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알아야지!"
"우리가 녹림의 문도라는 것은 어찌 알았으며, 알고도 이 행패란 말이냐? 커억...커억..."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말에서 거꾸러지며 떨어졌다. 그림자가 일어 서며 말을 때려 죽인 것에 놀라고 있는 판에, 이번에는 독에 당해서 사람이 거꾸러졌다.
"알아 듣지 못하는 놈들이로구나! 내가 네 놈들 수하가 아닌 바에야 말에서 내려, 대등한 자리에 서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다. 죽을 죄를 진 것은 아니니, 목숨은 부지 할 것이나 백일 동안은 고생 좀 해야 할 것이다. 다음 누가 무슨 말이든 하려거든 말에서 내려 말을 하도록 하여라"
말 탄 무사 십여명이 그 위세에 눌려 누가 먼저 라고 할 것 없이 말에서 내렸다. 죽은 말에 타고 있던 무사가 대장인 것 같았다. 구겨진 체면을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을 했다.
"녹림을 건드리고도 무사 할 것 같은가?"
"하하하...하하하하..."
웃음 소리에 녹림 문도들이 비틀거리는데, 코에서 주르륵 피를 흘리더니, 한 놈 두 놈씩 픽픽 쓸어지는데. 먼저 말에서 굴러 떨어진 무사처럼 얼굴이 흑색으로 변해갔다. 언제 어떻게 독을 풀었는지 알 수가 없는 고명한 수법이었다.
"백만 마교를 상대로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이다. 아니 네 사람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우리들 두 분 사부님 소안독심과 파안섭영이 계시니..."
"이 놈아! 나는 왜 빼 놓느냐? 나 취아선 까지 다섯 사람이라고 전 하여라"
"그래, 우리 다섯 사람이, 2십만도 못 되는 너희 녹림이 무서워서 벌벌 떨 것 같으냐? 내가 이 태산 깊은 산 속에서 살아 온지 도 스무 해가 넘었는데, 철옹성이라고 자랑하는 너희 총채를 내 집 드나들듯 드나든 나다. 거짓말 같으면 시험을 해도 좋다. 내일 중으로 정중한 사과를 해 오지 않는다면, 내일 밤중으로 내가, 아니지 우리가 찾아 가겠다고 전해라. 그 때는 때가 늦은 것이다 휴전이란 없다.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때려 부수겠노라고 전하여라. 알아 들었느냐?!"
"히히히... 취아선의 이 말도 전하거라. 이 많은 구경꾼들이 모두 듣고 보았는데, 체면이 있지, 어찌 다섯 놈이 무서워서 사과를 할 수 있겠느냐고 전하거라. 나라면 죽으면 죽었지 사과 같은 것은 안 한다. 혹시 모르지 배나 복숭아를 할 지는 모르겠다 히히히... 내일 밤에 보자! 히히히..."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루에 한 두 번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은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내 얼굴을 상기하고 이를 갈 것이 아니라, 예의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하나 하나 배워라.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말이 아니고 사람이, 응분의 값을 치르고 술을 마시겠다면, 열 사람이고 백 사람이고 와서 술을 마셔도 좋다고 하여라, 소란만 피우지 않는다면 말이다. 마교면 어떻고 녹림이면 어떻냐?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에, 백도가 어디있고 흑도가 어디 있다더냐. 다만 적 아니면 편이 있을 뿐이다. 우리를 건드리지 않으면 모두가 편이오, 살짝 이라도 건드리면 그것은 적이니라 알아 들었으면 가라!"
그들이 가는 것을 돌아다 보지도 않고 뒤 돌아 서며 그 다음에 한 말이 모두를 웃겼다.
"오늘 고기가 모자랄 것 같아서 말 한 마리를 때려 죽였으니, 오늘 요리는 말 고기로 하시게! 요리 이름은 '무례한 말 괴기'..."
"히히히...그 무례한 말 괴기 맛 좀 보게 빨리 요리를 하게"
쾌도자가 시퍼런 도를 들고 나와서 칼질을 하는데, 배를 가르고 먹을 수 있는 내장은 따로 두고 흐르는 개울물에 던지면 고기 떼들이 모여 들었고, 가죽을 벗기고 벗긴 가죽 위에 부위별로 고기를 썰어 내는데 순식간에 말 한 마리를 해체 하였다. 구경꾼들이 그 솜씨에 혀를 말았다.
"히히히...오늘은 좋은 구경을 했다. 내일은 또 어떤 구경거리가 있을거나? 히히히..."
"그것 보시오! 아침에 금전표가 새끼를 데리고 나타나더니 대번에 그 징조가 현실로 바뀌지 않았소?"
"금전표가 새끼를 데리고 나타나? 그 것은 또 무슨 소리냐?"
취아선이 궁금증을 못이기고 물어 왔다. 청죽루가 아닌 육두주점에 그대로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이다. 구경꾼들이 이들 주위를 둘러 싸고 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서 말 대가리를 후려친 것을 본 사람은 불과 몇 사람이었지만 금새 소문이 퍼진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도 궁금 했을 것이다.
금전표의 이 사이에 뼈가 박혀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굶어서 다 죽어가던 금전표가 마당에 누워서 구원을 요청 한일과, 세 달 가까이 모습이 보이지 않던 금전표가 이번에는 새끼를 데리고 인가를 찾아 와서, 안전지대를 선택한 이야기를 모두 하였다.
은밀하게 행동하는 금전표를 숲속의 마녀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드물다. 그런 금전표가 인가를 찾아 내려 왔다니 신기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우리가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축생이 새끼를 지키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인가를 찾아 오는 마당에, 수하들이 있는 이 곳을 사람이 지켜 내지 못한다면, 축생만도 못 한 것이 아닙니까?"
"히히히... 그래서 좀 심하게 다뤘구나?"
"노 형님은 그 정도를 심하게 다뤘다고 생각 하시는 것이오? 한 사람도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혹시 다음에라도 녹림의 무리들이 손님을 가장하고 들어 와서 난동을 부리려고 꾀하더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독에 중독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뿐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