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여인 - 5
가을날의 여인 - 5
청년이 앞장서서 걸어 우리를 가게로 안내했습니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 가게가 나왔고 우리는 그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낚시꾼들을 상대로 잡다한 것을 파는 가게인 듯 했습니다.
청년의 어머니인 거 같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아이고... 저 비 맞은 것 좀 보소... 감기 들겄네... 여름도 다 갔는데... 무신 쏘내기가... 어여... 방에 들어가 옷 좀 말리소.................”
우리는 아주머니가 방에 들어가란 말에 어정쩡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방에 들어가야 할지 몰랐고 어느 방인지 알더라도 한 방에 같이 들어가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아닌가베... 그라몬 아지매는 저 안방에... 아저씨는 저 정지방에 드가이소.....................”
나는 아줌마의 그러한 조치에 적이 안도했습니다. 그녀와 같은 방에 들었다가는 끓어오르는 내 욕정이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저지르게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시간 쯤 옷을
말렸을 때 날이 걷혔습니다. 언제 소나가를 퍼 부었느냐는 듯 파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그 가게에서 우리가 팔아 줄 물건은 없었습니다. 나는 돈을 아주머니에게 내밀었습니다.
“방 사용료라 생각지 마시고... 그냥 받아두세요... 감사의 표시입니다.........................”
“아이고... 이라믄 안되는데... 우짤꼬.......................”
우리가 나룻배에 올랐을 때 서쪽 하늘엔 석양이 장엄하게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철새들이 무리지어 그 노을에 노닐었습니다. 그녀는 뱃전에 앉아 뱃사공 할아버지와 수화로
대화를 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왜 손을 흔들었는데도 와주시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빗속의 우리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그랬다 네요...................”
“훈이 엄마 말대로 멋쟁이 할아버지군요................”
그해 가을이 무르익을 때였습니다. 그날은 계절답지 않게 비가 추적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강변찻집’에서 가을비에 취해있었습니다. 가을과 비에 관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난... 비가 내리면 학교 앞 다방에서 듣던 노래가 생각나요... 그런데... 그 후로는 그 노래를 통 들을 수가 없어요.....................”
“어떤... 노래인데요?..........................”
“제목을 몰라요... 비오는 날 다방에 앉아 있으면 꼭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었죠................”
“그럼... 한번 불러 봐요..........................”
“아이... 제목도 모른다는데......................”
“그럼... 허밍으로.........................”
그녀는 나지막이 허밍을 하였습니다. 그 노래는 그리스의 3인조 보컬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Rain and tears’ 였습니다.
“아... 그 음악 「아프로데테스」의 ‘레인 엔 티어즈’네요....................”
“어머... 이 노래 아세요?....................”
“그럼... 알죠... 내가 무척 좋아했던 노래예요.....................”
“어머... 어쩜... ‘레인 엔 티어즈’ 라면 우리 말 제목은 ‘비와 눈물’이겠네요....................”
“처음엔 그랬죠... 그러나 나중엔 ‘눈물이 비 오듯’으로 바뀌었죠....................”
나는 그녀에게 ‘Rain and tears’에 대하여 소상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Aphrodites Child의 탄생에서부터 그들이 이 노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팝시장의 해적이었죠... 국제 저작권기구에 가입하지 않아서... 외국의 팝을 제작사의 허락도 없이... 마구잡이로 복사해서 유포시켰어요... 그래서 그런
과정으로 제작된 음반을 ‘해적판’ 혹은 디스크 쟈켙이 백지로 되었다고 해서 ‘빽판’이라고 불렀죠... 그런데... 그 해적판에 노래의 제목을 붙여야 하는데... 자주 해프닝이 벌어졌죠...
‘Obradi Obrada’를 ‘벼룩시장’ 이란 제목을 붙이기도 했을 정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노래도 ‘비와 눈물’이란 제목이 붙여졌었군요... 그럼... ‘눈물이 비오 듯’은 어떻게.......................”
“최동욱이라는 라디오 DJ가 개칭했죠...................”
그녀는 그 노래를 무척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소장하고 있던 팝음악 테이프를 모두 틀어놓고 그 음악을 찾는데 열중했습니다. 그녀에게 디스크는 아니더라도 녹음된 테이프라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두 시간
정도의 노력 끝에 나는 그 노래를 찾을 수 있었고 그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시켰습니다. 작업이 다 끝났을 때는 열시 가까운 시각이었습니다. 당장 테이프를 그녀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지만 내가 ‘강변찻집’에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테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어서 빨리 기뻐하는 그녀가 보고 싶었고 그 노래를
듣는 그녀 얼굴 표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변찻집’은 한밤의 고요함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게에서 불빛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게 아주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곤 유리문을 통하여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가게에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녀였고 또 한 사람은 멜빵이었습니다. 멜빵은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서 있었고 그녀는 그 앞에 쪼그려 있었습니다. 멜빵의 바지는 무릎
아래로 내려져 있었고 그녀의 스커트는 허벅지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습니다. 멜빵의 입에는 파이프가 물려있었고 그녀의 입에는 남자의 성기가 물려있었습니다.
멜빵의 한 손은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었고 그녀의 한 손은 자신의 팬티 속에 들어가 음부를 비벼대고 있었습니다. 멜빵의 입술 사이에서는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는 침인지 멜빵 자지의 걸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멜빵의 눈에서는 음탕한 빛이 발해지고 있었고 그녀의 눈에서는 광기서린 색정의 빛이 뿜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뒤돌아섰습니다. 그리곤 어둠을 헤치고 달렸습니다. 되도록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습니다.
나는 달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건 배신이야!... 내 영혼에 대한 배신이야!... 두 얼굴의 여자!... 가증스러워.....’ 나는 오솔길을 벗어나기 전에 주머니에서 테이프를 꺼내 숲속으로 던졌습니다. 숙소에 돌아온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서울의 그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가 수화기를 들자 앞뒤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나는 내게 있어서 이 세상 최고 여자예요... 사랑해요... 미치도록.......................”
그녀는 나의 두서없는 넋두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나의 넋두리가 끝을 맺자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또 상처를 입었구나... 어서 서울로 올라 와... 내가 안아줄게...........................”
나는 그런 일이 있고 일 년여를 ‘배신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내가 안정을 찾은 것은 가을을 두어 번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십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흔적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솔길도 내가 테이프를 던졌던 숲도 ‘라면집’도 ‘강변찻집’도 나루터도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가 즐비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배신의 늪’을 메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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