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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어른들의 야썰 단편 성경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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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 아내와 같이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을 어지럽히는 것을 알았다. 아내는 남자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신기하기만 했던지 영화를 보는 도중에도 저런 일이 진짜 있었냐고 계속 묻는다. 학창 시절에 특히나 이소룡을 좋아하던 나는 그 영화 속에서 일부분은 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던 내내 정신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어차피 그 시절을 겪어 왔기 때문에 권상우의 운동 장면이나 이소룡 흉내, 혹은 옥상에서의 완타치 장면, 이외에는 거의 이야기의 과정을 꿰차고 있었기에 별다른 감동은 없었다. 교복과 까까머리의 학창시절을 지내지 않은 젊은 신세대들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을 테지만…
나의 고3 시절은 평범했었다. 다른 학우들은 과외다, 학원이다 해서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학교를 빠져 나갔지만 조용하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언제나 도서실에 남아서 저녁이 늦도록 수험준비를 했다. 교내 도서관이 닫히고 집에 들어가면 그 당시, 적중률이 높은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떠벌리던 교육방송의 TV과외 프로그램을 보고 자는 것이 나의 오후 일과 였다. 2학년까지 정신 없이 따라 다니던 서클 활동도 이제는 고3 영감이라고 밀려나 마치 뒷방 늙은이라도 된 것 마냥 도서실에서나 죽 때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친했던 서클 친구들은 가끔씩 모여 라면을 같이 먹기도 하고, 시험기간이 끝나면 짬을 내서 영화도 같이 어울려 보러 가기도 했었다. 나와 가장 친했던 두 사람, 정태와 민석이가 그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세 사람은 모의 고사 성적도 서로가 고만고만 했고, 하고 다니는 짓거리도 비스무그리 했었다. 그 중에서 정태는 항상 학원을 열성으로 다니는 학원파 였다. 언제나 종로의 학원가에서 깃발 날리던 영어,수학,과학반 강사들의 시간표를 좌악 꿰차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 주변 지역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10일간의 짧은 여름방학 이기는 했어도 방학을 앞두고, 1학기의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룬 날, 정태와 민석이가 집에 같이 가자며, 도서관으로 찾아왔다. 대개 시험을 치루는 마지막 날은 도서관이 한산했다. 다들 밀린 잠을 자러 집에 일찍 간다든가, 땟국물이 자르르 흐를 때 까지 한동안 못했던 농구를 운동장에서 저녁이 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려 하는 관계로…
‘호균아! 뭐하냐? 청승맞게 시리, 도서관에 사람도 없구만..’
‘아니, 정태 너 아직 않 갔냐? 오늘 학원 않가?’
정태는 시험 날은 일찍 끝나는 관계로 그 사이에 시간 떼우기가 뭣 같다며, 그런 날, 저녁 시간의 학원은 땡이를 치곤 했었다.
‘민석이도 왔는데, 오늘은 그냥 가자. 세월이 좀먹냐? 이번 해에 떨어지면 재수하고, 재수하다 안되면 삼수 하고, 삼수 하다 안되면 부지기수하면 되잖여?’
오늘은 단단히 땡땡이를 칠 모양이다.
‘어디 갈 건데? 영화 보러 가자고? 나 오늘, 개털이야.’
‘아니, 내가 개발한 곳이 있는데, 끝내 준다니깐, 아무튼 가자.’
세 사람은 가뜩이나 시험 때문에 가벼워진 책가방을 핸드백 들듯이 팔에 꿰차고, 학교를 나섰다. 정태가 이끄는 대로 우리 세 명은 버스를 타고 종로2가에 내렸다. 길거리는 이미 뜨겁다 못해 지글지글 타는 것 같았고, 하복과 내의는 벌써 땀으로 등에 쩍쩍 달라붙고 있었다.
‘어딘데? 말은 해 주어야지?’
‘아무튼 가보면 알아.’
정태는 의기양양한 폼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낙원상가의 골목을 끼고서 종로3가 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의 중간 즈음 에서 정태는 허름한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고리타분한 국밥내와 뼈다귀 국의 중간 정도 되는 잡다한 냄새가 우리에게 달겨 들고, 세 사람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활짝 열려 있는 문으로 보아 에어컨도 없고, 무더운 바람만이 줄창 쏟아져 나오는 선풍기만 있는 꼴꼴난 식당인 것 같았다.
‘야. 씨발, 날씨도 좇나게 더운데, 뭣하러 이렇게 찌는 듯한 식당엔 들어가?’
민석이가 지분댄다.
‘야, 그래도 그렇지, 교복입고 들어가기는 좀 그렇다. 안글냐?’
나도 어른 들만 드나드는 곳 같은 대폿집에 대낮부터 들어가는 것이 조금 깨름직 하기는 했다. 식당 안은 드럼통으로 개조해서 만든 식탁이 여남은 개, 그리고, 손님도 별로 없이 저 구섞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혼자만이 부채를 부치면서 앉아있었다.
‘정태 학생 아냐? 오늘은 친구들도 왔네?’
우리 세 사람을 반갑게 맞이 하면서 그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덥다며, 별로 시원해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구형 선풍기를 틀면서 앞으로 옮겨 앉으라고 권했다.
‘정태야, 저 선풍기 날개에 낀 때 봤냐? 아유, 씨발, 시원한 건 둘째 치고, 아예 때를 뒤집어 쓸 것 같아 겁나서 어디 앉겠냐?’
항상 깔끔을 떠는 민석이가 언제 보았는지 선풍기를 갖고, 아주머니도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그 잘 쓰는 씨발을 또 섞어가며, 한바탕 불평을 쏟아냈다.
‘하, 거 사내 새끼들이 잔말은… 잠자코 형님만 바라보고 있어 봐!’
정태는 그 동안 장사가 어땠었느냐고 물으면서 떡라면 세 그릇을 주문했다.
‘정태야, 여기 대폿집 아니었냐? 라면도 파나 보지?’
‘아무튼 잔말 말고 먹어 보고나 싸질러라. 맛이 기가 막히다니깐.’
얼마 있질 않아서 냉면 그릇 같은 대접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떡라면이 날라져 왔다. 세 사람은 이열치열의 심정으로 라면을 집었다. 한입, 입안에 넣는 순간, 나와 민석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말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씨발, 이거 좇나리 맛있다.’
또 씨발이다. 민석이는 좋아도 씨발, 안되도 씨발 이었다. 학교 앞의 분식집을 비롯해서 맛있게 한다는 라면집을 다녀 봤어도 이렇게 맛있게 끓여주는 집은 정말 보질 못했었다. 보통 라면 면발 인데도 어떻게 끓였는지 그 쫄깃한 느낌이 상상을 불허 했으니까. 국물은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정태의 말에 의하면 그냥 물을 넣고 끓인 것이 아니라 집 주인 아주머니가 우려낸 국물로 하기 때문이란다. 우리 세 사람은 잠시 라면을 먹느라 더위도, 말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큰 유리컵 3개를 쟁반에 받쳐서 우리 자리로 오셨다. 그리고, 옆 자리의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시고는…
‘이것도 좀 마시면서 먹지. 채할라.’
나는 무슨 쉰 냄새가 풍긴다고 느끼면서 컵을 들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막걸리 였다. 사기로 된 큰 컵은 겉으로 보기에 물컵으로만 보였는데, 그 안에 하나 가득 막걸리를 담아 오신 것이었다. 정태가 낼름 고맙다고 하면서 잔을 받아 들더니만 이내 그 막걸리를 들이 켰다.
‘정태야, 너 미쳤냐? 교복입고 술 먹다가 걸리면 어쩔라구? 우리 같은 학생에게 술 팔다가 걸리면 이 집도 쪽박 찬다, 알어?’
그러자, 옆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웃으시면서 말을 가로 막았다.
‘손님이 많을 때나, 저녁에는 오히려 내가 못 들어오게 하지. 어련 할려구. 사람도 없는 이런 복날 대낮 이니까 내가 맛만 보라고 내온 거야. 손님들 들어오기 전에 한잔 씩들, 주욱 들이켜. 예전 같으면 장가도 갔을 나인데, 막걸리 한잔에 인생 종치겠어?’
아주머니께서는 웃으시면서 주방쪽으로 가셨다.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들에게 질 수 없다는 호기가 발동해서 라면 국물을 안주 삼아 2,3번에 걸쳐서 막걸리를 들이켰다. 싸한 뒷맛에 시원한 라면 국물과 함께 먹어보는 막걸리는 정말 일품이긴 했다. 정태가 끝내 준다고 하는 이유를 이제사 알 것도 같았다. 식성이 남달리 좋은 민석이는 내가 한컵을 몇 차례에 나누어 마시는 동안 단번에 끝까지 숨도 쉬지 않고 들이켰다. 입을 쓱하니 훔치면서,
‘정태야, 임마, 이렇게 좋은 곳이 있으면 빨랑 데리고 와야지, 왜 여태 혼자만 다녔냐? 어, 씨발. 증말 이지, 맛, 좇나게 좋다.’
정태는 무얼 쳐먹으면서도 저렇게 입에 걸레를 물고 산다며, 민석이를 보고 웃어대고…우리 세 사람은 한 여름날의 무더위와 아울러 땀을 뻘뻘 흘려가며 후루룩 먹어대는 라면과 더불어 기분 좋게 막걸리에 취하고 있었다.
‘정태야, 근데, 이거 얼마나 하냐? 메뉴판 에도 라면은 없잖아? 바가지 쓰는 거 아냐?’
‘걱정마. 오늘, 내가 산다.’
‘걱정 말라니?’
‘이 새끼는 속고만 살았나? 주인 아주머니가 학교 앞에서 파는 떡라면 값 이외에는 않 받으신 다니깐 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