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가면 제1화
야누스의 가면 제1화
[ 띠.. 띠... 띠... 띠....... ]
현관 비밀번호 버튼이 눌리는 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며 여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집인 듯 집으로 들어온 여자는 너무도 능숙하게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에 무언가를 넣고 있었다.
- ....... -
다시 주방을 나온 여자가 소파 앞 거실 탁자에 놓여있는 물건들은 가지런히 정리 한 뒤 안방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긴 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여보, 여보, 나왔어.... -
방으로 들어간 여자는 침대에 팬티만을 입고 잠들어 있는 남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마도 남자의 부인인 듯 했다.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크게 하품을 했다.
- 왔어.... -
- 더 잘래? -
- 아니야, 일어나야지 -
남자는 기지개를 크게 켰고, 엷은 미소를 지은 여자가 남자의 가슴을 손으로 더듬었다.
- 잠 깨게 빨아 줄까? -
- 괜찮아 -
여자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지만 여자는 팬티 안으로 손을 넣어 남자의 자지를 거침없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 몇 시에 들어왔어? -
- 네 시 -
- 일찍 들어왔네? -
- 응, 오늘따라 물건이 없어서...
남자는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켰고, 그런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가 다가가 입맞춤을 하고는 물러났다. 여자는 시선을 밑으로 내리고는 만지고 있던 자지를 팬티에서 꺼내고는 다가가 귀두에 입맞춤을 하고 일어났다.
- 샤워해, 밥 차려줄게 -
- 샤워하라면서 그렇게 계속 만지고 있으면 어떡해 -
- 사일 동안이나 못 만졌으니까 -
남자의 말에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고, 다시 고개를 숙여 자지를 입에 물자 그 모습을 내려 보던 남자가 길게 늘어진 머리칼을 한쪽으로 넘기고는 자신의 자지를 빠는 여자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주말에 뭐했어? -
남자의 물음에 자지를 빨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 그냥 똑같지, 뭐... -
- 어디 놀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
- 못 갔어, 시어머니가 오라고 하셔서 거기들 갔다 왔어 -
여자의 말이 무언가 이상했지만 여자는 자지를 입에 물고 천천히 빨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자리에 누워 버렸다. 여자는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갔고 이제는 잔뜩 성을 내고 있는 자지를 손으로 움켜잡은 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빨기 시작했다.
[ .......... ]
무언가 이해가 되지 않는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그렇게 오후를 향해 달려가는 늦은 아침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일까....
[ 뽀드득..... ]
- ........ -
거울에 서린 뿌연 물기를 손으로 훔쳐낸 여자가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한 차례의 섹스 이후 샤워를 한 듯 보였지만 욕실에는 여자만이 거울을 보고 있었다.
누구일까...
여자는......
- .......... -
여자는 거울속의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서른일곱 살의 너무나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스물다섯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11살의 아들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이었다. 다만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을 바라보며 서있는 이 욕실이 거울 속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여자의 집이 아니라는 것이 그 여자가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는 거울속의 자신을 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난....
두 개의 삶을 사는 여자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나의 두 개의 삶에는 각기 다른 남자가 존재한다.
평범한 가정주부로써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에게 헌신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편이라는 남자와 그런 남편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외설적이고, 퇴폐적이며 뇌쇄적인 섹스를 즐기는 또 다른 나를 가진 남자, 그렇게 두 명의 남자가 존재한다.
그렇게 난 야누스적인 양면의 얼굴을 가진 여자이다.
또한 그 양면성만큼 내 삶도 두 개의 삶으로 나뉘어졌다,
주말을 제외하고 오후 네 시부터 그 다음 날 오전 열시까지 존재하는 평범한 내 삶과 오전 열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평범한 내 삶의 가면을 모두 벗어버리는 숨겨진 내면의 또 다른 삶, 이렇게 둘로 말이다.
그런 내 삶에 존재하는 두 남자.
강 현식과 정 진우..
내 현실의 삶을 공유하는 남편 강 현식....,
현식이 미처 가지지 못했던 내 육체의 모든 것을 가져버린 남자 정 진우...
그 둘은 선후배이며 동서지간이다.
여동생의 남편이자 내 삶은 또 다른 주인공 정 진우는 그렇게 제부란 이름으로 내 곁에 존재했고, 어느 날 강렬하게 내게 다가와 내 육체의 모든 것을 가져가버렸다.
삼년 전 어느 날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그 삼년 전 그 시간으로 인해 난 이렇게 두 개의 삶을 살게 되었다.
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삶을 말이다.
이렇게 두 개의 삶을 살게 된 난...
서 미주다.
서른일곱의 여자 서 미주.....
########## 3년 전 ############
- 여보세요 -
진우는 선배이자 동서지간 형님인 현식의 전화에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 어디냐? -
- 강릉입니다, 왜 그러시죠? -
대뜸 어디냐고 묻는 현식의 물음에 진우도 짧게 대답하며 물었다.
- 어, 현우 엄마랑 너 있는데 놀러 갈까 해서 -
- 어머니 보러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
- 갔지. 근데 형님이 장인어른이랑 장모님 모시고 제주도에 갔어, 현우도 데리고.. -
- 갑자기 무슨 제주도를... -
- 어, 원래는 형님네 처제가 가려고 했던 건데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렇게 됐데, 비행기랑 호텔 다 예약 해놓은 거라 취소하기가 그랬나 봐, 그래서 갑자기 가게 됐어, 그쪽 집은 애가 셋이라 현우도 소연이랑 정우와 같이 가게 됐고... 월요일까지 와이프랑 나랑 둘뿐이야 -
- 그런데 여기 와서 뭐 하게요, 나 혼자밖에 없는데.. -
- 그러니까 가는 거잖아, 청승맞게 혼자서 무슨 여행이냐, 황금 주말을 이 형님이 함께 보내주마 -
- 처형이 오시겠데요? -
- 당연하지, 그럼 내가 가자고 했을까봐, 가만... -
아마도 처형인 미주에게 전화를 넘기는 듯 했다. 처형인 미주는 진우와 동갑이었다.
- 여보세요 -
처형인 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 네.. 안녕하셨어요? -
- 덕분에요, 제부도 잘 지내죠? -
- 그럼요 -
- 그런데 또 혼자 여행 갔어요, 혼자 여행가면 심심하지 않아요? -
- 뭐, 하루 이틀도 아닌데요 -
서른이 되어서야 결혼을 했던 진우는 선배인 현식의 소개로 미주의 동생이었던 윤주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이 년 만에 병으로 인해 아내인 윤주와 사별을 했다. 그 후로 이년 동안 혼자 살아왔던 진우의 취미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 그러지 말고 우리랑 같이 여행 다녀요 -
- 별로 재미없을 텐데.. -
- 혹시 우리가 귀찮아서 그래요? -
- 아닙니다, 무슨 말을.. -
진우가 재빨리 대답을 했다.
- 그럼 우리 가도 되는 거죠? -
- 네, 알겠습니다, 형님 좀 바꿔 주세요 -
- 잠시 만요 -
잠시 기다리는 사이 신호가 바뀌자 진우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 어, 나야 -
- 저 지금 속초로 가고 있거든요, 그럼 그쪽으로 오시겠습니까 -
- 그래, 우리 아직 고속도로 타려면 좀 멀었어 -
- 근데, 연휴라 방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
- 없으면 같이 지내면 되잖아 -
- 원룸 스타일이라 처형이 불편 할 겁니다. 방도 따로 없이 침대도 하나만 있는 거라, 제가 전화 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알았어, 우린 일단 속초로 출발 할게 -
- 네, 알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진우가 거치대에 걸려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 네, **** 리조트입니다 -
- 수고 하십니다. 오늘 예약한 정 진우라고 하는데요, 혹시 방 하나 더 예약 할 수 있나 해서요? -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 네 -
대답을 한 진우가 달리는 창 밖 멀리 보이는 바다를 응시했다.
- 일요일까지 16평 예약 하셨네요 -
- 네 -
시선을 거둔 진우가 운전을 이어가며 대답을 했다.
- 같은 층은 없고, 다른 층으로 16평, 24평 남아있습니다, 16평은 예약하신 방처럼 바닷가를 향해 있습니다 -
- 그럼, 16평으로 하나 더 예약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 인원은 어떻게 되십니까? -
- 2명입니다 -
- 성함은 고객님 성함으로 할까요? -
- 네,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
- 날짜는 같이 해드릴까요? -
- 네 -
- 예약 되셨습니다 -
- 감사합니다 -
- 네, 감사드립니다 -
방을 예약한 진우가 다시 현식에게 전화를 걸었고, 약간의 대화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 .......... -
휴가철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어서일까, 연휴임에도 바닷가는 의외로 한적했다. 진우는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렇게 바닷가를 거닐던 진우는 모래사장이 끝나고 바위가 듬성듬성 솟아있는 바위로 올라가 앉아서는 바닷가를 가만히 응시했다.
[ .......... ]
밀려온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진우가 아내 윤주를 떠올렸다.
선배인 현식이 자신의 처제를 소개 시켜주겠다며 술자리에 동석을 시키며 자연스레 관계가 시작되었고 결국은 결혼까지 이르렀었다. 허나 신혼 생활이 육 개월도 지나기 전에 갑자기 쓰러진 아내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백혈병이라는 병명을 받아드는 순간 모든 것은 암흑으로 변하고 말았다. 특히 신혼의 아내인 윤주의 충격은 너무 컸었다. 몇 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던 아내가 어느 날 자신의 손을 잡고 살고 싶다고 말하던 순간 진우는 그런 아내를 어떻게든 살리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꼭 일 년 만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약간의 호전을 보이던 아내는 결국 백혈병 앞에 먼 길을 떠났고, 진우는 절망했다.
이 년도 되지 못하는 결혼 생활도 그랬지만,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다는 말에 결국 정관 수술까지 하며 아내를 속였던 진우는 어쩌면 아내가 아이를 가졌으면 살았을지도 몰랐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내 윤주가 자신이 정관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급격하게 삶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는 모두가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것일 믿었다. 아이 때문에 아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임신을 해도 아이는 물론이고 아내까지 잃을 수 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허나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에 그것이 발목을 잡았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아내의 말을 들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것이 결과론임을 안다, 어쩌면 더 최악의 경우가 있었을 수 있음을 알지만 남겨진 사람에게 모든 것은 후회스럽기만 했다. 그랬기에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런 자신을 달래고 달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이 처형인 미주였다. 동갑이라는 연대감이 있어서 이기도 했지만,
운동을 했던 탓인지 성격이 활발했던 처형 미주는 마치 자신을 친구처럼 대하며 자신을 타일렀고 진우 자신은 겨우 모든 걸 추스를 수 있었다.
- ........ -
부서진 파도가 물보라를 크게 일으키며 물이 튀자 살짝 인상을 찡그린 진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 우리 가끔 상대방이 부탁하면 친구해요, 말 상대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남에게는 말하지 못할 곤란한 일이 생겨 누군가와 의논하고 싶을 때면 그때는 친구 신청하고 상대방이 받아주면 친구하는 거예요, 처형, 제부가 아닌 친구.. 알았죠? ]
언젠가 술에 빠져있는 자신을 달래기 위해 현식과 함께 집을 방문했던 처형 미주가 무언가를 사기 위해 현식이 자리를 비우자 했던 말이었다. 물론 그 후로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 말 이후로 처형 미주는 가끔 농담처럼 자신을 친구라며 부르며 장난을 치기도 했었다.
- ......... -
그렇게 처형의 말을 떠올리던 진우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숨을 크게 들이 마시며 시선을 먼 바다로 향했다.
- 천천히 마셔 -
- 알았어 -
아내 미주의 말에 현식이 호기롭게 말을 했지만 벌써 세 병 가까이 술을 비운 현식의 상태는 술에 취해가고 있었다.
- 그래요, 좀 천천히 마셔요, 아직 여섯시도 안 됐어요 -
진우도 거들었다. 그러자 현식이 휙 하니 진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자식.. 선배가 술잔을 비우는데, 후배가 잔소리 하는 거냐? -
- 취할까 봐 그러죠.. -
- 훗.. 걱정 마, 안 취해 -
현식이 말을 했지만 진우는 물론이고 미주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과 달리 현식은 술만 먹으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걸 자신도 알기에 가급적이면 술자리를 많이 가지지 않고, 스스로 조심하지만 오늘처럼 누군가 자신을 케어해 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급하게 술을 먹어댔다. 다행이 그럼에도 별다른 주사는 없었다. 굳이 주사라면 술에 취해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어 버리고 아침이면 숙취 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정도였지만 그건 술을 먹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증상이었다.
- 야, 진우야 -
- 네 -
벌써 혀가 살짝 꼬인 음성으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진우가 대답을 했다.
- 너, 이제 우리 처제 잊고 좋은 사람 만나라 -
- ......... -
현식의 말에 진우의 표정이 굳어지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주가 난감한 표정으로 현식의 팔을 흔들었지만 현식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손위 동서로 우리 처제 잊지 않는 건 고마운데, 내 후배로써 보면 네가 안타깝다. 허우대 멀쩡하지, 성격 모나지 않고 괜찮지, 사람들한테 잘 하지, 뭐 돈 많이 버는 그런 직장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식구 굶기지 않을 테지.. 마음만 먹으면 좋은 여자 얼마든지 만날 수 있잖아 -
- 그만해요, 선배 -
진우가 선배라는 호칭을 쓰며 현식의 말을 막았다.
- 자식은 뭘 그만해, 이 선배 말이 우습다 이거냐 -
- 누가 그렇데요, 제가 알아서 할 게요 -
- 뭘 알아서 해... 알아서 하는 놈이,.. 이렇게 혼자 청승맞게 여행이나 다녀.. 임마, 여행은 혼자 다니는 거 아니야, 알았어.. -
- 네 -
대답을 한 진우가 술잔을 들어 술을 비우자 미주가 그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털썩... ]
- 후우..... -
현식을 침대에 눕힌 진우가 허리를 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미안해요, 제부 -
- 아닙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그나저나 일곱 시도 안 됐는데 이렇게 취해서 어떡하죠? -
- 괜찮아요, 제부도 알잖아요, 이러면 아침까지 세상모르고 자는 거, 내가 깨우지 않으면 아마 12시까지 못 일어 날 걸요 -
- 술에 취해 이럴 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온 건지 -
- 누가 아니래요 -
- 전 제 방으로 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세요 -
- 네, 고생했어요 -
미주의 말에 미소를 지어보인 진우가 돌아가자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남편을 바라보던 미주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극히 보수적인 성격에 남에게 싫은 소리 제대로 못하는 남편이지만 오늘처럼 후배인 진우나 가족에게는 늘 큰소리를 치는 남편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늘처럼 친한 지인들과 술이라도 먹는 날이면 인사불성이 되는 남편이 더욱 못마땅했다. 아까 진우의 말처럼 여행을 와서 초저녁에 이런 모습을 보여줄 거면 뭐 하러 이 먼 곳까지 왔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 .......... -
잠든 남편을 바라보던 미주가 방 불을 껐다. 그리고 침대 한 켠에 앉아 바로 옆에 베란다로 향하는 큰 창가를 통해 보이는 바다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는 어둑한 바닷가에는 연인들로 보이는 남녀 몇 쌍이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미주가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려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을 바라보다 한 숨을 내쉬었다. 연예를 할 때는 늘 꼼꼼하고 약간은 보수적인 성격의 남편이 좋았었다. 생활패턴도 일정했고 늘 자신을 배려하는 모습에 이끌려 결혼을 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남편의 그런 생활이 조금은 답답하고 무료하게 느껴졌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을 하면서 남편의 모든 것은 아이에게 맞춰졌다. 누나 둘만 있는 외아들로 자란 탓도 있겠지만 아들에 대한 남편의 애정은 각별했고, 특히 시댁 식구들의 아들에 대한 정성이 혀를 내둘렀다. 바로 손위 동서인 둘째 누나에게 아들이 있기는 했지만 지방에 사는 탓에 일 년에 두어 번 밖에 보지 못하는 외손자보다는 지척에 있는 친손자에게 시부모는 애정을 쏟았던 것이다. 그런 탓에 남편은 잘 때도 아들을 침대에 함께 재웠다. 당연 부부간의 섹스는 확연히 줄어 들어버렸다. 간혹 아이가 주말에 시부모 댁에 가 있어도 남편은 자신을 안자주지 않았다. 간혹 관계를 가질 때도 있었지만 남편은 짧은 전희에 이은 삽입에 몰두했고, 그나마도 정상체위 만을 고집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그나마도 사정의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면 자신을 꼭 끌어안고는 삽입 운동만을 되풀이 했다. 간혹 그 순간 키스를 하고 싶어 남편의 입술을 찾을라치면 남편은 자신을 더욱 세게 끌어안고 혼자만의 절정을 향해 달려갔고 섹스가 끝나면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남편은 늘 가정을 우선시하는 남자였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했지만 가정과 집, 그리고 식구 밖에 모르는 남편의 모습은 조금씩 무료한 일상을 만들어 갔고, 남편의 관심이 아들에게로 향하며 자신은 어느덧 남편과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가정부 같은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세월이 지나며 부부 싸움이라도 하면 몇 주간이고 자신과 대화도 하지 않는 남편의 성격엔 가끔 진저리가 쳐지기까지 했다. 그런 순간이면 자신은 작은 방에서 혼자 자야했고 자신이 먼저 미안하다고 하기 전에는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살기에 평온한 삶을 살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남편과 단 둘이서 뜨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혹 들기고 했다. 특히 친구들이 부부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남편은 아직도 일주일에 반 이상은 자신을 안아준다거나, 또는 장난처럼 자기 신랑은 아직도 정력이 넘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솔직히 그런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아직 자신은 남편과의 섹스에서 정신을 잃을 만큼의 절정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절정은 둘째 치고 남편이 자신을 여자로 안아주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번 여행도 그런 마음으로 승낙을 한 것이다. 집이 아닌 여행지라면 남편이 자신을 따스하게 안아주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술에 취해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 ........ -
물끄러미 남편을 바라보던 미주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커튼을 치고는 침대 옆 소파로 가서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마지막 팬티까지 모두 벗은 미주는 벗은 옷을 정리하고는 욕실로 들어갔고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 후우.... -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진우가 젖은 몸을 닦으며 한 숨을 내쉬었다. 제법 탄탄한 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살짝 흔들리고 있는 물건도 튼실해 보였다. 그렇게 몸을 닦은 진우가 가방에서 속옷을 꺼내 갈아입고는 간편한 트레이닝복을 입기 시작했다.
- 선배 때문에 대충 먹었더니 아쉽네, 맥주나 사다 먹을까 -
입맛을 다신 진우가 지갑을 찾아 주머니에 넣고는 나서고 있었다.
[ 땡... ]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서려던 진우가 움찔했다. 처형인 미주가 타고 있었다.
- 어, 어디 가세요? -
가벼운 트레이닝 복 차림을 한 미주에게 진우가 물었다.
- 지하 슈퍼에요, 맥주나 마실까 해서.. -
- 어, 저도 그럴 참인데 -
- 뭐해요, 어서 타요 -
미주의 말에 진우가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이내 문이 닫히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진우가 젖은 머리를 하고 있는 미주를 다시 응시했다.
- 근데 안경은? -
- 아, 그냥 벗고 나왔어요, 먼데 가는 것도 아니라.. -
눈이 많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물을 볼 때 인상을 찡그리는 버릇이 있어 할 수 없이 미주는 안경을 꼈던 것이다. 허나 진우는 가끔 안경이 미주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미주는 안경을 벗을 때가 더 괜찮아 보였다. 특히 오늘은 더욱 그랬다. 아마 샤워를 한 듯 촉촉한 피부를 하고 있는 안경을 벗은 처형의 모습이 의외로 괜찮다는 생각을 진우는 했다. 더군다나 수영 선수를 했던 처형은 생각보다 괜찮은 몸매를 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미모는 처형의 동생인 죽은 아내가 더 괜찮았지만 운동을 한 처형은 160대 후반의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 제부 -
- 네 -
처형을 살짝 훔쳐보던 진우가 흠칫 놀라며 대답을 했다.
- 우리 그러지 말고 나가서 맥주 할래요? -
- 나가서요? -
- 네, 어차피 그이는 아침까지 못 일어날 테고, 청승맞게 캔 맥주나 사서 들어가기엔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여행인데.. 안 그래요? -
- 그렇기는 한데... -
- 가요, 우리.. -
- 네 -
혼자 먹는 것보다는 그래도 둘이 먹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진우는 대답을 했고, 리조트 바로 옆에 위치한 술집 말고 해변 도로를 따라 십 분 정도 떨어져 있는 호프집을 찾아 들어갔다.
- 생각보다 사람이 없네 -
자리에 앉으며 하는 미주의 말에 진우도 안을 살폈다. 아마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듯 내부 인테리어는 제법 좋아 보였지만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이내 맥주와 안주를 시켰고 매주가 나오자 시원하게 들이키기 시작했다.
- 제부.. -
- 네 -
삼천짜리 피처 하나를 더 주문하고 맥주잔을 다시 채운 미주가 진우를 불렀다.
- 이제 다른 여자 만나야 하지 않아요 -
미주의 말에 진우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맥주를 마셨고 미주도 씁쓸한 표정으로 진우를 응시했다.
- 아직은 생각 없습니다 -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진우가 말을 했다.
- 왜요? 벌써 삼 년이 다 되어가잖아요, 제부도 이제 새로운 삶을 찾아야죠 -
- 나중에.. 때가되면 그러겠죠.. 아직은 혼자 있고 싶어요 -
- 만나는 여자 없어요? -
- 없습니다. 아시잖아요,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데 사람을 어떻게 만납니까 -
- 그래도 이런 날엔 혼자 여행오지 말고 여자라도 만나면 좋잖아요 -
- 귀찮아요, 좋은 여자도 없는 것 같고.. -
- 안 찾으니까 없죠 -
- 그럼, 처형이 한 명 소개 시켜주세요, 말로만 그러지 말고.. -
- 난 싫어요 -
- 네? -
미주의 말에 진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난 연주 언니잖아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솔직히 내 손으로는 제부 못 보내요, 제부가 알아서 우릴 떠나면 모르겠지만.... -
- ........ -
진우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미주는 진심이었다. 진우가 좋은 여자를 만났으면 하지만 막상 진우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서운하기는 할 것 같았다.
- 이런 거 보면 나도 참 못됐죠? -
- 왜요? -
-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뒤로는 딴 마음먹고, 나중에 벌 받을 것 같아요 -
- 무슨 그런 소릴 하세요, 그게 솔직한 사람 마음이죠, 그리고 처형은 좋은 사람입니다. 아마 처형 같은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나면 두 손 들고 환영 할 겁니다 -
- 피, 왜 사람 놀리고 그래요 -
- 정말인데.. -
눈썹을 움찔하며 하는 진우의 말에 미주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미주는 진우가 좀 더 자신들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동생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편 때문에 자주 만나는 진우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가끔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남편과 언쟁이 생기면 진우는 무조건 자신의 편을 들어주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주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자신의 남편이 진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무슨 걱정거리 있어요? -
잠시 대화가 끊기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응시하는 미주에게 진우가 물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미주의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미주는 이내 시선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 아뇨, 일은 무슨.. 그냥 부러워 보여서요 -
- 뭐가요? -
- ........ -
말없이 미주가 다시 시선을 돌렸고, 함께 시선을 돌리던 진우의 눈에 무언가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듯 함박웃음을 웃으며 걷고 있는 남녀가 보였다. 특히 남자의 팔을 두 손으로 잡은 채 걷고 있는 여자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 뭐가 저렇게 좋을까요? -
함께 여자를 바라보던 미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글쎄요, 아무리 봐도 그냥 연인 같지는 않고 부부처럼 보이는데.. 아냐 혹시.. -
- 혹시 뭐요? -
시선을 돌린 미주가 진우에게 묻자 진우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 있잖아요, 그런 거... 불륜.. 뭐.. 그런 거... -
진우의 말에 상체를 살짝 숙이던 미주가 몸을 세우며 진우를 흘겼다.
- 암튼.. -
- 왜요? -
- 불륜은 무슨 불륜이에요, 딱 봐도 부부 같은데.. -
- 아니, 둘이 너무 행복해 보이잖아요, 보통 부부하면 저렇게 다정하지는 않잖아요 -
- 아이, 정말... 이봐요, 정 진우씨.. 그렇게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지 말아요, 그리고 불륜이면 어때요,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
- 네? -
진우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미주가 다시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 말로만 부부고 원수처럼 지내는 부부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이잖아요, 설령 저 두 사람이 불륜이라고 해도.. 저 여자는 저렇게 행복해 하는데... -
- ......... -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추는 미주를 응시하던 진우가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 사람은 불륜 사이로 보이지 않았다. 부부이거나 아니면 늦은 나이에 연애를 하는 커플로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미주의 말처럼 너무 행복해 보였다.
- 그렇게 부러워요? -
- 좋잖아요, 저렇게 다정하게 산책도 하고, 나도 다정하게 손잡고 바닷가 거닐고 싶었는데.. -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말을 하는 미주를 바라보던 진우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 저기, 서 미주씨.. -
- ........ -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은 미주가 진우를 응시했다. 제부인 진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 왜 그렇게 놀래요, 내 이름 먼저 부른 게 누군데요.. -
- ....... -
진우의 말에 아하는 표정을 지은 미주가 미소를 머금었다.
- 그리고 전에 그러지 않았나요, 무언가 의논하고 싶을 땐 친구 하자고... -
- 지금은 의논하는 그런 자리 아니잖아요 -
- 뭐, 그렇기는 한데.. 제가 하려는 말이 친구라야 가능한 거라서.. -
- 뭔데요? -
- 그럼 오늘 친구 하는 겁니까? -
진우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요, 어차피 내가 먼저 꺼낸 말이고, 오늘은 여행을 와서 둘 만 있는 거니까, 오케이 친구로서 할 말이 뭔데요? -
- ....... -
평소에도 꾸밈이 없는 성격을 가진 미주가 시원하게 말을 하자 진우가 미소를 지었다.
- 술 다 먹고 산책 할래요, 바닷가? -
- ....... -
조금은 의외의 말이었지만 미주는 이내 진우가 조금 전 자신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걷던 연인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자신을 위해 내린 제안임을 알았다. 미주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 싫으면 말고요 -
- 손잡아 주는 거예요? -
- 그래도 손은 좀.. -
- 피, 무슨 친구가 손도 못 빌려줘요, 되게 비싸게 구네, 유부녀 친구라서 싫다 이거죠 -
- 후우.. 치사하게 그런 공격을.. 좋아요.. 손잡아 드리죠 -
- 약속 했어요 -
- 네 -
진우가 대답을 하자 미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남편과 함께 걷고 싶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제부 진우와 함께라면 나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약속이 끝나자 미주는 조금 빠르게 술잔을 비워갔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술집을 나서고 있었다.
- 안 추워요? -
- 괜찮아요 -
진우와 나란히 걸으며 대답을 한 미주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진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처형 -
- 아이, 친구.. 처형이 아니라 친구.. 우린 지금 친구 사이란 걸 잊지 말아요 -
- 아. 알았어요, 친구... -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고 미주가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 근데 왜 불렀어요 -
- 아.. 그게.... -
진우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하지 않자 미주가 그런 진우를 응시했다.
-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여러 가지로.... -
- 난.. 또... 그 소리는 그만해요 -
- 아뇨, 오늘은 친구라니까, 마음 편하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여러 가지 신경 써줘서 말입니다 -
- 피, 그러면 근사한 선물이라도 하나 사주던가 -
- 훗, 뭘 사줘야 하는데요 -
-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사주는 친구가 알아서 해야죠, 많이 고마우면 비싼 선물 사주는 거고, 조금 고마우면 싼 거 사주는 거지, 그런데 보니까.. 친구는 많이 고마운 것 같은데, 맞죠? -
미주의 말에 진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췄고, 미주는 히죽거리며 진우를 응시했다.
- 이야, 내가 친구를 잘 못 봤네, 난 친구가 되게 순수한 줄 알았는데, 완전 속물이네, 속물... -
- 어머, 내가 왜 속물인데요 -
- 지금 나보고 비싼 선물 내놓으라고 그랬잖아요 -
- 내가 언제요, 많이 고마우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그랬죠 -
- 어라, 그게 그 소리잖아요 -
- 어떻게 그게 그 소리에요, 분명히 아 다르고 어 다른데.. -
- 허.. 우와.... -
진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크게 미소를 짓던 미주가 손을 잡아끌며 걸음을 옮기자 진우도 함께 걸음을 옮겼다. 진우와 함께 손을 잡고 걸음을 다시 옮기던 미주가 시선을 돌려 진우를 살짝 응시했다. 비록 남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진우에게 알 수 없는 작은 설레임을 느꼈다. 마치 조금 전 보았던 연인들처럼 자신도 진우와 연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 ........... ]
밀려온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걸 바라보며 걷던 미주가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지자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겼다.
- 저기가 끝인가 봐요? -
해변 끝자락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 무덤을 보며 미주가 물었다..
- 아니에요, 저 바위 옆에 보면 사람 한 명 정도 지나갈 틈이 보이는데 거기로 들어가면 짧지만 모래사장이 이어져요 -
- 어디요, 바위만 보이는데요 -
- 밤에는 길이 잘 안 보여요, 그리고 가 봐도 별로에요, 바위가 솟아있는 모래사장이라 산책도 하기 불편해요, 길이도 무지 짧고.. -
- 어떻게 알아요? -
- 아까 낮에 기다리면서 와 봤어요 -
- 그래요, 그래도 가 볼래요 -
- 마음대로 해요 -
미주의 말에 진우가 먼저 앞질러 갔고 미주도 그 뒤를 따랐다. 어느새 두 사람은 손을 놓고 있었다.
[ 촤아아... 철썩.... 파아아아... ]
바위가 많아서 일까, 아니면 한적한 밤바다의 적막 때문일까, 밀려온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크게 들렸다.
- 조심... -
바위에 도착하자 바위 뒤의 좁은 틈으로 먼저 발을 넣은 진우가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고 손을 내민 미주가 진우의 손을 내밀며 걸음을 옮겼다. 좁기는 했지만 사람이 지나가기 어렵지는 않았다. 미주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고, 밀려온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진우를 따르던 옮기던 미주가 틈을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