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가면 제19화
야누스의 가면 제19화
진우는 천천히 가슴에 안긴 미주를 떼어내고는 두 손으로 미주의 뺨을 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눈물 젖은 미주의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자 진우는 가슴 한 구석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미주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을 했다.
-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가지 마... 제발.... -
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 아냐.. 아냐... 넌 잘못한 게 없어, 내가 모두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주야.. -
- 나... 자기 여자지. 그렇지... 그렇지.... -
- ......... -
울먹이며 묻는 미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진우의 눈가에서도 가느다란 눈물이 흘러 내렸다.
- 울지 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 -
미주가 손을 들어 진우의 눈물을 손으로 훔쳐냈다. 일이 벌어지고 진우의 전화도 외면한 채 홀로 버려 둔 것이 미주는 너무 미안했다. 진우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외면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영의 말을 듣는 순간 미주는 오는 내내 자신을 탓했다. 자신의 행동이 진우로 하여금 떠날 것을 강요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사랑해... 진우씨..... -
- 그래.... 사랑해... 미주야... -
눈물 젖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던 두 사람이 이마를 맞댔고, 곧이어 두 사람의 입술이 살포시 포개지고 있었다.
- ........... -
진우의 입술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던 미주의 눈가에 가느다란 줄기를 그리며 눈물이 계속 흐리고 있었다. 미주는 입맞춤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진우에게 입술을 통해 전하고 있었다.
[ 잊지 마,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도 잊지 않을 거야.. 당신이 얼마나 날 사랑하는지도.... 영원히... 영원히.... ]
- ......... -
뒤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진우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미주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미주의 뒷머리에 입술을 밀착한 진우도 미주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자기 그거 알아? -
- 뭘? -
미주의 물음에 진우가 다정하게 물었다.
- 열흘 만에 안아준 거 -
- ......... -
미소를 지은 진우가 미주를 더욱 당겨 안았고 미주는 더욱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미주는 미소를 머금은 채 진우의 손등을 계속 어루만지고 있었다.
- 자기야 -
- 응 -
- 이제 어디가면 안 돼, 알았지? -
- ....... -
진우는 미소를 머금었다.
- 왜 대답이 없어, 도망 안 갈 거지? -
- 그래, 네가 있으라면 있고, 네가 가라면 갈게 -
- 그럼, 계속 있어야겠다. 가라는 말은 절대 안 할 테니까 -
- 정말? -
진우의 물음에 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우의 얼굴은 이내 굳어지기 시작했다. 미주의 남편이자 선배인 현식이 떠오른 것이다.
- 미주야 -
- 응 -
- 혹시, 선배가 널 힘들게 하면... -
- 됐어, 그 사람 이야기는 하지 마, 지금은 우리 둘만 이야기 해, 평소처럼... -
미주의 말에 진우가 입을 다물었고 잠시 침묵이 흐르던 순간 미주가 침묵을 깨려는 듯 입을 열었다.
- 자기야 -
- 응 -
- 나, 누구 여자야? -
늘 입버릇처럼 하던 질문이었지만 진우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미주는 침묵으로 진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 내 여자.. -
- 자기는 누구 남잔데? -
- 서 미주 남자.. -
진우의 대답에 미소를 지은 미주가 다가가 입맞춤을 하고 물러났다.
- 자기야.. -
- 응 -
다시 부르는 미주의 부름에 진우가 대답을 했다.
- 오늘은 우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우리 둘만 생각하자,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서로 사랑도 하고... -
- 그래 -
진우가 대답을 하자 미주가 진우의 손을 풀며 몸을 돌려 진우를 응시했다. 진우는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미주를 바라보다 손을 들어 미주의 뺨을 어루만졌고 미주가 그 손을 잡아 밑으로 내렸다. 한쪽 다리를 세워 보지에 손을 가져다 준 미주가 미소를 지으며 진우를 응시했다.
- 느껴져? -
- 뭐가? -
- 내 몸이 자기를 원하고 있는 거.. -
- ....... -
엷은 미소와 함께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 다시 안아 줘., 자기 가지고 싶어 -
- ......... -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지며 진우가 미주를 바로 눕히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입술을 떨어질 줄 몰랐지만 섹스를 준비하는 두 사람의 나신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의 움직임만으로 미주의 보지에 자지를 밀어 넣던 순간 진우는 자신을 끌어안는 미주를 마주 안으며 짙은 입맞춤을 이어갔다.
[ .......... ]
서서히 보지를 넘나드는 자지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지던 순간 입술을 뗀 미주가 미간을 찡그린 채 진우의 등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희열의 쾌락 속으로 함께 젖어들기 시작했다. 마치 두 사람에게 닥쳐왔던 엄청난 일은 모두 잊은 듯 두 사람은 언젠 가처럼 섹스의 희열을 느껴가고 있었다. 특히 진우의 등을 힘껏 끌어안은 미주의 얼굴에는 그 어떤 망설임과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희열 속으로 몰아가는 진우의 등을 안은 채 자신의 모든 것을 진우에게 맡기고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 ........ -
현식이 미주의 말에 놀란 표정으로 미주를 응시했다.
- 내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면, 당신이 모든 걸 밝히던 말든, 당신하고 이혼 할 거야 -
-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 삼년 동안 진우씨에게 날 허락했던 당신의 행동은 말이 된다고 생각해? -
- ........ -
미주의 말에 현식이 입을 다물었다.
- 대신, 당신이 날 안고 싶으면 안아도 돼, 난 엄연히 당신 아내고. 당신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면 난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당신에게 충실할 거야 -
- 껍데기만 안아서 뭐하게.. -
- 말했지, 난 최선을 다할 거라고.. 그게 참기 힘들면 이혼해... -
현식이 아내 미주를 노려보았지만 미주도 지지 않고 남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가능 할 거라고 보는데... -
- 그건 아무도 모르겠지,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선택은 없어, 최소한 나에게는.. -
- 만에 하나,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나면? -
- 상관 안 해, 나도 진우씨를 만나니까 -
- 그럼, 내가 다른 여자가 생겨도 당신을 안아도 된다는 말이지? -
현식의 말에 미주의 미간이 살짝 흔들렸다.
- 마음대로 해, 당신이 그러고 싶다면.... -
- .......... -
단호하게 말하는 아내의 음성에 순간 현식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렇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아내인 미주가 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 더 이상 아무 선택권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 그리고, 현우 일본가는 내일부터 주말까지 진우씨 집에서 지낼 거야 -
- 뭐? -
현식이 놀라며 물었다.
- 잠깐만이라도 그 사람과 하루 전부를 함께 하고 싶어, 그러니까 허락해줘 -
- 허락? 내가 허락 안하면 안 간다는 말이야? -
- 말했잖아, 난 당신 아내라고. 당신이 허락 안하면 안 가, 하지만....
- 하지만, 뭐? -
- 가고 싶어, 그러니까 허락해줘 -
- ......... -
현식은 대답하지 못했다. 쉽게 허락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시선을 통해 현식은 자신이 이것을 허락 할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 갔다 와... -
미소를 지은 미주가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진우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 혼자 심심하지 않겠어? -
- 괜찮다니까 -
- 졸리면 그냥 자, 알았지? -
- 싫다니까, 자기 품에 안겨 처음 잘 거야 -
자신과 일주일을 보내겠다고 미주가 찾아왔을 때만 해도 진우는 쉽사리 그 말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미주가 자신의 출근을 준비해주자 진우는 비로써 실감이 났다.
- 혹시, 먹고 싶은 거 없어? -
- 아니, 없어 -
- 그래도 첫 날 식사인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봐 -
- 먹고 싶은 건 없는데.... -
진우가 무언가를 말하여 하자 미주가 똘망거리는 시선으로 진우를 응시했다.
- 아니야, 됐어, 갈게 -
진우가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서자 미주가 그런 진우의 팔을 잡았다.
- 뭐야, 빨리 말해 봐 -
- 아니라니까.. -
- 아이, 빨리 말해, 안 하면 오늘 출근 못해 -
- 아니... 그게... -
- 쓰으읍.... -
미주가 소리를 내며 눈을 흘기자 진우가 다시 머뭇거렸다.
- 아니, 그게 먹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있어서.... -
- 그러니까, 뭐가 하고 싶은데? -
되물었지만 진우가 말을 하지 않자 미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 나, 화낸다... 그리고 말했지.. 일주일 동안 우리 부부라고.. 부부 사이에 못할 말이 어디 있어, 빨리 말해... -
미주의 단호한 음성에 흘끗거리며 미주를 바라보던 진우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 그게... 나 퇴근할 때 말인데... -
- 응 -
미주가 답답한 듯 대답과 함께 잡고 있던 팔을 당겼다.
- 그러니까, 나 집에 올 때.. 자기가 알몸으로 기다려줬으면 어떨까 해서.... -
진우의 말에 끝나자 몸을 뒤로 살짝 뺀 미주가 진우를 가만히 응시하자 진우가 이내 당황하기 시작했다.
- 아니, 내 말은.. 그러면 어떨까 생각해봤다는 말이야, 그러라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내 말은 그냥 잊어.. -
- ........ -
진우가 더듬거리며 말을 하던 순간 미주가 미소를 머금었다.
- 난, 또 대단한 거라고.... 겨우 그거야? -
- 어.. 으응... -
- 알았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기다리고 있을게 -
- 정말? -
진우가 이내 환한 표정으로 물었고 미주 역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 근데, 맨 날 보는 알몸인데, 또 보고 싶어? -
- 그렇기는 한데.. 이건 다르잖아 -
- 뭐가 다른데? -
- 남편이 퇴근을 했는데 예쁜 아내가 문 앞에서 알몸으로 자기를 기다린다... 으아..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팍 풀리잖아 -
- 내가 예쁜 아내야? -
- 당연하지, 얼마나 예쁜데 -
- 그럼, 여기 있는 내내 알몸으로 자기 기다려야겠다 -
- 어, 정말? -
- ......... -
미주가 고개를 끄덕였고 진우가 주먹을 쥐어 당기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 모습을 보며 미주는 너무 행복했다. 이토록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에 기뻐하는 진우가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진우에게 얼마나 사랑받는지 느낄 수 있었다.
- 늦겠다. 나가 봐 -
- 알았어 -
대답을 한 진우가 다가오자 미주는 진우와 입맞춤을 했고 진우가 문을 열고 나가자 현관에 다가선 미주가 문을 닫으려던 순간 진우가 다시 문을 열고 미주를 바라보았다.
- 약속했다. 알몸.. -
- 아이... 알았어 -
- 갔다 올게.. 사랑해... -
- 나도.. -
진우가 문을 닫자 미소를 지은 미주가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미주는 거실 한 쪽에 놓여진 짐 가방을 가져와 그걸 열기 시작했다. 가방에는 일주일 동안 진우와 지내기 위해 챙겨온 옷가지가 가득했고 미주는 그 옷들을 꺼내 분류하기 시작했다.
- 이건 장롱에다 그냥 두면 되고.. 이건 서랍.... -
옷들을 꺼내며 말을 하던 미주가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꺼내 놓은 옷들을 챙겨들고 안방으로 들어간 미주가 옷들을 챙겨 넣기 시작했다.
- .......... -
마지막 옷을 챙기고 서랍을 닫던 미주가 돌아서려다 말고 맨 위의 서랍을 열었다. 그러자 가지런하게 정리된 속옷들이 보였다. 미주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서랍 속에서 팬티 한 장을 꺼내 속옷 위에 펼쳤다. 언젠가 진우와 함께 인터넷을 뒤져 샀던 속옷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진우가 사준 속옷만이 가득한 서랍을 보며 미주는 이제는 자신의 집에도 진우가 사준 속옷만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속옷 대부분을 진우 앞에서 입었던 걸 떠올리며 미주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마주는 팬티를 정리해 다시 넣고는 서랍을 닫았다.
- ....... -
미주는 다음 서랍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도 첫 번째만큼은 아니지만 여자의 속옷이 있었다. 소영의 속옷이었다. 엷은 미소를 지은 미주가 소영의 속옷 하나를 꺼냈다. 자신과 달리 원색을 좋아하는 소영의 붉은 팬티를 꺼내 펼친 미주는 언젠가 소영이 이 속옷을 입고 진우에게 보여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미주는 다시 팬티를 정리하고는 서랍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나온 미주는 가방을 정리해 작은 방에 들여 놓고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 흐음.... 뭐부터 할까... -
기지개를 켜며 혼잣말을 한 미주가 이내 베란다로 걸음을 옮겼고 부주하게 움직이는 미주의 모습이 베란다 창을 통해 보이고 있었다.
- 여보세요 -
현식의 전화번호를 확인 한 진우가 무거운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 몇 시에 끝나냐? -
밑도 끝도 없이 물어오는 현식의 질문에 진우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 왜 그러시죠? -
- 한 번 만났으면 한다 -
- 무슨 할 이야기라도.. -
- 만나서 이야기하자, 내가 너희 회사 앞으로 가마 -
- 그러죠, 네 시에 끝납니다 -
- 그래 -
현식과 통화를 끝내자 핸드폰을 내린 진우가 새벽의 어둠이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현식이 술병을 들고 앞으로 내밀자 진우가 술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현식은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그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 진우야 -
- ....... -
술잔을 채운 현식이 진우를 불렀지만 진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런 진우를 잠시 바라보던 현식이 상관없다는 듯 말을 시작했다.
- 그래, 처음에는 돈 때문이었다 -
- ....... -
현식의 말이 시작되자 진우의 시선이 천천히 현식에게로 향했다.
- 어느 날 윤주가 날 찾아와서 삼백만 원만 빌려 달라고 했어, 집사람 모르게... 그게 시작이었어, 윤주에게 건너간 그 삼백만 원은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윤주와 날 묶었다. 처음에는 그냥 호의였을 거다. 돈을 빌려준 형부에 대한 호의... 시간이 지나며 윤주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술도 마시게 됐고 자연스레 당시 사귀던 남자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기 시작했어, 내가 빌려줬던 그 돈도 남자의 카드빚을 갚는데 썼다는 것도 알게 됐고.. -
잠시 말을 멈춘 현식이 술잔을 들어 술을 비웠다.
- 어느 날 집사람이 현우를 데리고 친정에 가던 날 윤주에게 전화가 왔어, 와 달라고... 난 윤주를 찾아갔고, 술에 취해있던 윤주는 날 잡고 울기 시작했어, 그 남자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이제 자기는 어뜩하냐고... 집에 데려다 주려고 했지만 윤주는 절대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고, 결국 윤주를 데리고 모텔에 갈 수 밖에 없었다 -
- ........ -
현식이 말을 멈추고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 그 날 안아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윤주의 몸부림을 난 결국 뿌리치지 못했다. 그리고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우는 윤주를 달래며 난 또 한 번 윤주와 관계를 맺었다. 윤주도 순순히 날 받아 들였고..... -
- ......... -
진우가 술잔을 들어 술을 비우자 현식이 그런 진우를 잠시 응시했다.
- 그 이야기를 왜 하시는 겁니까? -
- 너도 모든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
- 뭘 말입니까? -
- 왜 윤주가 나와 그런 관계를 시작했고 마지막에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
- 마지막 말? -
진우가 현식의 마지막 말이라는 단어를 곱씹자 현식이 다시 술잔을 들어 술을 비웠다.
- 윤주가 쓰러지고 마지막 입원을 하던 때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자기가 이 병을 이기고 살아남으면 이제는 네 아내로 살고 싶다고 말이다. 평생 자신이 지은 죄를 너에게 갚으며 네 아내로 살고 싶다고 말이다 -
- ......... -
현식이 말을 이어가던 순간 진우가 갑자기 술병을 들어 술잔을 채우고 술을 들이키자 현식이 가만히 진우를 응시했다.
- 그게 윤주의 마지막말 이었습니까? -
- 그래 -
- 그래서요? 그러니까 이제 와서 윤주를 불쌍히 생각하고 내 생각을 바꿔라 이겁니까? -
- ........ -
진우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고 현식이 말없이 진우를 응시했다.
-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숨을 거두기 얼마 전에 날 바라보며,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다음 생에는 당신 아내로 태어나 평생 살고 싶다고..... 그 말.. 그 말을 들으며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압니까.... 미안했어요... 너무 미안했어요... 아무것도 못하고 아내를 떠나보내야 하는 내가 너무 미웠고.. 하루하루 삶의 끈이 엷어지는 아내를 보며 나도 함께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
- ........ -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진우가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가엾게 생각했던 아내에게 남자가 있었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 형부였던 남자, 남편의 선배였던 남자 말입니다. 근데 더 기가 막힌 건 그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나와 결혼을 했다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
진우의 눈가가 붉어졌다.
- 만에 하나 그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선배와의 관계 정리했을까요? 그렇게 생각합니까? -
- ........ -
현식은 대답하지 못했다.
- 윤주.... 가여운 사람이죠, 병 때문에 짧은 생을 마감한 가여운 여자 맞습니다. 그리고 내 아내였고 말입니다. 그 두 가지를 제외하면 서 윤주란 여자, 저에게 어떤 의미의 여자일 것 같습니까? -
- .......... -
- 대답해 보세요, 어떤 여자 일 것 같습니까? -
- 그래, 네 마음 안다, 하지만 이미 윤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잖아 -
- 그래요, 그게 날 더 화나게 합니다. 윤주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가엾게 세상을 등지지만 않았어도...., 서 윤주란 여자 내 손으로 망가뜨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선배 당신도 말입니다.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날 속였을 테니까...... -
- 그래서 네가 얻는 게 뭔데? -
현식의 물음에 순간 진우의 미간이 움찔했다. 그리고 잠시 현식을 응시하던 진우가 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 큭... 하하... 지금 내가 얻는 걸 물었습니까? 그럼 내가 묻죠, 내가 모든 걸 알고도 가만있으면 난 뭘 얻게 되는 겁니까? -
- ......... -
- 아.... 병신, 머저리, 등신.. 뭐 그런 걸 얻으려나.... 큭큭.... -
웃음을 웃던 진우가 웃음을 멈추고 현식을 노려보았다.
- 미주가 당신에게 일기를 보여줬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어 -
- ......... -
진우가 현식에게 말을 놓았지만 현식은 가만히 진우를 응시했다.
- 그 일기장엔 당신을 향한 윤주의 마음이 적혀있어, 그것도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당신을 원망하지만 당신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이야. 흔히들, 그러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고...... -
- ........ -
- 당신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향한 윤주의 마음, 그래 사랑이라고 하자... 그것도 금기의 선을 넘은 숭고한 사랑이라고 하자고... 당신 둘 사이에 낀 미주가 가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정해 주지, 그런데.. 거기에 당신은, 아니 윤주는 날 끌어 들였어.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나란 사람을 끌어 들였어, 그 순간 당신, 아니 너희들의 그 가여운 사랑은 추악한 사랑이 된 거야, 왜냐면 너희에겐 너희 사랑만 중요했어. 다른 사람의 삶이나 다른 사람의 고통은 아무 상관이 없었어, 오로지 너희 둘만 중요했으니까... -
- ........ -
- 오늘 당신이 날 만나 왜 윤주의 이야기를 하는지 난 아직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히 알아 둬, 당신에게, 그리고 윤주에게 소중했던 그 사랑은 나에게는 추악한 사랑이었어, 오로지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랑이었으니까, 그건 미주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
진우가 술잔에 술을 채워 술잔을 급하게 비웠다.
- 내가 지금 제일 후회되는 게 뭔지 알아? -
- ....... -
진우가 물었지만 현식은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 다시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 바로 미주야, 나 때문에 미주도 내가 말했던 그 멍울을 뒤집어썼으니까, 이기적이고, 추악한 사랑.... -
- ....... -
잠시 말을 멈춘 진우가 무언가를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 당신과 윤주, 그리고 미주와 나.... 결국 같은 인간들이 되어버렸어, 난 한동안 당신과 윤주를 마음껏 저주하고, 마음껏 비웃을 수 있었어, 그리고 내가 미주를 범하지만 않았어도, 미주 역시 남편과 동생에게 배신을 당한 가여운 여자였을 거야, 당신과 윤주를 마음껏 미워했을 테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어 나도, 미주도 당신과 윤주를 탓할 수 없어, 우리도 이젠 우리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
진우가 다시 술잔을 채웠다. 그런 진우를 바라보던 현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미안하다, 이 모든 게 어쩌면 나 때문에.. -
- 늦었어, 그런 사과는.... -
현식의 말을 가로막은 진우가 말을 내뱉고는 술잔을 비웠다.
- 이미 모든 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어, 이제 와서 후회한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리 모두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만 거야, 나도, 미주도, 당신도....... -
- 그런가? -
- 후회하기에는 우린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와 버렸어,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우리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 말고는 없을지도 몰라 -
- ........ -
진우의 마지막 이야기를 끝으로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진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지만 현식은 말없이 그 자리에 앉아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혼자 앉아 술을 마시던 사람처럼 말이다.
- ......... -
그렇게 술잔을 비우던 현식의 시선이 맞은편에 놓여진 진우의 술잔으로 향했다. 진우의 술잔은 채워져 있었고 그 술잔을 바라보던 현식이 조용히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그래, 너무 멀리 왔나보다.. 너무 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