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 24화
지배자 24화
소란 + 호출 벨에 힘 좀 쓰겠다 싶은 남자들이 나타났지만 진호는 시간 정지로 적절하게 그들을 물리쳤다. 진호를 막으려다 재차 헛손질만 하던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넘어지거나 균형을 잃어야 했고, 진호는 높은 구두 탓에 불편한 걸음을 옮기는 아라를 데리고서도 유유히 그 좁은 통로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뒤에 있는 아라 입장에서는 마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 최아라의 이성 호감도가 10 올랐습니다. ]
[ 최아라의 이성 호감도가 95가 됐습니다. ]
그렇지만 불안한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게, 이렇게 멋대로 저곳을 빠져나와도 되는 건가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진호가 다그쳤다.
“이 바보야, 너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저기 계속 있고 싶어? 저 아저씨가 너 성추행한 거 아니었어?”
“그, 그렇지……? 아까 그거 잘못된 행동인 거 맞는 거지……?”
아이쿠야. 아무래도 자신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조차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진호가 말했다.
“저 아저씨가 널 만졌을 때 네 기분이 어땠어?”
“시, 싫었어…….”
“그런데 왜 거부를 안 했어?”
“그…… 대표님과 이미 얘기가 돼 있다고 해서 난…….”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어느새 두 사람은 룸살롱을 빠져 나온 상태였다. 그대로 도보를 따라 걷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바로 타고 가는 진호와 아라! 조금 뒤 룸살롱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택시 안에서, 아라는 계속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파우치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 켠 아라는 곧바로 걸려 오는 전화에 발을 동동 굴렸다.
“어, 어떻게!? 대표님이 나한테 전화하고 계셔!”
아직도 그런 사람을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건가……. 진호가 말했다.
“받아 봐.”
“뭐, 뭐라고 해야 할지 잘…….”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 아, 휴대 전화에 녹음 기능 있지? 그거 반드시 켜고.”
그럼에도 진동하는 휴대 전화를 바라보기만 하는 아라였다.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기댈 무언가가 필요한 듯했다. 진호는 아라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꽉 잡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곁에서 네 편을 들어줄게. 약속해.”
“어…… 응…… 알았어…….”
[ 최아라의 이성 호감도가 5 증가했습니다. ]
[ 최아라의 이성 호감도가 100이 됐습니다. ]
역시 “의지가 되는 남성.”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심호흡을 조금 하던 아라가 결국 진호의 손을 꽉 마주 쥐며 휴대 전화를 들었다. 켜자마자 고성이 들려왔다.
「넌 대체 뭐하는 거야!?」
“아, 예!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하는 꼴을 보자니 진호는 답답했지만, 일단은 아라에게 맡기는 진호였다. 진호한테도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휴대 전화 밖으로 울려 퍼졌다.
「그 자리를 멋대로 빠져나오면 어떡해!? 우리 회사랑 너희 팀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되도 좋다 이거야!? 그렇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회사에는 뭐 하러 들어왔어? 엉?」
“아, 아니 그게…….”
흘낏 진호를 보는 아라! 진호가 다시금 양손으로 아라의 한 손을 꽉 잡아 주며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도 간신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무, 무대 행사인 줄 알았는데 왜 그런 곳에…… 거기에 그 분…… 갑자가 술을 마시다가 취하셨는지 제 허벅지랑 다른 곳을 자꾸만…….”
「아라야.」
착 가라앉은 목소리. 아라의 몸이 움찔하는 게 그녀의 손을 통해 진호에게도 전해졌다. 그 대표란 사람이 말을 이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거야. 그럼 내가 그걸 대놓고 얘기해야겠니? 너 말고 다른 언니나 동생들이 그런 곳에 갔으면 좋겠어? 원래 그룹이 뜨려면 한 명 정도는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조금 만져진다고 해서 닳는 거 아니잖아? 응? 안 그래? 지금 뜬 애들도 다 이런 식으로 방송 따내고 그러는 거야. 알겠어?」
당연히 그럴 리가 없겠지만, 아라는 그 와중에도 “아, 네에…….”라고 그저 호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대표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좋아. 다시 돌아가. 거기 웬 남자 한 명이 찾아왔다며? 너 설마 나 몰래 연애라도 했던 거냐? 남자 친구야?」
“아니, 그런 건 아니라 그냥 친구인데요…….”
「어쨌든 좋아. 지금 당장 그 친구 집에 보내고 아까 거기로 가. 그리고 죄송하다고 하고 이번에는 끝까지 그 분이랑 어울려 주는 거야. 알겠지?」
“…….”
「아라야, 내 말 듣고 있어? 아라야.」
뚝. 진호가 멋대로 전화를 빼앗아 끊어버리자 아라는 기겁했다.
“지, 진호야 끊으면 어떡해!? 그럼 대표님이 더 화낸단 말이야!”
“그럼 다시 거기 갈 거야?”
“…….”
어지간히 싫은지 웬만하면 그런 표정을 짓지 않는데,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짓는 아라였다. 진호가 말했다.
“일단 오늘은 숙소…… 아니, 집에 가고…… 아니다. 집이 대전이랬지. 부모님 지금 계셔?”
“아니, 해외 여행 가신다고 했는데…… 여름 휴가 받으셔서…….”
그녀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의지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무척 불안감이 심해진 모양이었다. 진호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집에 가자.”
“너, 너희 집에!?”
“뭘 그렇게 놀라? 그냥 집에 가서 하룻밤만 자고 나오자는 건데.”
“하, 하룻밤만!?”
아무래도 오늘 일로 이상한 쪽으로만 정신이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진호가 말했다.
“아니면 숙소로 돌아가든가.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너희 집 넓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던진 질문이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진호의 집은 넓었다. 진호의 아파트에 도착한 아라가 말했다.
“부모님 집이 대전이라고 하지 않았어?”
“응? 이거 내 집이야.”
“…….”
[ 최아라의 이성 호감도가 5 올랐습니다. ]
[ 최아라의 이성 호감도가 105가 됐습니다. ]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시스템 메시지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역시 여자는 집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자신도 아라처럼 예쁜 여자가 좋기는 했지만 말이다.
“대출 없이?”
“……묘한 부분에서 현실감이 있구나.”
그래도 다행인 건, 그녀가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찾은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농담은 어느 정도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법이니까.
살짝 웃어 보인 아라는 다시금 치마 밑을 잡아 내리며 집 안을 둘러봤다.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잠깐 기다려. 내 티셔츠랑 반바지 줄 테니까.”
“아, 응…….”
원래 잘 정리 같은 거 안 해 놓는데, 전에 아름과 함께 살 때 아름이 옷을 다 빨아서 잘 정리해 준 덕분에 손쉽게 아라가 입을 만한 옷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옷을 입고 나온 아라는 왠지 가슴 부근에서 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소파에 앉을 때까지 그래서 진호가 아라의 생각을 읽으니,
「캡 내장 원피스를 입어서 브래지어가 없어. 나 안 그래도 젖꼭지 큰 편이라 그냥 티셔츠만 입으면 완전히 티 나는데…… 진호한테 브래지어를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이참 어떡하지…….」
그런 고민이 있는 모양이었다. 진호는 일부러 물었다.
“손은 왜 그렇게 올리고 있어? 어디 불편해?”
“응? 아, 아니야! 그냥! 그냥 습관이야!”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고 쿠션 한 개를 가슴에 안는 아라! 그제야 안정이 된 모양이었다. 진호가 물었다.
“너, 그대로 계속 있었다가는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고? 아까도 그 대표란 사람이 ‘끝까지’ 어울려 주라고 했잖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
알겠는지 몸을 더 쿠션을 향해 마는 아라였다. 그녀가 문득 중얼거렸다.
“나 이제 어쩌지? 내일 회사 가면 엄청 혼날 텐데…….”
“…….”
아직도 혼날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진호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방금 전화 통화 내용만 경찰에 신고해도 성상납 강요로 죄 유무를 따져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호가 말했다.
“너는 이런 대접을 받았는데도 계속 그 회사에 있고 싶어?”
“그, 그건 그렇지만…… 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아무래도 그녀에게 방금 그 상태에서 일이 더 진행됐으면 어떻게 됐을지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진호였다.
“아까 그 옷 다시 입고 와 봐.”
“응? 왜?”
“아까 그 상황을 재연해 보게. 내가 그 아저씨 역할을 할게.”
“윽…….”
다시 떠올리자 싫은 기분이 든 모양이었다. 진호는 그녀에게 말했다.
“싫지? 그럼 이번 일은 제대로 마무리해야 해.”
“어떻게?”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나한테 맡겨.”
“아, 으응…… 고마워, 진호야.”
수줍게 고마움을 표현하던 아라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진호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내가 거기에 있던 건 어떻게 안 거야?”
“그냥 느낌이 왔어. 무언가 엄청 불안한 느낌이. 내가 원래 그런 신기가 있거든.”
“으응…… 그래……?”
잘 못 믿는 눈빛이었지만, 진호가 워낙 당당하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지는 모양이었다. 원래 뭔가 따지는 걸 잘 못하는 편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그날 밤은 아라를 진호의 집에서 재우고, 아라는 진호의 지시대로 다음날 본인의 소속사로 돌아갔다.
*
진호는 소속사 사무실 건물 앞까지 찾아와서 아라에게 지시대로 할 것을 당부하고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아라는 같이 들어가 주기를 원하는 모양이었지만 진호는 밖에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억지로 그녀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투명화 사용 후 아라를 따라가는 진호! 어제 그 캠코더는 여전히 들고 있는 상태였다.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잡은 뒤에 신고해야 발뺌을 못하지.’
어제 그 통화만도 사실 충분했지만, 이 바닥이 이런 건 쉬쉬하는 경향이 많다는 걸 인터넷으로 들은지라 정말 확실하게 처리하고자 이런 일을 벌인 진호였다.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그런데 중소 기획사답게 사무실이 무척 부실했다. 겨우 한 층을 사무실로 쓰는 것에 불과했다. 평수가 넓은 건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들어서니 잔뜩 화가 난 그 대표란 사람이 안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게 진호 눈에 들어왔다. 아라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고양이를 앞에 둔 쥐마냥 움츠러들었다.
“너 최아라! 어제 전화는 왜 꺼 놨어!? 내가 어제 거기로 다시 가라고 했어 안 했어!? 어!?”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런 곳은 조금 어려워서…….”
“뭐야!?”
쾅!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쳐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 대표! 매니저 중에 조폭 출신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이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의심스러운 정도로 인상이나 행동이 거칠었다.
그의 생각을 읽으니 더 가관이었다. 아무래도 어제 그 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모양이었다. 거기서 아라가 옷 벗고 뒹굴었으면 그거로 협박해 더 그런 쪽으로 굴릴 생각이었던 듯했다. 아니면 자신도 한 번 가지거나 한다든지 말이다.
‘이러면 별 망설임없이 본래 계획을 쓸 수 있겠는데?’
지금도 분위기는 격해지고 있었다. 원래 직원이 없는 건지 아직 출근을 안 한 건지 모르겠는데 사무실에는 아라와 그 대표란 사람만 있었다. 아라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계속 반항하자 결국,
짝!
손찌검을 내는 대표였다. 뺨을 맞은 아라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표를 바라봤다. 설마 폭력까지 휘두를 줄은 생각도 못한 듯했다. 거기서 진호가 한 번 더 나섰다.
‘시간을 정지하고.’
그 대표에 입 안에 미약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 재생. 잠시 말을 멈췄던 그 대표가 곧 문을 잠그더니 아라를 향해 다가왔다. 아라는 그의 바지 앞섶이 부풀어 오른 것과 그의 분위기를 보고 어제와 같은 느낌을 받은 듯했다.
“사, 사장님?”
“……왜? 내가 어제 네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알려 주마!”
“꺄아아아악!”
아라는 도망치려 했지만 사장한테 잡혀버렸다. 그대로 어제 입었던 원피스가 다시 벗겨지고, 그 사장의 물건이 아라의 중요한 부위에 닿으려는 찰나 만능키를 쓴 진호가 안으로 난입해 사장을 몰아냈다.
0072 / 0087 ----------------------------------------------
ZM 합격?
“이게!?”
거침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사장! 미약과 분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대로 경찰에 신고한 진호는 어제 통화 내용과 사무실에서 몰카 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경찰은 그 대표를 구속했다. 진호가 미약을 계속 먹인 관계로 경찰이 올 때까지 아라를 덮치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현행범인 셈이었다.
그렇게 소속사 대표를 보내고 며칠 뒤, 진호는 초췌한 모습의 아라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결국 쥬피터는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연이어 큰일을 겪은 관계로 진이 다 빠진 듯한 모양새였다.
“이거 좀 먹어.”
“고마워.”
밖에서 만나서 같이 점심 식사를 하게 된 두 사람이었다. 일단은 아라가 쏘는 거였다. 전에 진호가 도와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라가 말했다.
“이제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야 하나 봐. 살 곳도 없어지고 진이 다 빠져버렸어.”
“그래?”
곁에 두고 두고 두고 먹으려고(?) 했는데, 내려간다니 아쉽다는 생각을 하는 진호였다. 그때였다. 시간이 정지했다.
‘요청인가?’
진호는 내용을 확인했다.
[ 요청 16 ]
[ 분류 : 선행 요청 (Good Behavior Quest) ]
[ 목표 : 최아라가 다시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도록 만들어 주세요! ]
[ 내용 :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아라의 꿈이 이뤄지도록 도와주세요! 당신의 선행이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됩니다! ]
[ 성공 시 보상 : 2,000점, 스킬 ‘방귀 뿡’이 ‘방귀 뿡 Ⅱ’로 강화. ]
[ 제한 시간 : 24시간 ]
‘아니 내가 무슨 애들 데뷔시켜주는 키다리 아저씨야!?’
전에 지연도 연기자 오디션 합격을 도와줬지, 아연도 ZM 기획사 들어가는 걸 도와줬지, 이번에는 아라 새로운 소속사까지 찾아주란다. 잠시 고민하던 진호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아라에게 물었다.
“너, ZM 기획사는 괜찮아?”
“ZM? 당연하지! 거기 들어갈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는걸! ……그렇지만 나 벌써 23살이라서 연습생으로도 받아주기나 할지 잘…….”
진호는 그대로 휴대 전화를 들었다. 진호가 뭘 하는지 의아한 눈으로 보는 아라! 진호는 그대로 전부터 스토커처럼 자신에게 전화를 걸던, 전에 아연을 심사했던 여성 심사 위원에게 전화했다.
‘가수 생각 없냐고 하도 물어봐서 수신 거부했었는데 이제 와서 삐졌다고 안 받지는 않겠지?’
신호가 조금 가자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꽤 격양된 목소리였다.
「아, 진호 씨! 그동안 수신 거부를 하시는 건 너무 하잖아요! 아연이한테 물어서 집까지 찾아갈까 생각까지 했단 말이에요!」
“너무 들이대는 여자는 매력이 없는데요…….”
「이건 그런 종류가 아니잖아요!」
“알았어요. 그런데 할 말이 있는데요. 혹시 쥬피터라는 걸 그룹 아세요?”
「최근 기사 난 그 그룹이요? 알고 있었죠.」
“거기 아라라는 애 아시죠?”
「네, 그런데요?」
“걔 좀 받아주면 안 돼요? 아니면 오디션 기회라도 잡아 주시던가.”
「네? 진호 씨 그분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세요?」
“네, 뭐 약간…….”
이번에 자신이 그 소속사 대표를 날려버렸다는 얘기를 할까 하다 말았다. 별로 상관없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음…….」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진호에게 말했다.
「진호 씨까지 포함해서 여기로 오겠다면 제가 위에 잘 얘기해 볼게요.」
“나요? 나는 싫은데…….”
「그럼 얘기는 결렬이네요.」
지금부터 천천히 아라가 들어갈 기획사를 찾아보면 나오기는 나올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제한 시간이 24시간이었으니까. 진호는 협상을 시작했다.
“지금 ‘진호 씨까지 포함해서 여기로 오겠다면’ 위에 잘 얘기해 본다고 하셨죠?”
「……그런데요?」
진호의 되물음에서 무언가 불순한 의도(?)를 읽었는지 여성 심사 위원이 의구심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진호가 여기서 패를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진호가 재차 말했다.
“일단 만나서 얘기해요. 여기 아라도 옆에 있거든요? 거기 그때 그 건물로 가면 되요?”
「네, 일단 저는 여기 있어요. 여기로 오실래요?」
“네, 그럼 조금 이따 봬요.”
“누구랑 통화한 거야?”
아라가 기대감 반, 설마 하는 의구심 반이 섞인 표정으로 물어서, 진호는 순순히 대답했다.
“ZM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너한테 오디션 기회를 줄 수 없는지 물어봤어.”
“우와, 진짜!? 진호 너 의외로 인맥이 넓구나?”
“빨리 밥 먹고 거기로 가자. 만나서 얘기하기로 해서.”
“응!”
진호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아라와 함께 ZM 기획사로 간 진호는 본의 아니게 그대로 ZM 기획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ZM에 들어간 방식이 특이했다.
“매니저를 하겠다고요!?”
“네. 그것도 ‘ZM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저까지 들어오면 말 잘 해 주신다고 방금 약속하셨죠?”
“끄응…….”
실제로 앓는 소리를 내는 심사 위원! 알고 보니 직책이 ‘아티스트 기획 팀장’이었다. 그녀가 생각했다.
「이 정도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작 매니저나 하겠다니!? 그것도 아연이나 아라 씨가 소속될 걸 그룹 매니저만 하겠다고? 도대체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야!? 자기 재능이 어느 정도 재능인지 진짜로 모르는 거야!?」
말 그대로 울화가 터지는 모양이었다. 진호는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봤다.
‘일부러 울화통 터지게 하는 것도 재밌네.’
자기 노래 실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수록 그걸 아는 상대방은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그 기획 팀장이 다시 진호에게 물었다.
“진짜 매니저를 하시겠다고요?”
“네, 저 매니저 좋아해요. 어쩌면 천직일지도 모르겠네요.”
‘벌써 3명째 데뷔시켜 주려고 노력하고 있고 말이지.’
“매니저 일은 대단히 고된 거 아시죠? 그런데도 하시겠다고요?”
“상관없어요.”
사실 진호는 이미 시간 정지라는 능력을 얻은 뒤부터 ‘고된 일’이라는 게 의미 없는 상태가 됐다. 피곤하면? 시간 정지하고 쉬고 싶은 만큼 충분히 쉬고 다시 시간을 재생하면 된다. 사실 흐르는 시간 기준으로 진호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도 생활하는 게 가능한 상황이었다.
“끙…….”
다시 앓는 소리를 내는 팀장! 그녀는 옆에 뻘줌하게 서 있는 아라를 봤다.
‘사실 이 친구도 데려올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조건인 셈인데.’
일단 아라 자체가 어느 정도 인터넷 상에서 인지도가 있는 상태였다. 아이돌뿐만 아니라 배우 중에서도 탑 급의 신체 비율과 미모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정말 어째서 지금까지 안 떴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전에 기획사는 이상한 곳으로만 굴려서 잘 안 됐던 거 같지만 우리 같은 대형 기획사라면…….’
그녀를 제대로 된 ‘상품’으로 진열시킬 자신이 있었다. 벌써 기획 팀장의 머릿속에서만 해도 여러 가지 구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거기에 이건 ZM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서도 올바른 선택이기도 했다.
‘쥬피터라는 걸 그룹에 대한 동정 여론이 상당해.’
원래 잠재성이 있었는데 개 같은 사장 때문에 뜨지 못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더구나 아라가 본격적인 성범죄 피해자가 될 뻔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특히 남녀 구분 없이 그녀를 응원하는 의견이 분명히 주류였다.
하지만 다시 딴 곳을 바라보며 휘파람만 불고 있는 진호를 보자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팀장은 결심했다.
‘일단 우리 근처에 놔 두면 지속적으로 설득할 수 있겠지.’
나중에 아연이나 아라를 이용해 그의 빈틈을 파고들 수도 있을 터였다.
“좋아요. 그렇게 매니저가 하고 싶으시면 하세요. 나중에 우는 소리해도 저는 책임 안 집니다?”
“그럼 아라는…….”
“잘 얘기해 볼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 축하합니다! 요청 16을 달성하셨습니다! ]
[ 보상으로 점수 2,000점이 주어지고, 스킬 ‘방귀 뿡’이 ‘방귀 뿡 Ⅱ’로 강화됩니다. ]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이미 아라의 합격은 보장된 셈인 모양이었다. 기획 팀장이 나가고, 아라가 입을 열었다.
“진호야, 정말 고마워. 나 어떻게 너에게 감사해야 할지…….”
진호를 보며 무척 감동한 표정을 짓는 아라.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떴다.
[ 최아라의 일반 호감도가 20, 이성 호감도가 10 올랐습니다. ]
[ 최아라의 일반 호감도가 105, 이성 호감도가 115가 됐습니다. ]
‘어떻게 감사해야 하긴.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럴 때는 진호의 연기 능력 점수가 200점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니야. 친구인데 뭐. 그런 상황이면 누구나 널 도와주지 않겠어?”
“아, 으응…… 그래 맞아. 우리 친구지…… 고마워 진호야…….”
살짝 인상이 흐릿해졌던 거 같지만 곧 평소의 순한 얼굴로 돌아오는 아라였다. 하지만 진호는 아라의 순간 생각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아직은 친구……인 거지. 아이참 당연한 건데 난 뭘 아쉬워하고 있는 거야……. 최아라 정신 차려!」
그녀는 무의식중에 진호 같은 ‘친구’가 쭉 자신을 지지해 준다면 무척 기운이 날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 그녀 자신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감정에 가까웠다.
그렇게 진호는 본의 아니게 ZM 기획사의 매니저로 들어가게 됐다.
*
그렇게 ZM 일을 무사히 마치고 아라와 함께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하영에게 전화가 왔다. 리듬 체조 금메달리스트 주하영한테 말이다.
‘무슨 일이지? 밥이라고 사 주려고 그러나?’
그러나 하영은 진호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내놨다.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한 것! 부모님이 진호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도 전해줬다.
‘설마 부모님한테 내가 치료해 줬다는 얘기를 했나?’
그거 말하면 효력이 다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경고를 제대로 안 들어먹었던 모양이었다. 가서 따끔하게(?) 혼을 내 주기로 결심한 진호! 옆에 아라가 물었다.
“누구야? 여자?”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그 무심한 표정 덕에 오히려 평소의 아라답지 않다는 걸 스스로 드러내고 만 그녀였다. 진호가 말했다.
“응. 주하영이라고 알지? 리듬 체조 선수.”
“주하영!? 그 국민 요정이라고 불리는 스포츠 스타 말이야!? 진호 너 그런 사람과도 아는 사이였어!?”
무척 놀란 눈으로 보는 그녀! 점점 진호가 더 먼 세계 인물로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ZM에서 탐을 내지 않나, 23세에 서울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 않나, 주하영과도 아는 사이이지 않나, 마스텔에서 봤을 때처럼 다른 스타와 함께 있을 때도 거의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 않나, 여러모로 절대 일반인으로 보이지 않는 진호였다. 최소한 아라에게는 그랬다.
‘나도 방송에서 어느 정도 긴장 푸는데 엄청 오래 걸렸는데…….’
진호는 그런 게 없어 보였다. 시간 정지라는 압도적인 능력 탓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여유였지만 아라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너도 같이 갈래? 그냥 친구랑 같이 왔다고 하면 될 거 같은데…….”
“아, 아, 아니요! 내가 그런 데를 어떻게 가요! 아까 들어보니 집에 초대된 모양이던데 혹시…… 엄청 친한 사이인 거야?”
너무 놀라서 중간에 존댓말까지 쓰는 아라였다. 진호가 말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고 중간에 일이 있어서. 어쨌든 안 간다 이거지?”
“응…… 내가 가기는 좀…….”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라는 도중에 생각을 바꿨다.
‘잠깐, 주하영과 만날 기회를 얻다니, 이거 예능에서 한 번 얘기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
역시 그래도 방송인(?)다운 아라였다. 어쩌면 이번 시련을 겪으며 더 야무지게 변할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진호였다.
아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너한테 너무 폐만 되지 않는다면 나도 가도 괜찮을까? 어, 어차피 오늘 할 일도 없고 말이지. 아하하하하하.”
‘얘는 속내를 감추는 게 너무 어리숙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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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덮밥?
다른 의도가 없다는 걸 말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무척 어색한 말투가 돼 버리는 아라였다. 진호가 말했다.
“그럼 가자. 지금 출발하면 될 거 같아.”
“지, 지금?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럼 난 간다. 따라오려면 빨리 오는 게 좋을걸?”
“야! 호, 혼자 가지 마! 나도 같이 가! 같이 가자니까!”
그렇게 진호는 아라와 장난을 치며 문자로 받은 하영의 집 주소로 이동했다.
*
진호와 아라는 하영의 집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손수 만든 음식이 즐비했고, 식탁 맞은편에는 안경을 쓴 인자한 인상의 중년 아저씨가 흐뭇한 미소로 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영과 그녀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 사람이 하영이 엄마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왜냐면 하영의 언니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하영의 아기 같은 얼굴이 어디서 유전됐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하영 엄마의 모습이었다. 거기에,
‘주하영의 엄마도 예전에는 리듬 체조 선수였다니!’
쫄깃한(?) 모녀의 탱탱한 두 엉덩이가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주방에 나란히 서 있어서 그녀들의 사랑스러운 뒤태가 무척이나 잘 보였다.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그렇게 요염한 S 라인을 자랑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을 때 하영의 아버지가 말했다.
“하영이에게 들었습니다. 하영이 치료에 도움을 주셨다고.”
일어서서 꾸벅 인사를 하는 하영의 아버지! 진호도 일어나 마주 인사하며 말했다.
“아니요, 그건 딱히 제가 한 일이라고 하기에는…….”
그러자 마지막 음식을 준비해 온 하영 어머니와 하영이 마주 식탁에 앉았다. 6인용 식탁이라 자리가 넉넉했다.
“후훗, 그렇게 어려워하실 거 없어요. 하영이한테 들었어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그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죠.”
그러면서 아라를 보는 진호. 그제야 아라가 이 사실을 모른다는 걸 깨달은 하영의 부모님이 입을 단속했다.
“아참, 죄송해요…… 저는 집까지 같이 찾아오신 분이라 이미 다 알고 계신 줄 알고…….”
하영의 엄마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자 되레 아라가 손을 내저었다.
“저,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멋대로 찾아와서는! 아, 아무래도 제가 들어선 안 되는 얘기를 하신 거 같은데 저는 이만…….”
안 그래도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다는 생각에 무척 불편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아라는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일어났다. 진호가 말했다.
“여기까지라면 괜찮아. 혹시 많이 불편하신가요?”
“아뇨, 그럴 리가요! 이렇게 예쁜 분을 손님으로 맞게 돼서 저희도 기쁜 걸요. 혹시 두 사람…….”
하영의 엄마가 짓궂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고, 하영 또한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것을 쫓았다. 진호가 말했다.
“아뇨, 그냥 친구에요. 마침 같이 있다가 그냥 얘가 할 일도 없다기에 같이 가자고 한 거예요. 최근에 직장에서 잘려서 우울해하던 참이거든요.”
“……맞기는 맞는데 왠지 분한걸.”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아라에 식탁에 웃음이 터졌다. 그대로 식사 진행! 음식은 맛있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특히 손님이 앞에 있는데도 스스럼없이 서로 애정 표현을 하는 하영 부모님의 모습이 진호의 관심을 끌었다.
‘서로 금슬이 엄청 좋아 보이네.’
오히려 하영이 되레 부끄러워 할 정도였다. 손님이 있을 땐 조금 자제하라고 하면서 말이다. 진호야 먹잇감을 보는 시선으로 그걸 봤고, 아라는 그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시간이 정지했다. 이번 순서는…….
‘악행 요청이겠군!’
기대감에 상세 설명을 확인하는 진호! 그런데…….
[ 요청 17 ]
[ 분류 : 악행 요청 (Evil Behavior Quest) ]
[ 목표 : 주하영의 봉인된 기억을 깨우세요! ]
[ 내용 : 다리가 치료됐지만 그 진실한 과정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의 기억을 깨우쳐 주세요! 당신의 악행이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됩니다! ]
[ 실패 시 벌칙 : 주하영이 아버지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
[ 제한 시간 : 메시지 확인 후 10초 ]
“뭐!? 10초!?”
아닌 게 아니라 진호가 제한 시간 부분까지 읽은 순간 이미 초읽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10, 9, 8, 7, 6……. 당연히 이번에도 “하영의 엄마와 하영을 동시에 범하세요!” 이런 목표가 나올 줄 알았던 진호는 재빨리 옵션을 조정해 하영의 기억을 [ 복원 ]으로 돌린 뒤 다시 시간을 재생시켰다. 그러자 바로,
[ 축하합니다! 요청 17을 달성하셨습니다! ]
[ 요청 17 달성으로 벌칙 「주하영과 아버지의 사랑 나누기」는 면제됩니다. ]
하영의 근친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면 초능력을 잃을 뻔했다. 진호는 자신의 순발력에 감탄하면서도 하영을 유심히 살폈다. 봉인된 기억이 돌아온 거다. 처음 겪는 일에 나름 긴장을 한 진호! 당연히 증거는 남지 않아 그녀가 고소한다 해도 발뺌하면 체포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반응을 유의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응…….”
순간 머리가 어지러운지 관자놀이를 손으로 집는 하영! 그런 그녀를 보며 하영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왜 그래 하영아? 머리 아파? 엄마가 호 해줄까?”
‘너무 애 취급이잖아…….’
조금 뒤, 하영이 고개를 들었다. 곧바로 진호를 보는 하영! 진호는 일단 태연한 얼굴로 하영을 마주봤다. 입술을 꼬물거리며 할 말을 찾던 하영이 조금 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