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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썰

야화 4화

토토군 6 1263 0 2025.04.04

야화 4화

 

 나무 궤짝 안에는 그 밖에도 손바닥만한 접시와 그림물감 그리고 열 자루가 넘는 붓과 화선지가 들어 있었다. 손바닥만한 접시는 그림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접시였다. 벽에는 내가 그린 벌거벗은 사부의 나체화가 걸려 있었다. 내 남근이 벌떡 일어나며 요동을 치기 시작 하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석양부를 집어 들었다.

웅~ 웅~ 웅~  석양부가 울어 댔다. 도끼가 통곡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 눈에 또다시 눈물 방울이 솟아 나더니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사부인 누님의 혹독한 매질에도 눈물은커녕 신음 소리 한 번 내지르지 않던 나였다. 어린 소년이라고 하기 보다는 짐승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을 보고 자라난 소년이 아니고, 산 속에서 짐승만 보고 자라온 소년이 눈물이라는 감정을 배울 틈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멋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문약해 보이는 그저 그런 소년으로 보겠지만, 제대로 눈이 박힌 사람이 본다면 한 마리의 야수를 보는 듯 하리라.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무리 사납다는 개도 나를 만나면 사타구니 사이에 꼬리를 말아 넣고 비실비실 숨기에 바쁜 것만 보아도, 내 몸에서 풍기는 체취가 맹수와 다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짐승들의 감정은 단순하다. 감정을 질질 끌지 않는다. 후회 하면서 죽어 가는 동물은 없다. 그냥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일 뿐인 것이다.

 석양부를 들고 계곡으로 돌아 와, 고여 있는 물에 나는 나의 얼굴을 비쳐 가며 도끼로 수염을 밀어 가는데, 어쩌다 턱을 베었다. 흐르는 피를 도끼가 빨아들이더니, 웅 웅 울어 대던 울음 소리를 멈추었다.

 (흐 으~ 나더러 전설을 믿으라는 말이지? 좋아 좋아!  그 계집애를 만나 보자)

 나의 손 길이 바빠지고 빨라지기 시작을 하였다. 목욕을 끝마치고 궤짝 안에 들어 있던 청색 장삼을 꺼내서 몸에 걸쳤다. 사부인 누님의 옷을 뜯어서 내 몸에 맞게 새로 지은 옷이리라. 나의 체격이 더 클 것을 염두에 두었던지 조금 크고 헐렁했다.

 나무 궤짝을 짊어지고 계곡을 빠져 나왔다. 아무리 깊은 산 중이라고 하여도 십여 년 동안 짐승을 사냥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산야였다. 내 집 앞 마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말로만 듣던 낯선 세상에 처음 나가는 것이다. 두려움 이라고 하기 보다는 서먹서먹한 기분이 앞섰다.

 사부인 누님 이외에는 사람이라는 짐승을 본적이 없었다. 여우 보다도 간교하고 늑대 보다도 끈질기며 살쾡이보다도 사나운 짐승이 인간이라고 했다. 무서울 것은 없었다. 무섭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물리지 말고 물어야 한다는 것 하나만 알면 되었다.

 낯선 곳에서 낯 선 음식을 먹느니, 우선 배 불리 먹어 둘 필요가 있었다. 토끼 한 두 마리 잡는 것쯤은 내 집 밭에 심어 놓은 무를 쑥쑥 뽑는 것보다도 쉬웠다. 일상 하는 일이었다. 가죽을 벗기는 한편으로는 불을 피우고, 꺼낸 내장 대신에 산채나 산과를 토끼 배 속에 가득 채우고 굽기만 하면 되었다.

 코로는 냄새를 맡고 눈으로는 익어가는 고기를 살피고 그 다음은 입으로는 먹어 주기만 하면 되는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럴 때면 꼭 파리 떼가 덤벼든다.

 "히히히...냄새 좋고...잉? 못 보던 소 형제가 아닌가? 아 아니? 그 그 그 도끼는 석양부가 아닌가?!"

 "석양부를 알아보는 노 형제는 누구요?"

 "나?...히히히...누구면 어떤가, 집을 떠나면 사해가 동포요 형제라고 했다네...히히히, 한 점 얻어 먹을 수 없겠는가?"

 "이 보 쇼! 사부인 누님 말씀이, 인간이란 짐승은 살아 있는 말의 눈깔도 빼 먹는다고 하던데, 사기 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슈"

 "사부인 누님이라고? 소안독심이 그리 가르쳤다는 말인가?"

 "사부인 누님을 알고 있소?"

 "무림에서 밥을 먹고 뼈가 굵어진 놈치고, 파안섭영과 소안독심을 모른다고 해서야 말이 되는가?...이 사람아 아까운 고기가 다 타 들어 가네"

 지글지글 타며 기름을 뚝뚝 흘리고 있는 토끼고기를 뜨겁지도 않은지 집어 들고, 뒷다리를 쭉쭉 찢어서 입으로 가져 가려고 했다.

 

 "흐흐흐...소안독심의 독 같은 것은 안 중에도 없는가 보구려"

 

 "히히히...파안섭영의 제자라는 년을 살짝 만나 보고 오는 길인데, 소 형제는 내가 죽었다고 해도 살려 낼 입장이 아닌가? 히히히..."

 "여명부를 들고 있다는 계집애를 만났단 말이오?"

 "15년 동안 감감 무 소식이더니, 열흘 전에 여명부가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고 해서 부랴부랴 쫓아와서 확인을 하고 오는 길인데, 석양부를 든 소 형제까지 만나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흐흐흐...  짐승은 여우 보다 간교하고, 늑대 보다도 끈질기며 살쾡이보다도 사나운 짐승이라고 하더니, 노 형제는 이도 저도 아닌 셋을 몽땅 합친 짐승 같구려"

 "짐승? 소 형제가 지금 나더러 짐승이라고 했는가?"

 "그렇소 뭐가 잘 못 되었소?"

 "?...너는 짐승이 어떤 것인지를 아느냐?"

 "왜 모르겠소! 나만큼 짐승을 아는 놈도 드물 것이오. 15년 동안을 짐승들과 어울려 살아 오다가, 사람이라는 짐 승을 본 것은 노 형제가 처음이라서, 내 말에 어떤 실 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히히히...그랬단 말이지?... 히히히..."

 "사람이란 짐승은 본래 그렇게 헤프게 웃는 것이오?"

 "히히히...늘 그래서 배가 고프다네. 그 계집 아이를 만나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아니겠소! 지금 찾아 나서는 길이었소"

 "빨리 먹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전에 찾아 가려면 부지런히 먹어야 하네. 그리고 처음 만난 짐승이 기념으로 하는 말인데, 소 형제야 말로 그 짐승 같은 기운을 조금만 누그러트리게"

 "거 참 이상한 말을 하는구려! 짐승이 짐승 같은 기운을 내 뿜어야지, 그럼 지렁이처럼 꿈틀대라는 말이오?"

 "히히히... 소 귀에 경 읽기구먼 히히히..."

 "그런 소리 마 슈! 어렸을 때는 개 뼈다귀 같은 놈이라고 견골, 조금 커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고 하여 마골 이라고 불렸지만, 소라니 말도 되지 않소! 차라리 용이 될 놈이라고 해서 용골이라고 하면 모를까..."

 "히히히...대단한 용골을 만났구나! 나도 유식골은 못 된다만, 너만한 무식골도 드물 것이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소! 이 태산 산속이라면 나만한 유식골도 없을 것이오. 그러나 낯 선 세상에 처음 나왔으니 지금은 분명 무식골이 틀림 없소이다 만, 일 년 안에 용골이 될 것이니 두고 보시오"

 "히히히...다 먹었으면 가자"

 산을 내려 가는데, 노 형제가 젖 먹던 힘을 다 쏟아 붓고 달려도, 소 형제는 싱글거리며 노 형제 뒤를 따라 붙었다. 소형제의 무공 실력을 가늠 하려던 노 형제가, 제풀에 그만 지치고 말았다.

 "짐승들도 늙으면 다 그런다오! 눈을 감고 죽는 날만 기다리면 되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구려"

 노 형제가 안내하는 대로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만났다, 그것도 길 거리에서. 서로의 시선이 손에 들고 있는 도끼에 잠깐 머물더니 눈과 눈이 마주쳤다. 소년의 눈은 꿈을 꾸는 듯 신비 하였다. 안개가 낀 피안을 바라다 보듯, 보일 듯 보일 듯 하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심연과 같아서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신비한 눈이었다. 어찌 보면 놀란 사슴과 같은 눈인가 하면, 어찌 보면 꿈 속을 거니는 듯한 아련한 향수(鄕愁)를 담고 있는 눈이었다. 소녀는 그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을 하였다.

 소녀는 보름 달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샛별처럼 깜찍하고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수 많은 하늘의 별들이,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 그 빛을 잃듯이 세상을 감싸는 듯한 포용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애틋한 사랑이 아니고 모정과도 같은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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