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9화
야화 9화
"나쁜 사람! 그러다 금갑 안에 독이라도 들어 있거나..."
"하하하...독을 무서워 할 함녕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왜 그러시오? 사양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조심스럽게 금궤 뚜껑을 열자 청 홍 백 삼색의 구슬과 한 뼘 정도 되는 자그마한 우산이 들어 있었고, 그 아래 다 낡은 한 장의 양피지가 들어 있었다. 양피지를 살피던 함녕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지기 시작을 하였다.
"이것, 이것 좀 읽어 봐요"
"아니?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오? 내가 범문(梵文)을 어떻게 안다고..."
받아 들었던 양피지를 도로 함녕에게 넘겨 주며, 핀잔을 주었다. 그제야 함녕도 자기 실수를 깨닫고 미안해 하였다.
"내 정신 좀 봐, 너무 기뿐 나머지..."
"뭐라고 써 있소?"
"몰라요?! 기뻐서 나도 모르게 그런 것을 가지고..."
"하하하...유가신공이나 환희천 모두가 새외(塞外)의 대뇌음사(大雷音寺)가 가진 절기라면, 빤한 것 아니겠소?! 그래서 그대 혼자 들어가 보라고 한 것이고"
"이 청 백색은 당신, 그리고 홍색은 내가 먹으면 된다고 했어요"
"내가 범문(梵文)을 모른다고 거짓말 하기요? 하나 하나 풀어서 정직하게 말 해 보시오"
"정직하게 말을 하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맹세를 해요"
"낄 낄...청색은 양 홍색은 음, 그러니 둘이 하나씩 나누어 먹는 것은 맞는 말일 것이며, 백색 구슬은 틀림 없이, 그 장난감 같은 우산을 조종하는데 필요한 것일 것이오. 내 말이 틀렸소?"
"?....쯧! 당연히 풍림이 이 신병이기(神兵利器)를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요즘 혀를 차는 버릇이 늘어 가는 구려"
"풍림이 말을 듣지 않으니 그렇지요"
"이 동굴을 안내한 것은 나이니, 내가 그대를 평생 사랑한다는 증표로, 이 것들을 선물 했다고 생각하고 받으시오. 내 첫 선물을 거절 하겠소?"
"쯧!... 어머나, 정말 버릇 되겠네! 알았어요 고맙게 받겠어요. 한 열흘만 더 있으면 심법과 일 초식의 장법 그리고 사천왕(四天王) 중에서 우산을 무기로 사용하여 번개와 벼락을 때린다는 증장조화(增長造化)를 완벽하게 시전 할 수 있을 것이에요"
"그것만으로 그렇게 기뻐할 함녕이 아니오. 또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이오?"
"쯧!. 어머나...호호호... 남자가 좀 모른 척 하면 안 되요? 사부인 누님처럼 늙지 않을 수가 있다고 했어요"
"오오~ 함녕이 소원 풀이를 했구려! 축하하오 정말 축하하오!"
"나만 그런가, 자기도 똑 같이 그럴 텐데 뭐"
"나까지 그렇다는 말이오?"
"내가 숨기고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여자가 수태를 할 수가 없다고 해서 그랬어요. 괜찮지요?"
"함녕만 좋다면 나를 괘념할 것은 없소"
"그럼 됐어요!"
"미안해 할 것 없다고 해도 그러는 구려. 눈치 볼 사람 없고 방해 받을 사람 없는데 내가 왜 싫다고 하겠소"
"눈치 봐야 할 일이 뭐가 있는데요?"
"이런 것! 아이들 앞에서 이런 짓 할 수 있겠소?"
"놓아요...놯 봐요... 놓으란 말이에요"
"흐흐흐...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이 깊은 산 중에도 따뜻한 봄 기운이 찾아 들었다.
3월 초순. 아직 찬 기운이 아침 저녁으로는 남아 있는 계절인데도 벌거벗은 두 남녀가 계곡 물에 첨벙 들어 앉아 지난 몇 달 동안, 동굴 안에 갇혀 살던 때를 말끔히 씻어 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20세의 봄을 맞이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삶은 계란 껍질을 벗겨 놓은 것처럼 희고 통통하던 공주의 살결은, 이제 희다 못해 푸른 기가 도는 것 같았다. 함녕 공주뿐만이 아니었다. 천 풍림의 용수철을 심어 놓은 것 같은 탄력있는 몸도, 피부가 백옥 같아서 오히려 유약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십여 일을 동굴 안에 더 머물면서 삼색 구슬을 각기 나누어 먹고 용해 시킨 다음, 천불수(千佛手)라는 대수인(大手印)의 일 초식 장법(掌法)과 천왕심법(天王心法)을 익히고, 증장조화(增長造化)라는 개세 신공(蓋世神功)을 10성 수련하고 나온 것이다. 석양부와 여명부가 각자의 몸 안에 스며 든 잠영환검(潛影幻斧)와 봉황비상(鳳凰飛翔)의, 두 부법(斧法)도 완전히 수득을 하였다.
봉황심법을 일으키면 풍림은 왼 손 팔뚝 안에서, 함녕 공주는 오른손 팔뚝 안에서 각각 여명부와 석양부가 형체를 이루며 모습을 들어 낸다. 옷을 입고 있다면 소매 안에 감추어 둔 도끼가 미끄러져 나온 것으로 착각을 할 것이었다.
착각은 그것만이 착각이 아닌 것이다, 석양부와 여명부는 각자의 몸 안에 녹아 들었고, 실제 도끼로 보이는 것은 강기(罡氣)인 것이다. 18초식의 좌수부법(左手斧法)과 우수부법(右手斧法)은 그 부로(斧路)가 완전히 상반 된 것이어서, 이 합벽부진(合壁斧陣)은 설사 신이라고 해도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었다.
그 보다 더 한 것은 봉황비상이라는 절초(絶招)였다. 이 초식은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암컷 봉(鳳)으로 한 사람은 수컷 황(凰)으로 변해 날아 들며 덮치는 것인데, 기(氣)를 벨 수 있는 무기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초식은 평생에 걸쳐 한 번 시전할까 말까 하는 그런 초식인 것이다. 그러한 절초를 사용할 기회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8성에 머물러 있던 섭영공(攝影功)이나 심독공(心毒功)을 10성 익힌 것만으로도 대적을 하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림자가 없어지는 무영공(無影功)은, 적의 그림자 속에 녹아 들어가, 적을 추적할 때 시전 하는 무공이다. 종영공(踪影功)은 30리를 그림자만으로 추적할 수가 있다. 이러한 그림자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습성이며 그래서 생명을 잃는 것이다.
수 많은 적과 대 적을 할 때, 이 그림자가 위험한 쪽을 맡아 주는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림자의 길이를 조종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기영공(起影功)은 그림자가 사람처럼 벌떡 일어 나며,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상대를 죽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파안섭영(破顔攝影)의 성명절기(聲名絶技)였으나, 이 두 사람만큼 완벽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사부인 소안독심(笑顔毒心)의 성명절기인 심독공(心毒功)은 수중무검(手中無劍) 심중유검(心中有劍)인 심검(心劍)처럼, 몸 안에 쌓여 있는 독을, 마음만으로 산독(散毒)을 하는 것이다. 독의 종류나 그 량 까지 임의로 조종을 할 수 있으니, 상대는 언제 독에 중독이 된지도 모르고 쓰러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대단히 위험한 두 사람이다. 사부인 누나가 계집아이의 섭영공이나 섭안공을 주의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섭안공은 눈빛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이니, 주로 비밀을 캐 낼 때나 수하로 부리기 위해서 사용을 하는 것이다. 현제의 최면술(催眠術)과 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가장 가공할 무기는 천면신공(千面神功)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걸음을 내 디딜 때마다 얼굴을 열 두 번도 더 바꾼다는 신공이다. 한 번 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얼굴 뿐만이 아니라 목소리나 걷는 모습까지도 한치의 틀림이 없이 흉내를 낼 수 있는 신공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감추고 상대의 그림자 속에 숨어 들어 가더라도, 서로만 알 수 있는 천리미향을 서로의 몸 안에 심어 놓았다. 50리 안에 있을 때는 서로의 위치를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얼굴을 바꿔도 두 사람은 천리미향으로 서로를 확인할 수도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