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28화
야화 28화
중지를 들어 가기 전에 공주의 그림자가 귀수독조의 그림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중지에 들어간 다음 그들끼리 무슨 말을 하는지 염탐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공주의 치밀함에 혀를 내 둘러야만 했다.
중지에는 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진을 뚫고 중지 안으로 들어 갔다. 절벽에 뻥 뚫린 동굴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공주가 품 안에서 야명주(夜明珠)를 꺼내 동굴 안을 밝혔다. 공주가 발을 내 디디려고 하는 것을 내가 만류했다.
"잠깐... 기영공으로 내 그림자를 서너 발 앞서서 들여보냅시다"
"호호... 이제는 나보다도 황의 조심성이 앞서는군요"
동굴은 비스듬히 아래로 뚫려 있었고, 얼마를 들어가자 석벽이 앞을 가로 막았다. 야광주로 석벽을 살펴보니 용봉차를 꽂아야 할 두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용봉잠을 구멍에 꽂으려던 공주의 손길이 멈추었다. 귀를 기울이는 것이 곡주 일행의 대화를 엿듣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일일이 나에게 설명을 하느니,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어, 내가 알아 들을 수 있게 그대로 복창을 하였다.
"무엇인가 전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었는데, 사람이 신화경에 들어서니 없던 위엄마저 몸에 베는 것 같지 않소"
"그러게 말이에요. 그 두 사람이 무공의 고수라고 누가 믿겠어요"
"엄마! 사고나 사숙 두 사람 모두, 호신강기(護身罡氣)로 몸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모르겠어?"
"뭐야?...네 눈에는 호신강기가 보인다는 말이냐?"
"호호 호호... 바람을 보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기는 느낄 수 있잖아... 만약 내가 사숙이나 사고의 품안에 있는 물건을 훔치려고 손을 뻗었다면 크게 부상을 입었을 것이야"
"껄 껄 껄... 잘 되었구나... 툭하면 남의 품안을 뒤지더니, 그 버릇만은 없어지겠구나... 사제를 너는 어떻게 보았니"
"내가 본 사숙은..."
"아옥아! 사숙 사숙 그러지 말고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쓰도록 하거라"
"호호 호호... 엄마 눈에까지 든 모양인데, 내 눈에 들지 않겠어... 그런 지아비라면 만족해"
"너는 어디가 어떻게 마음에 들었는데... 사내라면 벌레 보듯 하던 네가..."
"엄마는 오라버니의 꿈을 꾸는 듯 신비로운 눈을 보지 못했어. 안개가 낀 피안을 바라다 보듯, 보일 듯 보일 듯 하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심연과 같아서, 내 몸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어"
"껄 껄 껄... 지금 네 녀석 눈이 꿈을 꾸는 듯 신비롭기만 하구나"
"아 빳! 정말 그러기야?...."
"황! 저런 아이를 화 곁에 둔다면, 우리 두 사람이 빠져 나가도 안심이 되지 않겠어요"
"앞으로는 내 의견을 먼저 물어 봐 줬으면 좋겠소"
"미안해요! 그렇게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고 말았군요... 괜찮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괜찮아 보이는 아이라면 모두 옆구리에 꿰 차야 하겠구려..."
"만약 그랬다가는... 어머 빨리 안으로 들어가요"
머리에 꽂고 있던 용봉잠(龍鳳簪)을 빼서 구멍에 끼웠더니 석벽 문이 저절로 열렸다.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만큼 냄새가 빠져 나간 다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남경 지하는 여기에 비하면 반 밖에 되지 않는 규모였다.
천면신마가 평생에 걸쳐 긁어 모은 재화였다. 피해를 본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지는 쌓여 있는 금은 보화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그런 재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확인만 하면 되었다. 관심이 있고 급한 것은 바지를 벗고 치마를 들추는 일이었다.
며칠만에 벌리는 정사였다. 공주가 열 번도 더 죽고, 내가 두 번이나 쏟아 낸 것으로 보아서는 하룻밤이 지났을 것이었다. 우리는 벌거벗은 채 쌓여 있는 재화를 한 바퀴 둘러 보았다.
"상공 이것 좀 보셔요"
공주의 손에 아담한 옥함이 있었고, 옥함 안에는 옥으로 만들어 진 칠색 나비가 있었는데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 것만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칠색 호랑나비였다.
공주가 나비를 꺼내 드니, 한 알의 단약과 낡은 양피지가 들어 있어서 양피지를 들고 그 내용을 살펴 보니 옥나비는 장식품이 아니라 암기였다. 양피지의 내용을 살펴 본 공주와 나는 놀랐다. 아름답고 예쁘게만 보이는 옥나비가, 실은 호신강기도 종잇장처럼 쉽게 뚫고 들어 갈 수 있는 무시무시한 암기였던 것이다.
"잘 되었네요... 아옥이란 아이에게 선물을 하면 어떻겠어요"
"나는 화에게 줬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우리는 이 구결만 알고 있으면 돼요... 어차피 화후가 더 강한 사람의 지배를 받게 돼 있으니, 아옥에게 준다고 하여도 우리가 간섭을 하게 되면, 옥 나비는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은 아옥이, 화매의 화후를 따를 수 없지만, 생사현관이 뚫리고 나면 화매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 아니겠소"
"호호 호호... 그 때쯤이면 세상 없는 여자들이라고 해도, 황에게 푹 파져 있을 텐데 무슨 걱정이에요... 사천에 다녀 오는 동안을 걱정 했는데 아옥을 데리고 가도록 해요"
"나 혼자라면 년 내에 다녀 올 수 있겠지만, 아옥을 동행한다면 년 내에 다녀 오기가 힘들지 않겠소?"
"해를 넘기면 어때요... 아옥의 마음만 꽉 붙잡아 놓으면, 힘들이지 않고 독곡을 조정할 수 있으며, 화 동생을, 아옥이 옆에서 보조를 한다면 그 이상 더 든든할 수 없지 않겠어요"
"우리들의 실체를 어느 정도까지 감추어야 할 것 같소?"
"동물적인 느낌은 황이 나보다도 몇 배 더 정확하고 빠르잖아요... 황의 느낌대로 하세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이상을 같이 있다 보면, 내 느낌이나 판단이 틀리지는 않겠지만 당분간은 우리 서로 조심을 하도록 합시다"
"귀수독조가 탐욕스럽지 않고, 사람 됨됨이가 그만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사내는 마누라의 영향을 많이 받게 마련인데. 곡주 부인의 됨됨이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소... 딸은 어미의 심성을 많이 닮는 법이지 않소"
"그럼 황도 나나 화 동생의 영향을 받겠네요?"
"낄 낄 낄... 그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지를 내리고 있잖소"
"뭐에 욧.... 황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치마를 걷어 올리는 것이지..."
"낄 낄...그것이 어찌 나 때문이란 말이오... 그것은 어디까지나 염치를 모르는 도깨비 방망이 때문이 아니겠소?... 그것 보시오. 자기 흉을 본다고 방망이란 놈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 했구려"
"나 죽는단 말이에요... 이러다가는 정말 나 죽어요..."
"언제는 죽지 않았소? 죽었다가 다시 환생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니겠소... 끄 끄 끄... 기분 좋고..."
"방망이만 물고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이 없으니... 왜 이렇게 좋다지 요?"
"낄 낄...내가 알겠소?... 방망이나 조개에게 물어 보구려... 왜 이렇게 좋은 것인지"
"호호... 그거야 방망이의 조화가 아니겠어요... 떨지 말란 말이에요... 그만 떨어요 나 죽는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