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23화
야화 23화
6월 말.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 하였다. 그런데 그런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장주가 타지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였다.
"아니 이 더위에 객지에 나가신다면..."
"급한 일이 벌어졌다네, 한 달 이상 장원을 비울 것 같네"
"저런...그럴 줄 알았으면 서둘러 초상화를 그렸어야 하는 것을..."
"괜찮네 천천히 완성 되도 상관이 없네..."
"한 달 이상 걸리신다면, 되돌아 올 때쯤에는 초상화가 완성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지 않았는가"
"그러시다면. 어르신께서 장원을 비우신 동안 우리도 잠시 장원을 비워도 되겠는지요?"
"그거야 자네 마음대로 하시게... 언제 젊은이를 구속한 적이 있었나? 좀더 재미있는 춘화도나 그려 두게... 내가 그 값으로 몽땅 사들임세"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몸 조심하고 다녀 오십시오"
그 날 중으로 우리 두 사람은 황금장원을 나왔지만, 나는 적금산의 그림자 속으로, 공주는 총관 귀산신묘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다음날 새벽같이 장주와 총관이 경호 무사 다섯 명을 대동하고 배에 올라 탔는데, 언제 올라 탔는지 장주의 첩이 배 안에서 장주를 마중하였다.
"총관 자네..."
"주인 어른! 노여움을 푸십시오... 한더위에 먼 길을 가셔야 하는데, 지루하실 것 같아서 작은 마님을 뫼신 것입니다"
"이 사람아 그래도 그렇지, 놀려고 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유쾌한 일로 가시는 것도 아니니 더 더욱 심기가 불편하실 것 같아서, 여쭙지도 않고 주제넘은 짓을 했나 봅니다"
"기왕에 올라 탄 것이니 그냥 가도록 하세"
선실이 넷이나 달린 제접 큰 유람선이었다. 선상 갑판 앞 쪽에는 둥그런 탁자가 고정 되어 있고, 탁자를 둘러싸고 의자도 다섯 개가 고정 되어 있었다. 답답한 선실 보다는 여기에 앉아 강바람을 쐬는 것이 훨씬 시원해 보였다.
배는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상류를 향해서 서진을 하고 있었다. 이틀 째 되는 날 저녁 무렵에 결국은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상갑판 이물에 고정된 의자에 나 앉아 술을 홀짝거리던 적금산이 피를 토하며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총관 귀간신묘가 조심스럽게 나타나더니, 적금산의 맥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오른 손을 번쩍 치켜들자, 다섯 명의 호위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계집년은 어찌 되었느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깨끗이 해치웠습니다"
"수고들 했다..."
귀산신묘가 품 안에서 묵직한 주머니 다섯 개를 꺼내 각자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며, 크게 인심을 썼다.
"수고를 한 대가다 열어 보아라"
주머니를 풀어 보려던 호위무사들이 풀썩풀썩 쓰러져 나갔다. 호위 무사들까지 모두 잡아 죽인 것이다. 귀산신묘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은 솜씨였다. 그런데 그 귀산신묘가 또다시 풀썩 쓰러지고, 봉과 황의 모습이 들어 났다.
"네, 네 놈들이..."
"걱정하지말고 황천을 건너시게... 내가 자네 대신 살아 줄 것이라네"
"허 억..."
귀산신묘와 똑같은 얼굴이, 죽어 가는 귀산신묘를 내려다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총관으로 둔갑을 한 귀산신묘가 손을 흔들어 부시독(腐屍毒)을 뿌리기 시작했다. 시신들이 순시간에 녹아 내리며 허연 뼈를 들어 내기 시작했다.
녹아 내리는 시신들을 봉이 하나씩 강물 속으로 내 던졌다. 나는 적금산의 오른 족 팔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목에 은색 팔찌같은 것을 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벗겨 내서 내 오른 손 손목에 찼다. 왼손 손목에는 여명부가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배에 불을 질렀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자 우리는 등평도수(登萍渡水)의 신법으로 강변으로 피신을 하여 활활 타오르는 유람선이 침몰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 봤다.
"선원들까지 모두 죽이다니 너무한 짓 같지않소?"
"우리가 직접 손을 쓴 것은 아니지만, 선원들 신분을 조사해서, 그 가족들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남겨 줄 생각이에요... 황의 심정은 알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이 무림이에요..." "...."
"나는 마음 편한 줄 알아요?... 앞으로 수 천 수만 명이 혜택을 입을 것이에요... 내가 배불리 먹자고 하는 일이 아니란 말이에요"
"끝낸 일을 가지고, 두 번 다시 말하지 맙시다... 짐승들은 후회라는 것을 모른다오... 우리도 무림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짐승이 된 것 아니었소?"
"그리 말해 줘서 고마워요... 나는 봉선화에게 가서 다음 준비를..."
"나도 같이 갑시다... 찝찝한 기분을 씻어 내야 할 것 같소"
"그렇게 하셔요... 그러나 잘 해내셔야 해요?"
"은형철삭의 비밀이 풀리면, 내가 바로 연락을 하리다"
"그 때는 내가 부인을 없애고, 부인으로 둔갑을 하고, 총관으로 변신을 한 봉선화는 부인을 강간 하려다가 들켜서 도망을 치게 되고, 황은 적금산이 되어 귀산신묘 뒤를 쫓아가고..."
"연극은 잘 짰지만, 그 동안 장주 부인이 삐삐 울어 댔는데 가솔들이 믿으려고 하겠소?"
"믿고 믿지 않고가 문제가 아니라, 입을 열었다가는 목숨이 왔다갔다 할 것이라는 것을 빤히 아는데 누가 입을 벌리겠어요?... 아랫것 들이란 다 그런 것 들이에요"
"봉은 시치미를 뚝 때고 장주 부인으로 눌러 앉겠다는 것이로구려"
"그 때부터는 마음 놓고 뻐꾹 뻐꾹 울어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것 보시오...당장 들통이 나지 않았소. 장주 부인이 삐삐 울었다면, 봉도 삐삐 울어야 할 것 아니오"
"어머 그걸 깜빡 했네요... 나는 습관이 되어서 도저히 바꿀 수 없으니, 부인이 울 때 환쟁이 마누라처럼 뻐꾹 뻐꾹 울라고 가르쳐요"
"나 죽네 나 죽어...그렇게 소리치라고 가르치란 말이오?"
"호호 호호... 봉선화를 보지 못했나요?... 그렇게 외치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틀림 없이 그렇게 외쳐 댈 것이에요"
"낄 낄... 내가 마누라 잡아 먹는 짐승이 되었구려"
"사실이 그런 걸 어떻게 해요... 황의 환희천에 한 번 걸려 들면, 아무리 정숙한 요조숙녀라도 나 죽네 하고, 뻐꾹 뻐꾹 울지 않을 수 없단 말이에요"
"아아~ 사부인 누님이 뻐꾹 뻐꾹 울어 대던 시절이 생각 나고 그립구려"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화려한 인생을 살다가 떨어진 낙엽이 아니던가요?... 한 번 떨어져 버린 낙엽을 왜 다시 생각하고 그래요... 빨간 피를 철철 흘리는 나와 봉선화가 있다는 것을 잊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