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35화
야화 35화
산세가 험하기로 이름 난 사천성(四川省)의 남서부에 위치한 아미산(峨嵋山)은 동남방으로 양자강의 지류를 끼고 북으로는 성도 평원(成都平原)을, 서쪽으로는 대설산(大雪山)을 바라보고 있다.
호랑이가 많아 사람을 해친다 하여 사성법사가 호랑이를 모두 잡아 죽이고 복호사(伏虎寺)를 세운 것이 그 기원이며, 비구니들로만 이뤄진 구파(九派)중 일파(一派)인 아미파(峨嵋派)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월 초 하루와 보름이면, 빠르게 8번 느리게 8번 도합 108번 종을 치는데 그 종소리가 산 골짜기에 메아리쳐 백리까지 울려 퍼지며, 종소리가 그치면 비구니들의 염불 소리가 산 공기를 하얗게 씻어 낸다.
아미파의 비구니 뿐만 아니라 무림에 몸 담고 있거나 산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과 약초를 캐는 심마니들조차 얼씬도 하지 않는 불귀곡(不歸谷)은 사시 사철 운무가 걷히는 날이 없고, 밤 낮 없이 귀무(鬼霧)가 끼어 있어, 한 번 불귀곡에 들어간 사람치고 다시 살아 나온 사람이 없다고 하여 불귀곡이라 불려지고 있었다.
동짓달 하순.
어찌 된 일인지 이 금지(禁地)에 인영이 번뜩이더니 청색 장삼을 입고 허리에는 허리띠 대신에 편(鞭)을 2중 3중으로 질끈 묶었고 왼쪽 가슴에는 옥 나비를 매달고 있는, 상큼한 풋 과일을 연상케 하는 소녀와, 어찌 보면 놀란 사슴과 같은 눈인가 하면, 어찌 보면 꿈 속을 거니는 듯한 아련한 향수(鄕愁)를 담고 있는 눈을 가진 청년이 불귀곡에 나타났다.
청년은 오른 손에 청옥으로 만들어진 옥적(玉笛)을 들고 있었는데, 한 눈에 보아도 값 비싼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복우산을 떠나 온 천 풍림과 홍 아옥이었다.
"천면신마가, 진식에 대해 이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구려... 옥매는 이 진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겠소?"
"오라버님이 모르는 것을 소녀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모르는 음률을 옥매가 가르쳐 준 것은 또 뭐요?"
"피이~ 그까짓 것 하나... 글씨나 그림도 오라버니를 따라 잡을 수 없잖아요"
"시(詩)는 내가 옥매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지 않소...자아~ 눈을 감고 심안에 의지해서 진을 뚫고 들어 갈 것이니, 옥매도 눈을 꼭 감고 내 허리를 붙잡고 따라 들어 오도록 하시오"
"무섭고 불안해요...오라버님 등에 업힐래요"
나는 아옥을 등에 업고 눈을 감은 채, 심안에 의지해서 진을 뚫고 들어 갔다, 무영신투가 보물을 감춰 둔 복우산의 동굴 안에서도, 심안에 의지해서 보물을 찾아 냈던 것이다. 얼마를 뚫고 들어가니 앞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는데, 눈을 뜨기도 전에 호통소리가 들려 왔다.
"어떤 잡놈이냐?..."
나이 70에 가까워 보이는 노인과 노파가 허름한 옷을 걸치고 서서 호통을 치고 있었다. 보통내기들이 아니었다. 무림 삼선 중 한 사람이라는 취아선도 이 두 사람에게는 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는 노인네는 누구요?"
"뭐야?...남의 거처를 침범을 하고도, 노인네는 누구냐고?..."
"여기가 내 거처라면 어쩔 테요?..."
"뭐야?... 여기가 네놈 거처라고?... 우 왓 핫 핫 하... 20년을 버텨 온 보람이 있었구나...이제야 천면신마란 놈을 잡을 수가 있게 되었구나... 우 왓 핫 핫 하... 할멈 뭣하고 있소?..."
"흘 흘 흘...영감! 그 동안 애먼 사람들만 때려 죽였구려..."
"천면신마와 무슨 원수가 졌다고, 20년씩 기다리며 때려 죽일 생각을 한단 말이오?"
"이 놈아 몰라서 능청을 떠는 것이냐?...우리 마교의 보물인 은형철삭을 훔치다가 우호법님에게 발각 되어 도망친 놈이 네 놈이 아니더냐?"
"잘못 봤소...아무려면 천면신마가 나처럼 어리겠소?"
"얼굴을 열두 번도 더 바꾸고, 일곱 살 먹은 어린 아이로도 둔갑을 하는 마당에 무슨 짓은 못하겠느냐? 어서 은형철삭을 돌려 주고..."
"낄 낄 낄...우호법이란 사람이 소안독심이 아니오?"
"마교의 우호법이 소안독심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무림인도 있다더냐?"
"낄 낄 낄...그럼 여명부도 알아 보겠구려?"
"말이라고 하느냐?"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 보겠소?..."
"여명부!... 으 흐 흐 흐...틀렸다 이놈아! 우호법은 석양부를 가지고 계셨단 말이다... 그런데?... 네 놈이, 네 놈이... 좌호법의 여명부를 네 놈이 어떻게... 으헉! 기영공까지... 그렇다면 좌호법 파안섭영의 전인이란 말이냐?..."
"틀렸소...우호법 소안독심의 전인이라오"
"미친 놈! 소안독심의 전인이 석양부를 가지지 않고, 어떻게 여명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냐?"
"낄 낄 낄...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려... 석양부는 음이고 여명부는 양이란 말이오...좌호법은 여자 전인을 두었고, 우호법은 사내 전인을 두었는데, 그 전인들이 서로 도끼를 바꾼 것이라오"
"그럼 그 계집애가 좌호법의 전인이란 말이냐?"
"좌 호법의 전인은 지금 남경에 있소"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냐?"
"우호법이 천면신마를 잡아 죽였고, 그가 긁어 모아둔 재화를 여기 지하에 묻어 두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확인을 하려고 온 것이라오..."
"흘 흘 흘...믿기 어렵구나"
"그럼 어찌해야 만 믿겠소? 기영공을 보고도 믿지 못하겠단 말이오? 할 수 없구려 한 판 붙어 봅시다"
"이 이 이런...언제 군자산(君子散)을 뿌렸느냐?"
"낄 낄 낄... 좌 호법 소안독심의 심독공을 몰라서 하는 소리요? 믿지를 않으니 할 수 없구려...때려 죽이는 방법 밖에는..."
"기다려라 이 놈아! 우호법의 전인이 마교의 선배를 때려 죽인다면..."
"우호법의 전인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우리 천마(天魔)와 지마(地魔)가 어린 애송이한테 당할 줄은 몰랐구나..."
"죽겠소 살고 싶소?"
"네 놈 마음대로 해라"
"할 수 없구려...지마부터 때려 죽여야..."
"야 야 야 이놈아! 나부터 때려 죽여야지, 연약한 지마를..."
"후후 후...지마가 연약 하다고 했소?...할 수 없구려... 그럼 천마 당신부터 때려 죽이기로 하겠소"
"이 노~옴!...어느 놈이 우리 영감을 때려 죽이려고 한단 말이냐?... 나와 한판 먼저 붙어 보자"
"낄 낄 낄... 할멈이 치마를 걷어 올리겠다는 말이오?...그럼 사양하지 않으리다"
"이 노~옴!...어디 누구의 치마를 걷어 올리려고 하느냐?"
"할멈이 한 번 붙어 보자고 했지 내가 붙자고 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