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욕의 일지 2화
능욕의 일지 2화
차 옆에 선 채 한숨을 쉰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면서 갓길에 서서 크게 손을 흔들어보자 그녀를 알아차리고서 최신식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가까이 다가와서 멈춰 주었다.
"이런. 누굴까 생각했더니 한 미희 씨군요."
우연히 지나가던 차의 운전석에서 나온 남자를 본 순간 미희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 남자는 미희이 결혼하기 전까지 다니고 있었던 회사의 과장으로 그녀의 전 상사였던 것이다.
아마 그녀의 기억이 확실하다면 올해 45살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직속 부하였던 만큼 다른 부서의 직원들보다 그와 지낸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 키는 그다지 커지 않았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근육질의 남자로 어깨의 폭이 상당히 큰 편이었다. 남자는 예전과 다름없는 스포츠머리를 어색한 것처럼 긁적긁적 긁어대면서 미희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희는 예전 상사에게서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미희는 학생 시절부터 수영부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몸매는 뛰어난 탄력과 균형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유방과 엉덩이가 아주 풍만했다.
회사의 제복으로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고 있던 당시 그녀는 자주 그의 시선이 엉덩이에 꽂히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것이 기분이 나빠서 그가 몇 번이나 퇴근 후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다 거절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2.
그녀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거절할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서 거절을 한다고 해서 여긴 통행량이 극단적으로 적은 외진 산길이었다. 다음 차가 올 때까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고 온다고 해도 그 차의 운전자가 그녀를 도와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희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상사인 최 천후에게 설명을 해주고 말았다.
"음.... 통화를 하면서 에어컨을 키고 있었다고 하니까 아마도 배터리가 다 된 것 같은데. 한 번 볼 수 있을까?"
"아.... 네...."
그가 요구하는 대로 자동차 키를 건네주자 천후는 익숙한 동작으로 차의 보닛을 열었다.
그리고 배터리 상태와 엔진의 상태도 능숙하게 점검하고 있었다.
"배터리 외에는 괜찮은데..... 내 생각은 그렇지만 나중에 한 번 카센터에 가보는 것이 좋겠어. 이 차도 중고라며?"
미희이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견인차를 부를까 고민하는 순간 천후가 자기 차의 트렁크에서 부스터 케이블을 꺼내서 미희의 차 배터리와 연결해서 시동을 걸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니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우연히 이 앞을 지나가서 다행이야. 그것보다 시간이 괜찮다면 이 차를 산 중고차 판매점으로 가 보자.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제대로 검사를 받는 게 좋아."
"그런데 혹시 가다가 엔진이 멈추지는 않을까요?"
"뭐 엔진이 걸려 있는 상태에는 잘 꺼지지 않을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뒤에서 따라가 줄게."
"아.... 저.... 거기까지 폐를 끼칠 수는...."
"괜찮아. 다행히 오늘은 할 일도 별로 없고 게다가 미희 씨는 예전의 내 부하 직원이었잖아. 상사로서 이 정도를 해 줘야지."
아직도 차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미희는 천후의 호의를 아주 쉽게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OL 시절에는 끈적거리는 눈빛으로 그녀의 몸매를 훑어보곤 했던 천후였지만 오늘은 한 번도 그녀에게 끈적거리는 시선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매우 신사적인 행동을 보이며 미희의 차에 응급처치까지 해 주었다.
- 어쩌면 그 때 당시도 내가 너무 어려서 자의식 과잉이었을지도 몰라.
그녀에 대해서 안 좋은 의도를 품고 있었다면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줄 리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믿는 여자인 만큼 미희는 오랜만에 만난 최 천후의 겉으로 드러난 친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서 중고차 판매점으로 간다는 것도 왠지 불안했기 때문에 지금 미희는 진짜로 천후를 고맙게 느끼고 있었다.
잠시 후 미희이 앞을 달리고 그 뒤를 천후가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시 후 중고차 판매점에 도착했다. 미희는 사전에 천후에게서 설명을 들은 대로 중고차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아직 차를 구입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직원은 무료로 점검을 해주고 문제가 있다면 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대신 시간이 며칠 정도 걸린다고 말을 했다. 결국 미희는 차를 맡기는 데 동의를 한 후 버스와 택시 중 뭘 타고서 집으로 돌아갈지 고민을 하면서 여기까지 따라와 준 천후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은 매우 고마웠어요. 이 보답은 며칠 안에 반드시 하겠습니다.
미희는 천후의 차 밖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미희 씨."
"아니요. 반드시 보답을 하겠습니다."
그러자 천후는 그녀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제안을 하고 있었다.
"뭐 미희 씨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지금 보답을 해 줄래?"
"네 지금..... 요?"
"아 실은 오늘 밤 혼자서 외롭게 저녁을 먹어야 했거든. 보답을 하고 싶다면 내 저녁 상대를 해 줄래?"
설마 그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희는 한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천후가 당황해 하면서 한손을 얼굴 앞으로 내밀고서 좌우로 흔들어대며 말했다.
"아.... 이상한 의미는 없어. 식사라고 말해도 내가 늘 가는 선술집에서 가볍게 한 잔 하자는 것 뿐이야. 옛날 얘기도 하고 말이야."
미희는 고민을 하다가 남편인 수철에게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수철이 전화를 받았다.
미희이
"내가 나중에 감사를 표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가 당신이 내키지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라고 남편이 말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사람 좋은 남편은
"모처럼만에 옛날 과장님에게 맛있는 거나 얻어먹어."
라고 허락을 해주고 있었다.
"...... 알았어요 출장 중에 바쁠 텐데 이런 사소한 일로 전화를 걸어서 미안해요."
"괜찮아. 도와준 최 과장님에게 나도 고맙다고 말했다고 전해 줘."
그렇게 말하며 수철은 전화를 끊었다.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남편이어서 기쁜 생각이 들었지만 가끔은 질투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미희는 생각을 했다.
한숨을 쉬면서 휴대폰을 핸드백 안에 넣고 있는 미희에게 천후가 말을 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남편인데. 좋은 사람 같아."
결국 남편이 허락해주는 말을 천후도 들었다고 생각하자 더 이상 거절을 할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결국 미희는 천후의 차 조수석에 올라타고 말았다.
잠시 후 천후는 교외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번화가에서 좀 외진 레스토랑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있었다.
이상한 가게는 아니었지만 역시 남편 이외의 남자와 단 둘이서 식사를 한다는 사실이 미희는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둘은 선술집이라기보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같이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천후가 입구에서 가까운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4인용의 식탁이었지만 그를 마주보는 자리에 미희는 앉았다.
다행히 아직 저녁 시간이었기 때문에 가게 안은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 설마 여기에서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미희는 약간 안심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친절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주문을 받으러 오자 이 가게의 안주인이라며 천후가 소개를 해 주었다.
"난 야채볶음 정식으로 주세요 미희 씨는?"
"저도 같은 것으로 해 주세요."
잠시 후 식사와 함께 전통 술이 나왔고 두 사람은 옛날 회사 얘기를 하면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천후가 갑자기 말을 했다.
"저기 미희 씨 핸드백 안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것 같은데."
3.
벨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미희는 확인을 위해 핸드백을 열어서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부재중 착신 표시도 메일 수신 표시도 없었다.
미희는 핸드폰을 다시 핸드백 안에 넣고서 아무 것도 없었다고 천후에게 말을 했다.
"내 착각이었던 같네. 귀찮게 해서 미안해."
잠시 후 두 사람은 다시 보통으로 돌아갔다.
예전 직장 동료들의 현재 상황들을 들으며 미희는 꽤 즐겁게 천후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미희는 한 잔 밖에 술을 마시지 않았고 천후 또한 두 세 잔에 마시지 않고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천후가 오른손으로 미희의 행동을 말렸다.
그리고 자신이 계산하겠다는 미희에게 고집을 부리며 천후가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