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야기 5화
건축가 이야기 5화
그녀의 회사에 그녀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 간 회사에 나가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
를 해두고, 나는 맘이 착찹하였다. 벌을 받은 다음 일주일 동안 그녀는 자신의 방에
서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몸이 무척 좋지 않았던것 같았다
. 가끔 내가 들어가도, 이전 처럼 크게 나를 반기는 기색도 없고, 나를 쳐다보는 눈
빛도 전과 같지 않았다. 너무 심한 체벌을 했다싶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질을 할
때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이 된 것같아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세수하고, 화장을 하고, 제대로 눕지도 못해 침대위에 엎
드려 있으면서도 틈틈히 내가 준 책을 읽는 등의 습관들은 계속 지키고 있었다.
퇴근 후 약통을 가지고 직접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
"치마 걷어 올려봐."
그녀는 나를 말 없이 바라보다가,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 올리고는 침대위에 엎드렸다.
엉덩이와 허벅지의 시퍼런 멍이 허리와 무릎 근처까지 번져있었다.
"미안해. 내가 좀 심했어."
나는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면서 사과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 주인님.."
나뭇잎 한장이 스쳐도 통증이 격심할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려니, 몹시
곤혹 스러웠다. 조심스럽게 하는데도 그녀는 여간 아픈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갑작스런 나의 사과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며, 도리어 나에게 사죄를 하였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면서 고통을
견디어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조차도 나에게는 무척 아름다와 보였다.
나는 정말 이 여자에게 빠져 버린것인가? 영영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상처 전체에 연고를 발라 주고는 나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뒤로 쓸어 올려주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그녀의 보
드라운 볼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주인님,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저를 버리시는 생각만으로 저는 너무 무
서워요."
"알았어. 그래. 그래.."
그녀가 두려워 했던 것은 격력한 체벌 따위가 아니었다. 나의 사랑이 멀어져간다는
느낌, 내가 그녀를 버릴 것같은 걱정, 이러한 것들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무서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 주 토요일에 있을 맞선 자리에 나갈 수가 없었다. 오랜 생각 끝에 아버지에게 용
기를 가지고 전화를 하였다.
"아버지, 이번주 토요일 맞선자리에 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사실, 아버지께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래, 애석하지만, 하는 수 없지. 알겠다."
정말, 아버지는 많이 변하셨다. 이전 같았으면, 절대로 허가를 받을 만한 사항이 아니
었던 것이다. 나에 대해 한번 내려진 결정은 쉽게 바꾸지 않으시는 아버지셨다. 나
는 어려서부터 그러한 아버지의 말씀이면 무엇이든지, 감히 거부할 생각은 꿈도꾸지
못하고, 항상 복종을 하여왔었고.. 사실 덕분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은 고마움뿐이었다.
순순하게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신 아버지의 내심이 어떤 것인지 몰라, 무척 불안하기
는 하였지만, 나의 피앙새를 위해서 어떤 결과도 감수하기로 했다.
한달이 지나고, 어느 정도 그녀의 상처도 아물었다. 자신도 많이 원기를 찾았는지
집에 있는 동안 틈나는 대로 가정부의 일을 도우면서, 저녁에 내가 먹을 요리를 특별
하게 신경써서 만들어 보는 등 활기찬 모습의 예전의 그녀로 되돌아 온 듯싶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항상 화장을 하고 예쁘게 치장한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는 그
녀의 웃음이 그날의 피곤함을 말끔히 씻어주곤 하였다.
어느날인가, 회사로 전화가 왔다.
"주인님, 저 오늘 주인님하고, 시내에 나가서 바람좀 쐬고 싶은데..."
"그래, 알았다. 7시에 코지에서.."
"네."
여느 때와 같이 우리는 코지에서 자리를 함께하였다.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검정색 브이넥안에 받쳐입은 하얀색 티, 늘씬한 하반신 라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약간은 타이트한 푸른색 계통의 바지가 무척 그녀와 잘 어울려 보였
다.
화장도 여느때보다 진해서, 보통때보다 섹시해 보였다.
나에게 있어서 그녀의 매력 포인트는 다름아닌 코였다. 오똑한 콧날에 늘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잘생긴 콧대, 그녀의 큰 눈망울과 어울려서 묘한 그녀만의 분위기를 만
들어 내고 있었으며, 한층 그녀의 섹시함과 세련됨을 더하여 주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와 함께 사람 많은 곳을 거닐다 보면, 뭇남성들의 시선들이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몸매에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끔은,
'이처럼, 잘 난 여자가 왜 나같은 남자에게 빠져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곤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녀가 옆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였고, 그녀가 항상 나와 함께 있을 때면 그시간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집중할 뿐이었다.
만약 그녀가 언제든지 나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말없이 보내 주기로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옛날얘기가 된 듯하다.
지금은 그녀없이 혼자서 살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점차 그녀에게 중독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인님.. 저 회사에 다니지 않겠어요."
"왜?"
조용히 식사를 하다가 그녀가 갑작스럽게,던진 말이었다.
"이제는 주인님 모시는 일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그것.. 내가 바라는 일은 아닌데... 그리고 너는 항상 일을 갖고 싶어했었잖아."
"제가 가장 바라는 일은, 그리고 가장 즐거운 일은 주인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 뿐이
에요. 그 어떤 일도 이 일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나는 내심 속으로 기뻐서, 미소를 지으면서 허락을 해 주었다.
"마음대로해. 나중에라도 맘바뀌면, 얘기하고.."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호프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녀는 몹시 기분이 좋은 듯이 보였
다. 나도 덩달아 그 분위기에 도취되어, 그녀에게 제안을 했다.
"이것봐. 우리 간만에 나이트 한번 갈까?"
"오늘 나이트 복장이 아닌데.... 하지만 좋아요. 워낙 얼굴이 받쳐주니까."
"웁~.. 너 술취했니?"
"하하하..."
가까운 나이트에 들어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잡기에 능한 편이었다.
노래는 물론 춤도 잘추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과시하는 듯한 혼자만의 춤도 아니었
고, 언제나 나에게 맞추어 주는 오직 나만을 위한 춤을 추는 그녀였다.
정말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한 주가 지나고, 우리는 1박 2일 예정으로 양평 쪽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토요일 월차를 내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전날, 그녀는 여행의 기대감에 부
풀어 아이 처럼 좋아하면서 이것저것 여행에 필요한 준비를 분주하게 하는 것 같았다.
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하는 국도에 올랐다. 토요일 아침 일찍이어선지, 차도 막히지
않았고, 날씨도 축복해 주는 듯 화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기쁨에 들떠 연신 이야기를 해대었다. 이것 저것 이야기 하다가 혹시 자신의
이야기가 나의 귀에 거스르지나 않을까 하는 표정으로 나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였다.
본격적으로 한강의 상류를 따라 올라가는 국도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경관들이 눈에
펼쳐졌다. 그녀는 얘기를 하다가 화제가 떨어지면,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탄성을 지
르곤하였다.
"어머.. 저것 좀 보세요. 산자락에 안개처럼 구름이 걸쳐져 있어요. 세상에, 한강이
정말 맑네요.."
"나, 지금 운전 중이라 밖을 볼 수가 없어."
그러면서 나는 잠시 고개를 그녀가 바라보는 곳으로 돌렸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 산과 물이 시원하게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였다.
그리고 나의 눈에 들어온 그녀의 모습..
선글라스를 끼고 밖을 쳐다보는 그녀의 옆얼굴은 서양의 유명한 모델을 연상케한다.
오똑한 콧날이 선글라스와 잘어울린다. 분홍색 티에 발목이 시원스럽게 드러나는 청
바지. 그녀의 완벽에 가까운 바디라인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가벼운 샌달과 하얗고
귀엽고 섹시한 그녀의 발, 잘생긴 발목이 그녀의 다리와 발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연결
해 주고 있었다. 그녀의 발은 무척 잘 생겼다. 아침마다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서
숱하게 나의 회초리 매질에 괴로움을 겪어온 발이었다.
내가 그녀의 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 지 어땠는지, 그녀는 어제 저녁 무
척이나 자신의 발톱손질에 정성을 들였다. 옅은 파란색 캐니큐어가 그녀의 발을 하나
의 예술 작품처럼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목과 가슴의 피부도 고왔다.
내가 선물했던 그 목걸이를 그녀는 한시도 자신의 목으로부터 떼내지 않았다.
얇은 은목걸이가 그녀의 여성스러운 목 라인과 어울려 그녀를 한층 더 고귀하게 보이
게 한다. 앞으로의 양평에서 그녀와 꿈같은 휴가를 보낼 생각을 하니, 행복으로 고무
되었다. 두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나니, 어느새 우리는 콘도에 도착해 있었다.
여러가지 즐거운 상상으로, 나는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기억조차 할 수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