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활

새로운 생활

결국 그 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는 내일 가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바로 택시를 잡아 타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와본 우리집. 마치 모르는 사람의 집 같았다...

우리는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 하고 각각 따로 목욕을 한 뒤에 따로 잠에 들었다.

다음날. 회사를 쉬고 병원에 간 남편은 저녁 때가 다 되서야 귀가했다.

"재떨이... 있어?"

"아, 응, 여기"

손바닥에 쥐고 있던 휴대용 재떨이를 내밀었다.

그는 "그래"라고 대꾸하더니 또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남편은 어제부터 내내 의외로 차분했다.

금발머리에, 귀는 온통 피어스 투성이, 제대로 된 옷이 하나도 없어서 지금도 여전히 배꼽에 달린 피어스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꽉 조이는 조그만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는 나. 물론 드러난 팔 다리의 피부 색깔은 까무잡잡하고--- 굳이 말하자면 건강해 보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역시 남편 입장에선 좋아하긴 커녕, 뭐랄까, 가장 경멸하는 종류의 여자로 바뀌어 버렸을 텐데... 그런데도 그는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뭐 필요한 건 없어?"라며 오히려 나에 대한 배려에만 신경쓰고 있는 것이었다.

"말투가 완전히 바뀌었네"

식탁에 서로 마주보고 앉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미니스커트 밑으로 쭉 뻗은 맨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발톱을 요란하게 장식하고 있는 페디큐어에, 발목에는 금으로 도금한 앵클릿.

"너, 그런 남자들을 좋아했던거야?"

목소리도 표정도, 아주 평온했다. 이미 선을 한참 넘어버린 탓에 체념이라도 했는지, 남편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

"그녀석들이 널 그렇게 바꾼거야?"

"후우---......"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턱을 치켜들고 담배연기를 크게 토해냈다.

침묵.

분위기가 축 가라앉아 있었다. 뭐라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완전히 체념해버린 남편은 주저없이 말을 이어갔다.

"매일같이 그런 모습을 하고, 매일같이 남자들에게 안기고 있었던 거야?"

"스읍... 후우---..."

"젊은 남자가 그렇게 좋았어? 양아치들이라 더 좋았던 거야?"

"후우---..."

나는 그저 애꿎은 담배만 태우면서 입을 꾹 다물고 그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왜냐면 대꾸할 염치가 없기도 했고, 그이도 내가 자기 질문에 일일히 답하기를 바라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엉망진창이 된 관계를, 얼마나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는지 확인해 나가는 작업이었을 뿐.

그이도 이미 우리 관계가 망가져버린 이상, 이제와서 어떤 치명적인 질문을 한다 한들 별로 상관없다는 식으로 주저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남자하고 노는 건 즐거웠어? 남자하고 한 몸이 되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

"스읍..."

"몇 명이나 되는 남자한테 몇 번이나 안긴거야? 어떤 식으로 안겼어? 변태적인 섹스도 경험한거야?"

"후우---..."

그의 시선이 내 몸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바뀌어 버린 부분을 일일히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원래대로 남아있는 부분이 없는지 그걸 찾으려고 애쓰는 건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곳은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남편이 질문 공세를 중단했다. 그 대신에 새롭게 바뀐 내 몸 곳곳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머리 색깔은 이렇게 바뀌었고, 피부 색깔은 저렇게 바뀌었고, 귀는 이렇게, 손톱 발톱은 또 저렇게, 옷차림은 또 이렇게. 죄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이 입장에선 하나하나 확인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굉장한걸... 케이카 여고 학생같아"

케이카 여고--- 이 지역에서 편차치가 가장 낮은 여학교다. 교복도 제대로 있는 학교였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금발 날라리 메이크업에 노출도가 굉장히 높은 옷만 입고 다니는, 굉장히 유명한 똥통 학교. 하지만 일부 남자들에게 꽤 인기가 높아, 전국에서 모여든 아마추어 카메라맨들이 통학로에 잔뜩 우글거린다고 하는 소문이 자자한 고등학교.

"설마, 그렇게까지 어려보이진 않을껄"

거의 꽁초만 남은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끄고, 처음으로 대답을 했다.

"굉장한 패션인걸... 전철같은 데 타면, 무조건 치한 당하겠지"

"...그렇지 뭐, 하지만 치한 당하는 게 싫지는 않으니까. 아 맞다, 치한 당하고 나서, 역 화장실로 끌려가 곧장 빠구리를 뛴 적도 있어"

그냥 막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저쪽에서 이미 단념했다면, 나라고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으니까.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한다 하더라도, 이제와서 굳이 남편이 화를 낼 것 같지는 않았다.

"하하하... 빠구리라... 알지도 못하는 사람하고"

"당연하잖아. 알고 있는 사람이면 치한도 아니지. 어디 회사 다니는 샐러리맨 같았어. 양복 차림에 꽤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화장실로 끌고 간 뒤에는 정말 굉장했지. 그 사람 아마 진짜 강간범이었나봐. 수도 없이 여자를 따먹은. 나도 그 중에 하나였을테고"

남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탁자 위로 시선을 떨어트리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그 얼굴에는 미소까지 떠올라 있었다. 뭐랄까, 자기 아내가 하도 터무니가 없어서, 화를 낼 기운조차도 없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거 인조 손톱이야? 이렇게 길면... 거추장스럽지는 않아?"

손가락 끝에서 2센티는 더 나온 길다란 손톱. 그는 내 손을 살짝 잡더니, 손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남편하고 살을 맞대는 순간이었다.

그는 내 부드러운 손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손톱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예쁘지?"

살짝 어색해져서 아무 말이나 해 봤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꼭 붙잡은 내 손을 놓지 않고--- 이번엔 손톱으로부터 손가락으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으로 훑듯이 시선을 옮겨 온다.

꼭 잡은 손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면서.

그이로선 일년만에 만져보는 아내의 피부였다. 아니, 어쩌면... 일년만에 만져보는 여자의 피부일지도 모른다.

내 손을 쓰다듬던 남편의 동작이 서서히 음란해져가고, 땀도 축축히 배어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이 하고싶은대로 하게 가만히 놔두었다.

요 일년동안 내내, 행방불명된 아내만 생각하며 남편은 혼자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같이 살고 있을 때에는 일주일에 몇번씩 섹스도 하고 그랬는데, 내가 없는 동안엔 매번 자위로만 욕구를 달래고 있었겠지.

내 손을 잡고 천천히 손바닥을 주무르고 있는 그이. 분명 흥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언제까지고 꼭 붙잡은 채 내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나랑 하고 싶어?"

그러자 그는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 얼굴을 들었다.

"하,하게 해 주는 거야?"

생각지도 못 한 귀여운 반응이었다.

그이는 마치, 옆 집 사는 누나한테 "섹스하게 해줄까?"라는 말을 들은 중학생 남자아이와도 같은 눈을 하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니, 당신 내 남편이잖아...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게 당연하잖아"

남편이 뭔가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자기가 싫어져서 아내가 가출했던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사실은 그런 게 아닌데. 별로 당신이 싫어져서 그런 건 아냐. 단지, 켄지하고 유이치에게 빠져 돌아올 수 없게 된 것 뿐이지. 지금도 별로 당신이 싫다던가 그런 건 아닌걸...

게다가, 나같은 똥걸레 갈보년한테 설설 길 필요까진 없는데. 더 당당하고 남자답게 굴어도 괜찮은데.

"당신 몸은 괜찮아? 아프진 않아? 움직여도 괜찮아? ...괜찮으면 지금 당장 침대로 가도 상관없는데..."

"괜찮아 괜찮아! 너야말로 괜찮은거야? 아무 문제 없어?"

"문제는... 무슨, 없어 없어"

그이가 부리나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어느새 내 옆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이가 의자를 뒤로 잡아 빼주자, 고마워 라고 말하고는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요 일년동안 그이가 다른 여자하고 한번도 자지 않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내내 나를 걱정하고 쭉 찾아 헤맸구나 라고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굳이 그럴 것까진 없었는데... 라는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교차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미 이혼은 확정일텐데, 뭐. 그래도 그때까진 제대로 아내로서의 의무(특히 밤의 일)를 다해야겠지 라고 멍하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