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초대 12

욕망의 초대 12

나는 키를 돌려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회전하는 요란스런 소리가 한 차례 들렸고, 스피커에선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요즘에 유행하는 음악인지,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계속 반복되는 댄스음악이었다. 음악소리가 제법 큰 것 같아서, 나는 옆에 앉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소리를 약간 줄였다.

라디오를 끄지 않고 시동을 끄는 습관 때문에 늘 이렇다. 시동을 켜면서 동시에 라디오가 켜지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은근히 이것이 신경 쓰인다.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운반이 되어야 할 무슨 물건처럼, 그녀는 꼼짝 하지 않고 다소곳한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그쳤다. 진행자가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젊은 개그맨으로 추정되는 이 진행자는, 청취자를 웃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게스트로 초대된 어떤 가수와 함께,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듣고 있었던지, 그 이야기에 맞추어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시동이 걸린 자동차는 덜덜 거리며 엔진의 회전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웅 하는 엔진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왔다. 그녀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고 나는 가만히 앉은 채로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과연 이대로 출발을 해야 할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것이 옳은 일인지, 도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엔가 떠밀리 듯 그녀를 데리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분명한 나의 의사였다.

물론 충동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것은 분명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아내를 한 차례 노려보며, 그리고 카오리의 호의적인 태도를 무시한 채, 나는 카오리의 어머니를 데리고 나왔다.

놀라운 것은, 카오리의 어머니가 자신의 의사를 조금도 피력하지 않고, 나와 카오리의 결정에 따랐다는 것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나를 따라 나오기 위해 내 뒤를 쪼르르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정해진 각본대로 흘러가듯이, 이상할 정도로 상황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막상 차를 출발시키려고 하니, 이 상황이 전혀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불만이 가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내 아내와 카오리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던 것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말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질투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 근거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아내가 카오리의 몸에 푹 빠져버린 그 이후, 나는 아내의 그 거대한 성욕을 오직 나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좋다는 일종의 해방감 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여자가 사는 방법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심지어는 내가 아내에게 선물과도 같은 것을 주었다는 생각 마저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내가 아내를 독차지 하고 싶다는 소유욕과 같은 것을 완전히 버렸기에 가능한 것이고, 또한 그 어떠한 육체적 쾌락 앞에서도, 아내가 나와의 사랑을 우선 순위에 둘 것이라는 걸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쩌면 카오리와의 만남은 숙명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은근히 그를 반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알 수 없는 적대감을 품고 있는 것은 나 스스로도 아직 설명을 하기에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다. 카오리식으로 비유를 하자면, 내 애완동물이 무척 아파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수의사의 실력이 기가 막혀서 내 애완동물의 병을 순식간에 낫게 해준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왠지 수의사가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이렇게 그에게 치료를 맡기다간 언젠가 내 애완동물을 잡아먹지는 않으려나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근거는 없고, 또한 단서도 없지만, 내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수의사의 눈에서 나만이 읽을 수 있는 그 어떤 비정상적인 모습을 발견했다면 굳이 이것을 나의 심증이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카오리적인 비유일 뿐이다. 내 아내는 누군가의 애완동물이 아닐뿐더러, 그녀가 지금 카오리의 몸에 푹 빠져 있다고 해서, 그가 저지르는 일을 모두 용인할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은 아닐 테니까.

아무튼 이것은 기우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괜한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세상에 자신의 환자를 잡아먹는 수의사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내가 느끼는 이 불안감은, 지금의 이런 상황이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러니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그런 그림과 동떨어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순전히 어린애적인 투정이라고 해도 나는 변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면서도 그 대안을 도저히 제시할 수 없는, 그런 유아적인 사고에 내가 푹 빠져버린 것이었다. 카오리에 대한 나의 적대감을 확연하게 형상화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가장 긍정적으로 결론지은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어린 아이에게 주어진, 이 달콤한 사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거나 먹고 있으라는 뜻의, 그리고 주사를 맞아서 앙앙 울고 있는 애기에게 달콤한 사탕을 하나 건네주듯이 나에게 다가온 이 여자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유아적인 태도로 그녀를 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라디오의 음악이 흐르고 있는 이 차내는, 순식간에 향긋한 향기로 가득 차 버렸다. 그것은 조금 전 머리를 감은 그녀의 머리에서 흐르는 향기였다. 갑자기 집 밖으로 나오느라, 화장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향수를 뿌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단지 샴푸의 향기 만으로도, 이상스러울 정도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아마 그녀가 지나치게 달콤한 사탕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쨌건 그렇게 카오리의 어머니와 함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한 기간은 생각 보다 훨씬 짧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애초에도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었던 그녀와의 동거는 방금 언급한 그 어떠한 일로 인해, 생각한 것 보다도 더욱 짧은 기간 내에 끝나버리게 된 것이다.

어떠한 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지만, 그래도 그녀와의 시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카오리와 함께 있을 때면, 어쩐지 기가 죽은 모습으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던 그녀가, 웬일인지 내 차 안에서는 생기 있는 얼굴로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수도 무척 적은 편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아마도 카오리에게 겁을 먹었기 때문에 방 안에서는 움츠러든 모습을 하고 있던 것 같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그녀는 먼저 나에게 물었고, 내 나이를 말하자 그녀는 나 보다 네 살 연하라고 했다.

내 아내도 당신과 동갑이라고 하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그것 참 재미있네요.” 하고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이윽고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때만 해도 내 기분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어쩐지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나는 무엇엔가 이끌리듯 억지로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입 꼬리를 살짝 올린 채 기분 좋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둘 다 침묵을 지키고 있을 무렵,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밖으로 나올 때가 저는 제일 좋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외출을 별로 안 하시나 봐요?”

“카오리 때문에 할 수가 없잖아요.” (물론 그녀는 ‘카오리’라는 인터넷 닉네임 대신, 그의 본명을 말했지만, 소설 속에서 두 가지 이름을 쓰면 혼란이 있을 수 있으므로, 편의상 ‘카오리’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카오리가 밖에 못 나가게 하나 봐요?”

“대체로 그래요. 이렇게 가끔 다른 남자에게 넘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나 겨우 바깥에 나가요.”

‘다른 남자에게 넘긴다’는 점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무척 많았지만, 자칫하면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꺼낸 것은 오히려 그녀였다.

“옛날에는 남자들이 제 발로 집에 찾아왔는데, 이제는 집으로 오겠다는 남자가 별로 없어요. 5, 6년 전부터 이랬어요.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아저씨들이 저한테 한 번 넣어보려고 줄을 설 정도였는데, 저도 나이가 들어서 이런 처지가 되었네요. 그래서 요즘에 좀 힘들어요. 생활비가 항상 부족하죠.”

“일을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무슨 일이요?”

“그러니까…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그런 일 말이죠.”

“그런 건 카오리가 싫어해서… 그리고 저는 가방 끈이 짧아서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요. 다리 벌리는 일은 좀 할 줄 아는데, 이런 쪽의 일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고, 예전에 우리 집에 자주 들리던 아저씨들 중 몇 명은 다리를 놔주겠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카오리한테 쫄아서 아무 말도 못해주더군요. 그런데 아저씨도 괜히 절 도와주려고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에 저를 빌려간 어떤 아저씨는 제 신세가 불쌍하다고 제 일자리를 알아봐줬는데, 나중에 카오리한테 들켜서 실컷 두들겨 맞았죠.”

나는 울컥해서 “그 사람은 맞고만 있었답니까?” 하고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녀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카오리의 커다란 그림자에, 나까지 기가 죽는 느낌이 들어서 괜히 그렇게 말을 내뱉어 버린 것이었다.

“그랬나 봐요.”

“신고는 안 했답니까?”

“카오리는 신고를 못하게 때려요. 대충 때리면 신고를 해버리는데, 제대로 때리면 신고를 못하거든요. 그게 아니라면 죽여버리면 되죠. 죽으면 신고를 못하니까요.”

“죽여요?”

“아니, 꼭 그렇다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런 적도 있습니까?”

“없어요.” 하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입이 방정이지…’ 하고 자책하는 듯한 표정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여자를 때리지는 않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시큰둥하게 아니라고 대답을 하더니,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화제를 급하게 전환시켜버렸다.

나는 행여나 내 아내가 맞을까 봐, 카오리가 폭력을 행사한다는 그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으나, 그녀가 전환시킨 화제 역시 내 흥미를 당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저도 나름 아직까지는 먹히는 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그 아가씨에게 아저씨들을 다 빼앗기고 말았어요. 하여간 남자들이란 조금이라도 어린 여자가 더 좋은가 봐요. 나한테 오던 아저씨들이 전부 거기로 가버렸거든요. 아 참, 아실려나… ‘카오리’라는 아이디가 바로 그 아가씨 별명인데…”

“아가씨요?”

“몰랐어요? 에이… 이것도 괜히 말하는 건가. 하여튼 있어요. 카오리가 어디서 데리고 온 어린 아가씨 말이죠.”

나는 그 아가씨의 정체에 대해서 계속 캐물었지만, 카오리의 어머니는 별로 대답하기 싫다는 듯이 내 말을 모두 무시해버렸다. 내가 다시 한 번 그 아가씨에 대해서 묻자, 도리어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렇게 날이 밝으니까 한강물도 참 멋지구나.” 하면서 방긋방긋 웃을 뿐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 나이만 비슷할 뿐 내 아내와는 전혀 다른 여자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