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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여인 - 1

토토군 0 1820 0 2025.10.30

가을날의 여인 - 1

 

그 오솔길은 큰 길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오솔길에 불연 듯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저 오솔길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그런 호기심이었습니다. 나는 그 오솔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오솔길은 좁았고 양 옆에는 숱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숱은 막 단풍을 시작하는지 울긋불긋한 색깔을 머금고 가을을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한 십 분쯤 걸었을 때였습니다.

족히 수 십 그루의 나무를 쳐낸 듯 싶은 공터가 나왔고 그 공터에는 겨우 흉물을 면한 콘크리트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 건물에는 ‘라면’ 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간판 집에서 제작하여 붙인 간판은 아닌 듯 했습니다. 서툰 글씨체가 그걸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빛바랜 페인트칠의 밀문을 열고

그 건물 안에 들어서자 칠팔 평 남짓의 홀이 나를 맞았습니다. 탁자 서넛이 그 건물이 식당임을 유일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탁자들 한 가운데에 난로가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지난해 설치해 놓고는 주인의 게으름으로 봄과 여름이 지나도록 치워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 난로는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럭비공 보다 클까 말까한 크기였습니다. 나는 탁자의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장식물이라곤 없었습니다. 식당이라면 으레 붙어있기

마련인 소주회사 포스터 한 장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하얀 페인트칠을 한 사방 벽에는 온통 낙서였습니다. 주인이 벽에 하얀 페인트칠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낙서

한 가운데에 메뉴를 써 넣은 두 장의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 한 장의 종이에는 ‘호호라면’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나머지 한 장에는 ‘그냥라면’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냥라면’이라면 말 그대로 그냥 라면일 터였고 ‘호호라면’은 짐작이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홀 모서리의 조그만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섰습니다. 그 가게의 주인이었습니다.

멜빵의 바지를 입고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대단한 거구였습니다. 그리고 배가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나와 있었습니다. 그 멜빵 아저씨는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멜빵 아저씨의 거구와 럭비공 만큼 한 쬐끄만 난로가 주는 언밸런스 그 언밸런스는 나에게 묘한 정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라면... 먹을 거야?.......................” 

 

멜빵 아저씨는 스스럼없이 그렇게 반말지거리였습니다. 그 반말지거리 역시 나에게 정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예... 호호라면으로 해 주세요......................”

“혼자... 오는 사람에게 호호라면은 안 팔아... 그냥라면 먹어.........................”

 

나는 ‘그냥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죠?.....................”

“이천 원이야..................”

“예?... 왜... 그렇게 비싸요?... 자장면도 천 원 밖에 하지 않는데...................”

“호호라면은 싸... 천 원이야....................”

 

나는 라면 값을 치르고 벽 한쪽에 낙서를 했습니다.

 

― 젠장... 호호라면은 팔지도 않고... 난로는 쇠 부랄 보다도 작고... 주인아저씬 고릴라 몸집보다 크고... 그러나 담에 또 올 거야.......... ―

 

그런 낙서를 남긴 나는 다시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또 십여 분 걸었을 때였습니다. 오솔길 옆의 나무 둥지에 붙은 작은 푯말이 내 눈에 뜨였습니다.

그 푯말에는 ‘강변찻집’ 이라는 예쁜 글씨가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화살표와 함께 ‘500m만 더 걸으세요.’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예쁜 글씨하며 문구의 어휘가 그 푯말을 붙인 사람이

여성임을 단번에 알아보게 했습니다.

 

‘이... 오솔길의... 끝이 여성이 하는 찻집이라... 괜찮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백 미터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오백 미터를 삼사십 미터 남겨두었을 때 숲 사이로 어떤 물체가

보였습니다. 조금 더 다가갔습니다. 그 물체는 ‘강변찻집’ 건물이었습니다. 목조로 지은 아주 아담한 건물이었습니다. ‘숲속 강변의 찻집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내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유모레스크’의 바이올린 선율이었습니다.

 

유모레스크(Humoresque)는 기악 연주의 한 형식인데 드보르의 7번 유모레스크가 워낙 유명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은 유모레스크가 드보르 작곡 음악의 제목인줄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피아노곡이었으나 바이올린 연주가 아주 일품입니다. 나는 그날의 감흥을 잊지 못하여 유모레스크를 지금도 나의 휴대폰 컬러링으로 쓰고 있습니다.  ‘강변찻집’의 마당은 잔디가 깔려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잎이 무성한 나무들로 울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 탁자들이 있었고 나무둥지에는 스피커가 달려있었습니다. 그때의 ‘유모레스크’는

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아무 탁자에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여인이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커피 드릴까요?...................” 

“커피 말고 다른 차는?....................”

“저희 집엔... 커피와 우유 밖에 없는데.....................”

“예... 좋아요... 커피 주세요....................”

 

그런데 그 여인의 얼굴이나 인상은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대하던 얼굴이었고 숱하게 머릿속에 그리던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얼굴 그 인상을 언제 어떻게

마주해 봤는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때가 가을인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인상에 가을 내음이 아주 짙게 풍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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