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의 어둠
호프집의 어둠
그날, 그 조그맣고도 숨 막히는 호프집. 홀은 겨우 다섯 평 남짓, 칸막이 하나뿐인 방. 천장의 조명 하나만이 어둠을 흐릿하게 찢으며 희미한 붉은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요즘 술집은 디리를 벗어 재끼고 조개탕들이 상 위로 올라가 난장을 떠는 곳. 옛날엔 옵션이던 2차가 이제는 초장부터 “안 나가믄 느그들 뒤진다”는 으름장으로 변했다. 해어화(解語花)들이 왜 이리 헐값이 되었는지, 시절이 어지러운 탓일까. 나는 그저 막술집이 더 맘 편했다. 누구에게 방해 받지 않고 취하고 돌아올 수 있으니. 그날도 대작할 상대 없이 혼자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멀찌감치 한 남자가 작업에 들어갔다. ‘쓉쉐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구먼, 웬 작업?’ 남자는 내 쪽을 향해 등을 대고 앉았고 여자는 나를 바라보는 자세. 그 표정을 살피기엔 내가 굳이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할 필요도 없었다. 여자는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 보지 않아도 남자는 되도 않는 스토리와 뻐꾸기를 날리며 여자를 감상 일변도로 끌어가는 빛이 역력했다. 끄덕이는 고갯짓, 한 팔로 괸 턱, 가끔씩 흐를까 봐 손끝으로 찍어내는 눈물. 남자는 고수였다. 진정한 선수. 대개 작업에 들어간 남자의 몸짓이 화려하면 성사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미동도 없이 시를 읊듯 주저리주저리 눈앞의 여자를 세치 혀로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그리고 선수의 또 다른 특징. 무너지는 여성의 심리를 파고들며 교묘하게 권하는 술잔. 이야기에 흠뻑 취한 여자들은 조용히 연거푸 따라 주는 술을 냉큼냉큼 받아 마시며 그게 독인지 모른다. ‘캬, 오늘 또 엄한 조개 하나, 나가리 뽕 되누만…’ 여자는 술이 제법 셌다. 날름날름 털어 넣어도 눈매가 풀리지 않았다. 그때 핸폰이 왔다. “응…… 여기?…… 직원들이랑….. 회식이지 뭐…… 재미는 무슨…… 다음에? 노래방? 에이, 내가 무신 중딩이니? 때 맞춰 노래방 가게? 아니야, 대강 파장하면, 집에 갈 거야…… 자긴, 오늘 새끼줄 없쓰?..... 알았어… 알았다구…… 어디 혀가 풀렸다고 그래?..... 응?.... 응? 콧소리가 뜬다구?...... 내 콧소리 하루 이틀인가? 언제는 현영처럼 들린다구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알았어. 집에 가서 전화 할게…… 응…. 알았어…..” 남친 전화. 그녀는 자리를 비키지 않고 윙크하며 남친을 엉뚱한 곳에 취직시켰다. 남자는 그윽한 눈매로 “걱정 마, 편안히 해” 라는 뺑끼. 선수였다. 계산. 남자가 일어나 드링크 사오고 여자는 원샷. 그리고 구석에서 여자가 내용물 검사. 남자는 물휴지 꺼내 등 두드리며 “괜찮아…” 나는 그들을 따라 밤거리로 나섰다. 그날 밤, 또 한 마리 조개가 나가리 뽕 되었다. 선수와 꽃뱀. 그들의 불꽃은 어둠 속에서 타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불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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