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을 년의 그림자
썩을 년의 그림자
놈의 입에서,
그 년의 이름이 스치기만 해도, "썩을 년!" 하는 전라도 사투리의 저주가, 문드러져 썩어 문드러져 죽을 년이란 그 날카로운 가시처럼 툭 튀어나오곤 했다. 그래서 그 말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었다. 증오의 깊은 늪에서 피어나는, 그 년을 향한 끝없는 분노의 메아리였고, 놈의 가슴속에 새겨진 상처의 상징이었다. 그럼 왜 놈은 그 년을 그렇게 미워하는가. 이제 그 이야기를, 숨 막힐 듯한 그 비밀의 실타래를 풀어가려 한다. 스포츠에서 쓰는 '인터셉트', 상대 패스를 도중에서 가로채 튕겨내는 그 순간의 스릴을, 아나운서들은 부드럽게 '인터셉트'라 부르며 중계하지만, 놈에게 그 단어는, 현실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랬다. 놈은 그 썩을 년을, 잘 아는 동생뻘 되는 녀석에게 인터셉트당하고 만 것이다. 물론 동생뻘이 그 짓을 저질렀다면, 그 녀석에게 욕을 퍼부어야 마땅할 텐데, 놈의 마음은 달랐다. 왜냐하면, 그 썩을 년이 먼저 동생뻘 녀석에게 꼬리를 쳤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녀석이 그 년을 데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일 때, 이차로 노래방에 흥청거리며 들어서면, 녀석이 술에 취해 풀썩 쓰러져 잠든 틈을 타, 그 년은 녀석의 친구들 품에 스르륵 안겨들어, 춤을 추며 아양을 떨고, "오빠~ 더 마셔요~" 하며 손을 휘저는 걸, 놈은 뻔히 봐왔으니까. 물론 녀석의 탓도 컸다. 녀석은 애주가답게 술을 즐겼지만, 취하면 장소 가리지 않고 쓰러져 자는 버릇이 있었고, 반면 그 년은 두 주불사도 마다하지 않을, 술고래 같은 여자였다. 년이 결혼 후 무능한 남편 때문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야기를, 녀석에게 털어놓으며 자랑하듯 했을 때부터, 놈은 그 년의 주량을 짐작했다. 녀석과 만나 술 마실 때마다, 백 번 중 아흔아홉 번 녀석이 먼저 다운당할 만큼, 그 년의 술버릇은 전설적이었다. 녀석이 들은 그 년의 주량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놀라 자빠질 만한, 직장 회식 에피소드였다. 요즘처럼 주5일 근무가 아니던 시절, 토요일 회식이 일상이었던 그때, 식사 도중 그 년과 직장 상사가, "내가 이기지 못 해?" 하며 침을 튀기듯 승부를 걸었고, 결국 동료들 참관 속에 년의 친구 자취방으로 몰려가, 소주를 맥주 글라스에 가득 채워 마시며 테스트를 시작했다. 3시간 만에 병나발로 넘어가자, 오기 어린 상사가 승낙했고, 아침 7시까지 비운 소주병은 한 상자 반, 무려 60병이었다. 둘 다 말짱했지만, 계속하면 누가 죽을 판국에 동료들의 만류로 중단됐고, 월요일 년은 말끔히 출근했으나, 상사는 이틀 결근 후 수요일에 출근해, 혀를 내두르며 항복을 선언했다. 년이 녀석에게 자랑하듯 이 이야기를 했고, 참관했던 년의 친구 증언으로 진실임을 알았으니, 녀석이 그 년과 술 마실 때마다 먼저 뻗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그 년의 바람기는 녀석도 평소 알던 사실이었다. 녀석과 년의 만남은 끈끈하게 지속됐지만, 중간에 년이 다른 놈과 눈이 맞아 녀석을 피하던 적도 있었고, 그러나 속궁합이 너무나 잘 맞아, 8개월 만에 다시 녀석 품으로 스르륵 안겼다. 잠잠히 녀석의 품에서 재미를 느끼던 그 썩을 년은, 동생뻘 되는 녀석에게 붙어 놀아난다는 소문을 듣고도, 녀석과의 모임에 참석하며 모르는 척 해주었지만, 녀석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함구했다. 이제 녀석과 그 년의 만남, 그리고 인터셉트 당한 이야기를 풀어보자. 녀석은 작은 사업을 했다. 종업원 몇 명을 두고 공장을 굴렸는데, 남자 4명, 여자 3명, 운전기사로 구성된 그 팀 중, 그 년은 가장 열심히 일하는 여자였다. 다른 여자들 한 목 반을 해내는 그녀 덕에, 녀석은 그 년에게 특별히 신경 썼다. 연초 인건비 인상 때 다른 종업원보다 월급을 후하게 올려주고, 몰래 보너스를 쥐여주며 아꼈다. 몇 년을 사업주와 종업원 사이로만 지내다, 가까워진 계기가 생겼다. 녀석의 어머니가 별세한 것이다. 공장 일을 년에게 맡기고 장례를 치러야 했던 녀석은, 그 년이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모자라, 장례식장으로 달려와 손님 접대부터 허드렛일까지 마다 않고, 출상 날까지 밤을 새우며 달라붙었다. 아침 출근 시간엔 공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녀석의 일가친척들은 그 열의에 놀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상가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한다. 평소 효도한 자식은 슬퍼도 눈물이 적지만, 불효자식은 슬프지도 않은데 억지 통곡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상 중에 화장실 가서 빙그레 웃는다"는 말이 생긴 거다. 녀석은 모친에게 효자였다.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를 효자로 추앙했지만, 장례식장에서 담담히 빈소를 지키던 녀석은, 영정 모시고 모친 집에 들어서며 대성통곡하다 혼절했다. 많은 이들이 측은히 여겼고, 종업원들도 모친 집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으니, 장례식장에서 허드렛일을 마다 안 했던 그 년도 눈시울을 적셨다.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녀석은, 삼박사일 밤잠 설친 피로에 잡아떨어지듯 잠들었고, 날 밝아 정신 차린 후 허둥지둥 아침을 먹고 공장으로 갔다. "은혜야, 사무실로 와." 현장 한 바퀴 돌며 종업원들에게 수고 인사하고 사무실로 들어선 녀석은, 마이크로 년을 호출해 자리를 비운 동안의 일을 물었다. "사장님, 고생 많으셨어요. 피곤 안 하세요?" 년이 들어서며 물으니, "나야 한 번은 당할 일인데, 은혜야 정말 고생 많았소. 별일 없었지?" "네, 이게 몇 개 나갔고, 이 모델은 몇 개, 재료는 어제 몇 개 들어와 생산 중이에요. 이건 거래처에서 급하다고 연락 왔는데 재료가 안 나와 큰일입니다." 세세히 보고하며 머뭇거리던 년이, "사장님, 장례 치르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제가 작은 선물 하나 할게요. 받으시겠다면 눈 감아보세요." 하며 얼굴을 붉혔다. "뭐? 선물?" 놀란 녀석에게 "어서요!" 재촉하니, "허, 그래." 눈 감자, 쪽! 가벼운 뽀뽀가 입술에 스쳤다. "아니?" 눈 뜬 녀석에게, "전 갑니다." 년은 뒤도 안 돌아 현장으로 사라졌다. 상상 못 한 일에 당황한 녀석은, 그 의도를 도무지 이해 못 했지만, 상 치르고 공장 일에 전념했다. 그러나 년은 눈길 마주칠 때마다 얼굴 붉히며 외면할 뿐이었다. "사장님, 내일 시간 있으세요?" 토요일 오후, 년이 불쑥 사무실로 와 물었다. "아니, 없어. 왜?" "그냥..." 얼굴 붉히자, "참, 내일 회 한 접시 어때?" 모친 장례 도움에 보답으로 회 사주기로 마음먹은 녀석이 제안했다. "사장님 정말?" 환하게 웃으며, "네, 내일 아침 11시까지 00으로 나오세요." "네!" 밝은 얼굴로 현장으로 갔다. 회 한 접시가 약하다 싶어 돈봉투를 준비한 녀석은, 다음 날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화사한 차림의 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닷가 횟집으로 데려가 회와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 가야지? 애들은 집에?" 일어나자, "친구네 집에서 논다며 늦게 오라고 했어요." 따라 일어났다. "택시 잡아줄까?" 길가에서 묻자, "이야기 더 해요." 얼굴 붉히며, "다방?" "......" 고개 저었다. "그럼?" "......" 앞장서 걸으니, 녀석은 뒤따라야 했다. 들어선 곳은 다방도 찻집도 아닌, 허름한 여관. "......" 년은 백에서 돈 꺼내 계산하고 키 받아 계단 오르자, 녀석은 어리벙벙 따라 들어갔다. "사장님, 아무 말씀 마세요." 방 들어서자 품에 안기며 입술 포개고, 녀석은 귀신 홀린 듯 끌어안아 깊은 키스 하며 풍만한 젖가슴 주물렀다. "싫어요, 이런 누추한 데선." 하복부로 손 내리자 팔 잡으며 거부했다. "그럼 여긴 왜 왔어?" "이런 곳이어야 제 마음을 사장님에게..." 말 흐리며 다시 안겨 키스, 녀석은 마지못해 키스만 한참 하고 허무하게 여관 나와 년을 택시에 태워 보냈다. 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안 녀석은 월요일 출근해 일을 핑계로 년 불러, 사무실서 깊은 키스 해주고 보냈고, 이후 출근 인사처럼 키스, 퇴근 작별처럼 키스가 일상이 됐다. 주말 회식 후, "일요일 어디로 나오라고." 하니 고개 숙인 년이 "그러마" 했다. 오전 12시 만나 가게 점심 먹고, 허름한 여관 아닌 번듯한 모텔로 데려가자, 년은 기다렸단 듯 옷 홀라당 벗고 욕실로, 녀석도 따라가 샤워는 뒷전 알몸 비비며 키스에 열중하다, 물 한 바가지도 안 맞고 방으로 들어 침대서 뒹굴다 섹스에 빠졌다. 그 후 시도 때도 없이 섹스 즐겼다. 직원 퇴근 후 사무실서, 아침 일찍 출근 약속 날 직원 올 전 사무실서 년 엉덩이 까고 뒤에서 펌프질도. 꼬리 길면 잡히고, 잘나면 시기하는 게 세상 이치, 여자들의 질투는 대단했다. 년의 탓이 컸지만... 장소 가리지 않는 섹스에 기고만장한 년은, 마음에 안 들면 사장이라도 삿대질 욕하고, 남자 직원 좌지우지해 해고시키기까지. 녀석 아내가 공장 들러 화내도 나오라 마라 했다. 모텔서 나란히 나오는 모습, 퇴사한 여자에 발각돼 아내에게 전해지자, 아내가 "이혼할지 년 해고하고 끊을지 양자택일" 하니, 아이 있는 녀석은 속궁합 좋지만 년도 남편 둔 처지라 해고시켰다. 해고수당 설득하다 "주면 이혼"에, 녀석은 년에게 노동부 고발 부추겨 아내 입 막고 지급했다. 그러고도 아내 몰래 만나 즐겼다. 공장 해고된 년은 식당 전전하며 일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라 생각했나, 술 한 잔에 주방 식구들과 어울려 마실 수 있었으니까. 사귐성 좋아 언니동생 많아졌지만, 녀석 앞에 오랜만에 사라졌다. 번호 바꾸고 행방 묘연. 답답한 녀석은 술 취해 년 있을 만한 데 다 뒤졌고, 집 앞 죽치다 남편 발각 뻔한 적도. 년 더 깊이 숨자, 일 끝나면 행방 쫓아 공장 문제 생겨 아내가 운영 차지, 경제권도 넘기 담배술값 타 쓰는 처지 됐지만, 녀석은 년 찾기에만 몰두했다. 자정 넘어 2시쯤, 술 취해 년 집 길목 지키다 택시 서고 남자 내리며 손 흔들고 달려가자, 이어 비틀거리며 내린 여자 풀썩 쓰러지니, 분명 그 년이었다. 달려 부축하니 행색에 놀랐다. 청바지 오줌 쌌는지 하반신 축축, 지퍼 열려 팬티 찢어지고 끈적한 게 흘러내리는 걸 보니, 택시 합승 중 인사불성 년을 기사와 손님 합작으로 어딘가 파킹해 빠구리 당한 게 분명했다. 저주 말고 동정하며 남편아이 안 보이게 데려가려 택시 잡았으나, 년은 이미 자취 감추고 사라졌다. 홀로 집 부근 와 술 더 마시고 엉금엉금 기어 집 갔다. 몇 달 후, 오매불망 기다리던 년 전화 왔다. 만나자마자 년은 그날 변명 급급. "바지 젖은 건 맥주 잔 넘어져서, 소주 마시다 양주 짬뽕해 인사불성 돼 무슨 일 있었는지 몰랐어요. 오빠 부축 받고 알아보고 미안해서 도망쳤어요." 오매불망 기다린 녀석은 신경 안 쓰고 모텔로 데려가 회포 풀며 "다시는 떠나지 마" 애원 협박, 년도 약속하며 눈 적시자 같이 울며 몸 섞었다. 만남 이어졌지만, 경제권 아내에 돈 궁했다. 년 만나려 술값 여관비 택시비 만만치 않아 아내 손 벌리다 몇 푼 쥐고, 숨겨 돈 모아 만나곤 했다. 사정 털어놓자 년은 공장 찾아와 사무실서 소주 단무지 안주로 마시며 빠구리. 년 늘은 건 거짓. 동생 문제라 300만 급히 달라 해, 경제권 아내에 300 큰 돈, 친구 부탁해 마련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독촉 심해 아내 몰래 공장집 전화 보증금 50 해주고 기다려달라 애원. 년은 식당 못 한대 친구 꼬드겨 작은 주점 열었으나, 친구가 술 먹어치워 매상 안 오르고 분쟁 생겨 녀석 도움 요청. 녀석 아내에 거짓말 돈 뜯어 가게 매상 올리다 안 돼, 문제 동생뻘 놈 끌어들였고, 녀석 자리를 비운 사이 년이 그 녀석과 눈 맞아 인터셉트. 그러면서도 년은 녀석 만나 보지 대주지만, 녀석은 구멍 커진 걸 느끼고도 참았으나, 녀석 만나면 년이 "지금 누구랑 어디서 뭐 해?" 뻔뻔 전화해 단정 지었다. 놈은 년 완전 멀리했다. 동생뻘 놈과 구멍동서 싫어. 년도 전화 안 했으나, 빌려준 돈 독촉에 문자 보내자 받지도. 녀석은 나에게 말했다. 아니, 노래 불렀다. "다시는 생각 말자 생각 말자고 그렇게 애타던 말 한마디 못하고 잊어야 잊어야만 될 사랑이기에 깨끗이 묻어버린 내 청춘이건만 그래도 못 잊어 나 홀로 불러보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잊어야 잊어야만 될 사랑이기에 깨끗이 묻어버린 내 청춘이건만 그래도 못 잊어 나 홀로 불러보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끝나지 않았네, 끝나지 않았네." 흐느끼듯 부르던 녀석의 눈은 촉촉히 젖어, 난 생각했다. 녀석 마음속에 아직 큰 응어리로 남아있다고...
불륜의 늪, 인터셉트된 배신, 주량의 전설, 장례의 키스, 사무실의 속삭임, 경제권의 굴레, 주점의 함정, 증오의 사투리, 속궁합의 저주, 잊지 못할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