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속 괴물의 편지
가면 속 괴물의 편지
난 너에게 편지를 써.
모든 걸 말하겠어. 변함없는 마음을 적어주겠어. 이 편지에 내 영혼의 조각까지 담아. 너에게 보내겠어. 우리 엄마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항상 웃으며 말하곤 해.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거라고. 집에 돈이라도 있어서. 저런 년을 부양할 수 있다면서. 그 웃음은 엄마 나이와 맞지 않게. 천진난만하게 빛나지만. 내게는 그 웃음이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져. 때로는 아주 못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엄마의 입을 내 입처럼 찢어놓고. 저렇게 끔찍한 말을 웃으며 하는 엄마의 얼굴을. 내 얼굴처럼 만들어버리고 싶어져. 아아. 정말 끔찍해. 상상만 해도 등줄기가 서늘하게 오싹해져. 집에서 거울을 모두 치워버렸음에도. 우연히 내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두려움이 밀려와. 세수할 때 담아놓은 물 표면에 비친 얼굴. 잘 닦아놓은 유리창에 언뜻 스치는 내 모습. 내 얼굴임을 알면서도 놀라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엄마 얼굴을 그렇게 만들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은. 그냥 생각으로 끝나. 설령 내가 정말 미쳐서. 엄마 얼굴을 지져놓는다 해도. 난 결코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거야. 엄마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듯이. 그래. 얼굴. 얼굴은 정말 중요한 거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걸 "대면"이라고 하잖아. 얼굴을 맞댄다는 뜻이니까. 서로의 표정을 읽으며. 감정을 나누는 일. 멋진 일이잖아. 불행히도 나는 5년 동안. 그런 경험을 거의 하지 못했어. 아니. 이 편지에서 솔직하게 말할게. 딱 한 번뿐이었어. 그때는 얼굴이 이렇게 되고 얼마 안 됐을 때. 지금처럼 가면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3차 수술 전이라. 고름이 아직 제법 나올 때였으니까.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으면 떼는 것도 골치 아팠어. 그래서 가면을 잠시 깜빡하고 있었나 봐. 초인종이 울리고. 택배가 도착했어. 그때나 지금이나 택배 오는 건 신나는 일이야. 게다가 그건 해외 배송으로 오매불망 기다리던 물건이었으니까. 한달음에 달려가 문을 열었지. 택배 아저씨와 눈을 마주쳤어. 기쁘니까 웃었을 거야. 아직 사고 전 버릇이 남아 있었으니까. 택배 아저씨는 비명을 지르며 상자를 떨어뜨리고. 뒷걸음 치다 계단을 헛디뎌 굴러 떨어졌어. 우당탕탕. 사람이 계단에서 구르는 건. 영화의 액션 장면과는 달라. 나도 모르게 문 밖으로 나가. 괜찮냐고 묻고 부축하려 했지만. 아저씨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어. 도망가면서 외친 말. "괴물". 그래. 난 괴물이라 불렸어. 엄마도 말하지 않지만. 그 단어를 눈에 담고 나를 봐. 아빠나 언니, 동생도 마찬가지일 거야.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 속 단어가 보이니까. 그만큼 명확한 사실이니까. 난 저 별에게 다짐했어. 내 모든 걸 걸겠어.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겠어. 당신이 처음 온 날을 기억해. 그날도 난 DVD를 보고 있었지. 5.1 채널 사운드 때문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늦게 알아챘어. 미안해. 하지만 나는 바깥 소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 가발과 가면을 쓰고 문을 여는 건. 시선을 피하는 대면일지라도 버거우니까. 근데 당신은 달랐어. "주인 아가씨 계시나요?" 주인 아줌마가 아니라 아가씨라니. 그 이상한 표현에 혼자 웃었어. 스피커 음량을 줄이고. 당신 목소리에 귀 기울였지. 적당한 저음. 안토니 홉킨스와 비슷한 톤. 느낌이 그랬어. 번거로운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열자. 당신은 환한 미소로 꾸벅 인사했어. "1층 201호에 이사 온 최한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모르게 인사받았어. 당신은 가면 너머 얼굴을 볼 일 없으니까. 가면을 신기하게 보거나 동정하지도 않았어. 그저 세입자의 인사였지. 그날부터였어. 창 밖을 내다보고. 바깥 소리에 귀 기울이고. 엄마에게 세입자 이야기를 물은 것도. 당신 때문에. 왜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이렇게 신경 쓰게 만드는 거야. 나는 이제 당신 발소리를 구별하고. 그림자를 찾아내. 그럴 수 있게 됐어. 더 외로워. 너를 이렇게 안으면. 너를 내 꿈에 안으면. 깨워줘. 꿈을 꿨어. 사고 전의 예쁜 얼굴로. 사진 보여줄 수 있어. 앨범에 먼지 쌓인 소녀가 나야. 꿈에서 당신과 데이트했어. 팔짱 끼고. 당신이 내 얼굴에 입 맞추는 느낌. 현실 같았어. 희망 같았어. 깨어나니 과거만 가능하고. 미래는 없다는 사실에. 울고 싶었지만. 눈물샘 파괴되어 눈물이 안 나와. 안약 없인 안 돼. 당신 얼굴이 보고 싶어. 창문을 열고 내다봤어. 조금씩 내밀다 과감해졌지. 어두워지는데 당신이 안 보여 실망하려는데. 당신이 나타났어. 기뻐서 몸을 더 내밀었지. 그런데 당신 팔에 그녀가 매달려 있었어. 꿈처럼. "독립했으니까 자주 와야 돼?" "아예 눌러살까?" 그 대화가 내 마음을 후벼 팠어. 당신 같은 사람이 혼자일 리 없다는 걸. 왜 미처 생각 못 했을까. 이렇게 그리운걸. 울고 싶은걸. 난 괴로워. 사고 후 처음으로 밖에 나왔어. 검은 코트와 가면으로 모든 걸 가리고. 손목만 드러낸 채. 용기 내서 계단 내려가. 조명 피해. 빌라 뒤쪽 좁은 길로. 201호 베란다 너머. 당신과 그녀가 사랑 나누는 걸 봤어. 입술 삼키고. 탐하고. 희롱하고. 신음소리. 그녀 신음은 잡음이었지만. 당신 움직임은 감동이었어. 집으로 돌아와. 그 장면 리플레이하며. 그녀 지우고 나를 넣었어. 손이 다리 사이로. 축축한 샘. 당신이 채워준다는 망상. 나를 들뜨게 해. 살아있게 해. 허무가 올 때. 당신 곁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 니가 나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만 웃고. 사랑을 말하고. 오 그렇게 날 싫어해 날. 깊은 밤. 그녀 돌아가는 시간 파악하고. 준비물 챙겨 골목에서 기다렸어. 검은 옷. 장갑. 하이힐 소리 가까워지자. 알루미늄 방망이 휘둘렀어. 으깨지는 소리. 수박 떨어뜨린 기억. 피와 하얀 것 흩어졌지만. 관심 끊고 도망쳤어. 동네 소란스럽고. 당신 밤마다 술 마셨어. 안주 없이. 혼자. 안타까웠어. 그녀 없으니. 다른 여자 사귀길 바랐지만. 당신은 외로웠어. 나도 외로웠어. 난 욕심이 너무 깊어. 더 많은 걸 갖고 싶어. 너의 마음을 가질 수 없는 난 슬퍼. 당신이 방 뺀다고 해서. 소스라치게 놀랐어. 얼마 안 남았어.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더 외로워. 너를 이렇게 안으면. 너를 내 꿈에 안으면. 깨워줘. 이렇게 그리운걸. 울고 싶은걸. 준비 끝내고. 당신도 이사 준비 끝냈어. 친구들 와서 술 마시고 떠났어. 당신 박스 더미 속에 잠들었어. 주사기 용액 줄였어. 술 취했으니까. 당신 집으로 들어갔어. 짜릿함. 아랫도리 흥건해졌어. 살금살금 다가가. 주사 놓고. 옷 벗기고. 나도 벗었어. 흉한 몸 드러내기 싫었지만. 모든 걸 보여주기로 했으니까. 몽롱한 당신. 그녀 이름 불렀어. 내 안으로 들어올 때도. 슬픔과 쾌감. 난 괴로워. 니가 나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만 웃고. 사랑을 말하고. 오. 꿈같은 하룻밤. 당신 품에서 잠들었어. 아침에 당신 비명. 물건 던지고. 현실로 돌아왔어. 그렇게 날 싫어해 날. 기어 멀어지는 당신. 씁쓸한 웃음. 기억 묻을 수 없어. 라이터로 기름 불 붙이고. 불길 가득. 당신 욕하고 창문 향해. 뒤에서 끌어안았어. 떼어내려다 멈춘 손. 밀어낼 줄 알았어. 그래서 칼로. 당신 배 찌르고. 나도 같은 칼로. 같은 날로. 함께. 너에게 편지를 써. 내 모든 걸 말하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