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욕망의 나락
깨어난 욕망의 나락
나는 작년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아직 숙녀라고 부르기엔 조금은 어린 나이의 소녀였다.
그렇게 다복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을 잘 둔 덕분에 열심히 공부만 하며 살아왔고 그 결과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어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곳에 합격하여 열심히 다니며 대학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대학 친구들과 미팅도 다니고 술은 잘 못 마시지만 조금씩 마시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으니까.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아직은 무서워서 남자들과 단둘이 만나는 일은 삼가고 어느 정도 절제된 범위 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옛날부터 섹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최소한 나에게 불상사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딱 한 번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 후로 남자의 그 물건에 대한 무서움이 생겨 그 후로는 솔직히 남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에 대해 일부러 무관심하려 애썼다.
그런 편견을 가지게 만든 원인은 바로 우리 막내 이모와 이모부였다.
엄마에게는 이모 둘이 있고 외삼촌 한 분이 계신데 그중 막내 이모는 엄마보다 여덟 살이나 적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임신으로 지우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낳았지만 후회막급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이모부는 나에게 두 분이 계시지만 술을 안 마셨을 때만 한정해서 정말 자상하고 믿음직하며 힘도 세고 왕년에 주먹으로 날렸다는 그런 분이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술만 마시면 거의 악마처럼 변해버리곤 했으니까.
술이 인간을 그렇게 변하게 하는 요물이라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그 이모와 이모부 덕분에 성에 대해 이상하게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남자의 그 물건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 일이 시작된 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그날 부모님은 장기 해외여행을 가셨고 여행 기간 동안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내 이모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신혼부부로 신접살림을 차린 이모는 엄마 말이라면 뭐든 따랐고 나중에 알았지만 결혼 비용도 엄마가 형제들 중 가장 많이 부담했다고 한다.
그래서 불과 며칠이지만 조카인 나를 데리고 불편하게 지냈을 텐데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받아주었다.
집은 방 두 개에 거실도 없는 전세였고 침대 없이는 잠 못 자는 이모 때문에 큰 방에는 침대와 화장대가 가득 차 농이며 진열장, 컴퓨터는 작은 방에 두어야 했으니까 나는 그 작은 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집에 혼자 두기 곤란했는지 부모님은 나를 이모 집에 맡기고 떠나셨고 평생 한두 번 갈 수 없는 해외여행이라 그렇게 하신 거였다.
그리고 부모님이 떠난 지 사흘째 밤 나는 안 봐야 할 것을 보고 말았고 그것이 나에게 성에 대한 무서움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이모부는 직장에 다니시고 이모는 집에 딸린 가게에서 양품점을 운영하셨다.
젊어서 벌어야 부모님처럼 잘 산다며 억척스럽게 일하시는 분들이었다.
집 구조는 이상해서 길가 앞에 가게가 있고 가게 안쪽에 이모 내외가 자는 방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부엌이 그 옆에 있고 내가 잔 방은 부엌과 연결된 곳이었다.
문은 유리가 아니라 창호지 발린 옛날식이었고 화장실은 부엌을 지나 마당 공동 화장실을 써야 했다.
그날 밤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는데 이모 방에서 “퍽퍽퍽, 퍽억, 퍽퍽퍽프-으-억”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섹스라는 걸 몰랐던 나는 조용히 문고리를 잡으려다 “아학, 하흑, 학하, 학학학” 이모의 신음에 발길을 멈추고 문에 난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모부가 벌거벗은 몸으로 가랑이를 벌리고 누운 이모 위에서 엉덩이를 마구 흔들고 있었다.
자위도 모르던 나는 호기심에 숨 죽이고 계속 보았다.
“퍽억, 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맨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고 “으악, 학, 여보 더 세게, 아 좋아, 나 죽겠어, 아 미칠 것 같아, 어서” 이모가 이모부 엉덩이를 잡고 소리쳤다.
“퍽퍼퍽, 퍽퍽퍼거, 퍼억, 푸욱” 무언가 박히는 소리가 났고 이모는 도리질 치며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모부가 갑자기 엉덩이를 높이 들고 힘주어 누르며 “에잇, 으억, 푸---------욱!” 하며 깊이 찔렀다.
이모는 “여보, 어서, 아 나죽어, 더 깊이 넣어줘, 아학!” 하며 애원했고 나는 무엇을 깊이 넣어달라는 건지 몰랐다.
그 동작이 끝없이 반복되며 이모는 흐느끼고 비명 지르고 좋아 미치겠다고 외쳤고 나는 이모부가 이모를 괴롭히는 줄 알고 문잡았던 손을 놓고 계속 들여다보았다.
마침내 이모부가 얼굴을 이모 몸에 묻고 동작을 멈추자 이모가 “어머머 여보 뜨거워” 하며 머리를 매만졌고 “오늘따라 흥분 많이 됐네, 좋았어?” 하자 이모가 수건 주며 밀치고 이모부가 일어나 밑을 닦는데 이모의 그곳에서 하얀 물이 흘렀다.
돌아선 이모부의 물건은 야구방망이처럼 굵고 길게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고 이모가 정성껏 닦아주며 웃었다.
나는 소변도 잊고 방으로 돌아갔고 그 후로 그 광경이 머릿속에 박혀 남자의 그 물건이 무섭고 흉측하게 느껴졌다.
그게 섹스라는 걸 안 건 고2 때였고 좆이 보지에 들어가 하얀 정액을 싸면 임신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지만 그 굵은 것이 작은 구멍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여전히 무서운 숙제였다.
그래서 남자를 피하며 살았고 자위로 쾌감을 알게 되면서 이모의 몸부림 이유를 조금 이해했지만 여전히 남자 기피증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작년 여름 휴가철에 터졌다.
발단은 역시 술이었다.
이모가 울며 우리 집으로 피신 왔고 다음날 부모님이 피서 가시는데 이모부가 술주정하며 위협하자 어쩔 수 없이 이모를 데리고 가셨다.
나는 집에 혼자 남았고 그날 이모부가 찾아와 아빠와 이모의 불륜을 고백했다.
처녀도 아빠에게 줬다고 엄마가 먼저 알고 서둘러 시집보냈다고 이모부는 공장장이라 이혼도 못 한다고 한숨 쉬었다.
나는 불쌍한 이모부를 위로하며 복수하라고 농담처럼 말했고 이모부는 나를 빤히 보더니 “너를 먹으면 멋진 복수가 되겠지” 하며 소파에 눕히고 올라탔다.
저항했지만 억센 힘에 트레이닝바지와 팬티가 벗겨지고 그 무서운 좆이 보지 둔덕을 비볐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팔은 이모부 목을 감고 있었고 스스로 엉덩이를 들며 팬티를 벗겨주었다.
처녀를 빼앗기는 찢어지는 통증 속에서도 온몸에 황홀함이 퍼졌고 아프다면서도 더 해달라고 애원했다.
이모부는 복수라 웃으며 마구 찌르고 쑤시고 나는 아픔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며 다리를 감고 젖가슴을 내밀었다.
물이 질퍽거리며 쏟아지고 정액이 뜨겁게 안으로 들어오자 임신 걱정까지 했지만 생리 시기라 다행이라며 다시 넣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알몸으로 지내고 섹스를 멈추지 않았으며 나는 빨고 흔들고 정액까지 삼키며 이모부의 여자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남자들 무시하고 이모부만 생각하며 퇴근 시간에 차 타고 야외나 모텔로 가 뒤에서 박히고 차 안에서 펌프질하며 이모 몰래 계속 관계를 즐긴다.
아빠와 이모가 엄마 재울 때 떡치는 소리 들리면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집 나와 이모부에게 달려가 몸을 바친다.
이제 나는 요조숙녀가 아니라 탕녀가 된 걸까 아니면 그냥 욕망에 빠진 여자일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이 금단의 쾌락은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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