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보살의 산 공부
처녀 보살의 산 공부
아홉 살 무렵부터 시작된 그 고통은
이유 없이 머리를 쪼개듯 아파왔다.
정신과, 한의원, 용하다는 병원까지 백 곳이 넘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 “신이 들었다”는 말은 엄마 아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기가 점점 빨라졌다. 이틀에 한 번에서 하루에 한 번, 그러다 하루에 세네 번.
엄마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나를 무당 집으로 데려갔다.
신방 문을 열자마자 탱화 앞에 앉아 부채를 든 무당이 나를 향해 고함쳤다.
“이년아, 이렇게 올 것 빨리 안 오고 웬 늦장을 그리도 부렸냐?”
엄마가 무릎 꿇고 애원했다. “보살님, 우리 애 어떻게 하면 신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당은 차갑게 웃었다. “이제 늦었어. 신을 받아들여야 살아. 그렇지 않으면 네 명 다 죽지.”
그 한마디에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는 퇴마사를 찾아갔다.
어두운 방에서 퇴마사가 주술을 외우며 두 시간 넘게 땀을 흘렸다. 그러다 갑자기 쓰러졌다.
내 머리는 더 아파왔다. 고함 소리에 사람들이 달려와 불을 켰다. 퇴마사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겁에 질린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이건… 내가 못 이겨. 강한 신이 붙어 있어.”
그날 이후 온 가족이 교회를 떠났다. 교인들의 비아냥이 견딜 수 없었다.
아빠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의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엄마는 연로한 시부모님을 모시느라 더는 나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내림굿을 치르고 최영장군님을 모시게 되었다. 신어머니 밑에서 1년 만에 독립했다.
“아기 보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어머니는 내 몸에 붙은 신의 힘이 자신보다 월등하다며 더는 가르칠 게 없다고 했다.
독립 후 두 달. 하루에 다섯 분의 손님을 받았다. 하지만 신통력이 떨어졌다.
최영장군님의 계시가 내려왔다. 산으로 가서 산 공부를 하라는 지시였다.
열두 살 초여름. 아빠가 나를 따라 산으로 갔다. 최영장군님이 일러준 거대한 바위 동굴.
신당을 차리고 촛불과 향을 피우고 과일 떡을 올렸다.
아빠는 산 아래 차에서 조석으로 들러보기로 했다. 나는 신당에서 용맹정진을 시작했다.
그날 밤 최영장군님이 현몽하셨다.
“내일 처음 보는 남자에게 네 정조를 바쳐라.”
열두 살 어린 내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안 될까요?” 하고 물었다.
하지만 장군님은 단호했다. “정조를 지키는 한 신통력을 주지 않겠다. 처음 만난 남자에게 주지 않으면 그 남자에게 봉변을 당할 것이다.”
꿈에서 깬 나는 신당에 정화수를 올리고 백팔 배를 올렸다. 약속을 지키겠다고.
새벽 예불을 마치고 엎드려 쉬는데 멀리서 누군가 올라왔다.
아빠였다.
멀리서 오실 때는 평소의 인자한 아빠 얼굴.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눈빛이 변했다. 끈적끈적하고 야수 같은 눈빛.
아빠는 말없이 나를 눕히고 포개졌다.
무복의 옷고름을 풀고 치마와 고쟁이를 벗기고 알몸으로 만들었다.
아빠의 몸이 내 몸을 덮쳤다. 처음엔 통증이 왔다. 열다섯 분 정도.
그리고… 야릇한 기분이 밀려왔다. 신음이 새어 나왔다. 흥분이 몸을 휘감았다.
아빠는 내가 아빠의 딸이라는 걸 잊은 듯했다. 귀신의 눈빛으로 분탕질을 쳤다.
뜨거운 것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아빠가 정신을 차리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아니… 네가 어찌… 너를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아빠를 다독였다.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최영장군님의 계시예요.”
그날 밤 장군님이 다시 현몽하셨다.
“산 공부 동안 관계를 한 사람을 낭군으로 모셔라. 하루에 한 번 이상 낭군의 정기를 받아라.”
나는 울면서 애원했다. “죄악인데… 하루에 한 번씩 죄를 더할 수 없어요.”
하지만 장군님은 “업을 물리치면 또 다른 업이 생긴다. 업을 받아들이면 현세에서 씻을 수 있다.” 하시고 사라지셨다.
그 후 아빠는 매일 귀신의 눈빛으로 나를 덮쳤다. 뜨거운 것을 뿌리고 후회에 젖었다.
나는 점점 쾌락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아빠를 먼저 유혹하는 날도 생겼다.
아빠의 것을 내 몸에 넣고 내가 위에 올라타 분탕질을 치며 신당을 향해 합장하고 기도를 했다.
“아빠… 더… 더 깊이… 장군님… 소녀를 거두어 주세요…”
보름 만에 신통력이 돌아왔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굿이 일주일에 한 번꼴로 들어왔다.
하산 후 집 신당에만 있으면 쾌락이 사라졌다. 아빠도 다시 평소의 아빠로 돌아왔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산에 오르면 생리가 멈췄다. 아빠의 뜨거운 것을 양껏 받아들여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열두 살에 첫 생리를 했는데 산 공부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빠와 하루에도 몇 번씩 관계를 해도 단 한 번의 임신도 없었다.
좋기도 하지만 불만이기도 했다.
나는 아빠를 딸이 아닌 여자로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신당에서 조석으로 기도한다.
“최영장군님… 저에게 아빠의 아기를 낳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 아이가 장군님의 전지에 의한 아이임을 증명해 주시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기 보살이 비나이다.”
아직 장군님의 계시가 없다. 하지만 나는 기다린다. 내 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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