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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옥상 시은이와의 밤

토토군 0 1243 0 2026.01.30

도서관 옥상 시은이와의 밤


​중앙도서관 옥상 벤치에 앉아 

서울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휘황찬란한 불빛이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그저 지친 눈에 스치는 빛일 뿐이었다.

며칠째 소연이에게 끌려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었다. 책상 위엔 미처 읽지 못한 소설과 미술 서적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12년간 머리만 굴리며 여기까지 왔으니 최소 1학년 때만큼은 넓은 세상을 몸으로 부딪쳐보고 싶었다.

하지만 소연이는 대학 진학을 위한 삶에 너무 익숙해져 습관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소연이 때문에 시험공부에 앉아 있는 건 내 신념에 대한 배반 같았다. 궁여지책으로 또다시 머리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친 뇌에 산소를 공급하려 옥상으로 나온 지 30분쯤 됐을까. 코앞에 소리 없이 나타난 시은이가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깜짝이야.”

“놀랐어?”

시은이는 헤벌쭉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몇 번 술자리에서 만났어도 항상 새침하고 도도해 보였던 시은이. 날카로운 말투와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얼굴 들이밀어서 놀란 것보다 그게 너라는 게 더 놀랍다.”

“무슨 의미야?”

“그냥… 넌 이런 장난 안 칠 거 같았거든.”

“그렇긴 해.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도 아까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어. 잠깐 미쳤었나 봐.”

“친구 남자친구라고 만만해 보여서 그런 거 아냐?”

“그런가? 근데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흘러가는 청춘에 사죄하고 있었지.”

“무슨 소리야?”

“헛소리.”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까 하다 소연이 귀에 들어갈까 봐 멈칫했다. 그저 멋쩍게 웃으며 넘겼다.

“싱겁긴…….”

“넌 왜 나왔어?”

“머리 좀 식히려고.”

“공부 열심히 했나 보구나.”

“그렇지도 않아. 오랜만에 공부하니까 조금만 해도 힘들어서 그래.”

“고등학교 때는 정말 공부 많이 했는데…… 그치? 수능 끝난 지 반년도 채 안 됐는데 벌써 습관이 사라지고 몇 시간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으니 사람이란 참 영악하면서도 어리석은 동물인 거 같아.”

“인류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지.”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겠고?”

“그건 아니야.”

“그런가…….”

나는 웃으며 던진 농담에 시은이는 정색하며 답했다. 역시 시은이에게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은이는 까르르 웃었다.

“장난이었어. 너 진짜 내가 되게 어려운가 보다. 장난을 못 치겠어.”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조금 속상하다. 난 네가 편한데 넌 날 불편해하니까.”

“아냐. 절대 그런 거 아냐. 나도 네가 편해.”

“치, 이제 와서 그래봤자 이미 늦었네요.”

시은이는 놀리듯 혀를 내밀었다가 집어넣었다. 정말 시은이는 나를 편하게 느끼는 듯했다. 항상 새침한 모습만 봤는데 지금은 장난기 많고 푼수 같은 얼굴이었다. 어색함을 연출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빨리 시험 끝났으면 좋겠다.”

“시험 끝나면 뭐 하려고? 소연이랑 데이트하게?”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빨리 시험이 끝났으면 좋겠어. 지금 이 순간이 싫어.”

“이렇게 나랑 같이 있는 게 싫어? 나 내려갈까?”

“아니야. 근래 들어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아. 널 만나기 전까지가 정말 싫었다는 거야.”

“거짓말. 소연이랑 단둘이 있을 때가 더 좋으면서…….”

“소연이랑 단둘이 있을 때는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뿐인데 뭐가 좋겠어?”

“진심이야? 소연이한테 이른다?”

“그 말이 또 소연이가 싫다는 말은 아니잖아. 소연이는 정말 좋은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싫다는 거지.”

“그게 그 말이지. 소연이가 널 책상 앞에 묶어두고 있는 거니까.”

나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시은이가 소연이에게 말하면 소연이는 진심으로 받아들이진 않겠지만 날 부려먹을 약점으로 삼을 게 뻔했다. 그런 피곤한 상황은 애초에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소연이한테는 암말도 말아줘. 응?”

“생각해볼게.”

“꼭 긍정적으로 생각해줘.”

“그래도 넌 좋겠다. 시험 끝나면 소연이랑 실컷 놀 거 아냐. 난 시험 끝나도 같이 놀 사람도 없고…….”

“왜 없어? 우리가 있잖아.”

“너희랑 남자친구랑 같니?”

“너도 남자친구 사귀면 되잖아. 너 정도면 남자들이 엄청 쫓아다닐 거 같은데…….”

실제로 시은이는 인기가 없었다. 아니, 인기가 없다고 하기보다는 남자들이 지레 겁먹고 접근을 못한다고 해야 맞았다. 우리 동기 현준이도 시은이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용기가 없어 마음을 접었다. 이런 케이스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셋이었다.

“누구? 누가 나 쫓아다녀? 나도 좀 알자. 가르쳐줘.”

“없어? 그럼 내가 쫓아다녀줄까?”

“이거 위험한 발언인데? 소연이가 들으면 뭐라고 하려나…….”

“야, 당연히 농담이지.”

“난 진담인 줄 알았지.”

시은이가 눈웃음을 치며 날 바라보는데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시은이가 늘 이런 표정을 짓는다면 정말 남자들이 줄을 설 거 같았다.

“농! 담! 이! 거! 든!”

“뭘 그까짓 걸로 정색을 하고 그래?”

“됐고, 외로우면 소개팅 시켜 줄까?”

“나도 됐고, 심심하면 내가 자주 옥상 올라와줄까?”

“여기? 와준다면 좋지. 혼자 서울 야경 쳐다보고 있는 것도 지겨워지고 있었으니까.”

“그럼 올라올 때 문자해. 쉬고 싶은 타이밍이면 올라와줄게.”

“그래. 대신 커피는 내가 무한제공 해줄게.”

“난 커피 안 마시니까 생과일주스로 준비해줘.”

“6시면 여기 카페 닫잖아. 그냥 자판기에 있는 거 마셔.”

“싫어. 그럼 안 먹을래.”

“좋아. 그럼 지하 편의점에 있는 걸로 말해. 거기까진 내가 갔다 와줄게.”

“그럼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 키위나 딸기로…….”

“너 변비 있어?”

“넌 애 낳을 때만 미역국 먹어?”

“변비 없구나.”

시은이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내려갈 거야?”

“응. 가자.”

내려가 보니 소연이는 공부에 빠져 있었다. 내가 옆에 앉든 말든 오로지 책과 노트에만 시선이 가 있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나의 생활은 반복되었다. 달라진 건 읽는 책 하나뿐이었다. 시험이 코앞에 닥쳐서는 소설 대신 시험공부에만 몰두했다. 소연이 옆에 앉아 책을 보다가 지겨우면 옥상으로 올라가 시은이를 불러 수다 떨며 놀고 다시 들어가 공부하는 패턴.

고마운 건 내가 부를 때마다 시은이가 재깍재깍 나와줬다는 것이다. 시은이마저 없었다면 긴 시험기간을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다.

매일 만나 얘기하고 놀다 보니 시은이와 꽤 가까워졌다. 소연이보다 시은이가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진정한 베프가 된 셈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마냥 기분 좋은 일들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시험이 끝난 날부터 지연이 누나와 싸웠다.

지연이 누나는 시험기간 내내 날 못 봤으니 주말을 둘이서만 보내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주말 내내 같이 보낸다는 건 밤을 함께 하자는 말이었고 우리의 사랑을 완성할 기회였다.

하지만 동기 엠티가 그때 잡혀 있었다. 오래 전부터 소연이와 약속했던 거라 어길 수 없었다.

지연이 누나는 그런 것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시험 끝나서까지 소연이와 함께 있겠다는 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사실 시험기간에 소연이에게 붙들려 있었지만 은근히 자유로웠다. 지연이 누나만 원한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그랬다면 시은이와 베프가 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연이 누나도 소연이와 비슷한 부류였다. 날 만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문자를 보내면 항상 공부 중이라는 짧은 답장뿐이었다.

결국 지연이 누나와의 다툼은 진행 중인 상태로 두고 청량리로 훌쩍 떠났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엠티를 열심히 즐기고 돌아와서 생각하기로 했다.

청량리 마트 앞에서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소연이는 학생회 활동으로 분주했다. 나는 시은이와 담소를 나누며 출발을 기다렸다.

과대가 조를 발표했다.

“3조. 김정호, 김가희, 박수철, 이승훈, 정윤호, 차시은, 최희진”

의외였다. 내 이름이 있는데 소연이 이름이 없었다. 소연이를 찾으니 소연이는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뉘앙스였다.

“소연이가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 우리 조 애들이나 모아서 얘기해보자.”

시은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펜션에 도착해 방 배정하고 짐을 풀었다. 작은 방 두 개와 욕실 하나, 주방이 딸린 거실. 생각보다 작았지만 깔끔했다.

점심은 즉석요리로 해결했다. 저녁은 고기 파티라 안주는 날것 위주로 샀다.

게임이 시작됐다. 첫 번째는 ‘몸으로 말해요’. 소소한 웃음이 터졌다.

두 번째, 세 번째는 커플 게임. 과대가 선배들에게 잘못 배워온 듯했다. 굳이 동기들끼리 살을 부비며 친해질 필요가 있을까.

나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연이가 지철이와 함께 나갔다.

소연이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지철이는 아니었다. 신경이 쓰였다.

팔굽혀펴기 게임. 지철이와 영식만 남았다. 둘 다 포기하지 않았다. 지철이의 땀이 소연이 볼에 떨어졌다. 불결했다.

영식이가 쓰러지며 끝났지만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소연이는 이겼다는 듯 지철이 팔을 주물러줬다.

기분이 확 상했다.

저녁까지 이어진 음주. 시은이는 내 옆에 붙어 있었고 소연이 옆엔 지철이가 붙어 있었다.

소연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마당 끝으로 나오라는 내용.

소연이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볼이 발그스름했다.

“술 많이 마셨어?”

“응. 조금, 아니 많이.”

“이제 그만 마셔.”

“쪼끔만 더 마실게.”

“그래. 오늘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근데 너…… 시은이랑 계속 붙어있더라?”

“시은이 말고는 친한 사람이 없으니까. 재훈이도 안 왔고, 나랑 제일 친한 소연이란 애는 아는 체 하지 말래서 놀 사람이 시은이밖에 없어.”

“치, 그래도 다른 애들이랑 놀면 되잖아.”

“너도 지철이랑만 놀았잖아. 커플게임까지 같이 나오고.”

“그거야 네가 시은이랑 그러고 있어서 홧김에 그런 거지.”

소연이의 투정이 귀여웠다. 나를 까맣게 잊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나는 소연이를 끌어안았다.

“우리 소연이 질투 났구나? 질투할 필요 없어. 시은이는 그냥 친구야. 저스트 프렌드!”

소연이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 솔직히 네가 시은이랑 붙어 있는 거 싫어. 시은이 너무 예쁘잖아.”

“시은이가 뭐가 예뻐? 내 눈엔 네가 젤 예뻐. 아니, 너 말고는 예쁜 사람이 없어. 너랑 상대가 안 되는데 뭘 신경 쓰고 그래.”

“정말?”

“당연하지. 나한텐 우리 소연이밖에 없어. 이리 와봐.”

소연이의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몸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붙었다.

나는 소연이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렇게 예쁜 널 두고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마음이 갈 리가 있겠니? 정말 시은이는 친구일 뿐이야. 그래도 네가 싫다면 시은이 안 만날게.”

“그럴 수 있어?”

“물론이지. 만나지 말까?”

소연이는 미소 지었다.

“됐어. 그냥 친구라는데 내가 어떻게 만나라, 만나지 마라 해. 대신 언제나 시은이보다는 내가 우선이야. 알았지?”

“약속해. 시은이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네가 우선이야.”

나는 소연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누가 나오면 어떡해?”

“뭐 어때. 사랑하는 사람끼리 키스하는 걸 누가 뭐라 그래?”

소연이의 머리를 잡고 입술을 덮쳤다.

깊고 진한 키스. 소연이의 혀가 적극적으로 내 혀를 받아들였다.

오늘은 진도를 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소연이는 사람들 눈을 의식할 테니까.

입을 떼며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느끼하게 쳐다봐?”

“우리 저기 강둑 가볼래?”

“갈 수 있어?”

“저기 옆에 가는 길 있어. 가자.”

비탈길로 내려갔다. 내가 먼저 내려 소연이 손을 잡고 이끌었다.

강둑에 내려서자 소연이가 발을 헛디뎌 내게 안겼다. 나비가 날아와 안기는 듯한 아름다운 움직임이었다.

소연이를 뒤에서 안은 형상이 됐다. 가벼운 몸놀림에 비해 나는 어정쩡하게 움직이며 한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괜찮아?”

“응. 너 없었으면 강물로 뛰어들 뻔 했어.”

“안 다쳐서 다행이다.”

“근데 손은 언제까지 거기 둘 거야?”

“어? 어……. 놀라서 손이 붙어 버렸나 봐. 안 떨어져.”

소연이는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나는 더 세게 끌어안으며 가슴을 놓지 않았다.

소연이의 가슴은 생각보다 컸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빨리 떼.”

“이러고 잠깐만 더 있음 안 돼? 이렇게 있으니까 마음이 따뜻해져.”

“말도 안 돼.”

“진짜야. 근데 너 아까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가브리엘 앤워 같았어.”

“됐어. 이제 그만 놔.”

소연이는 뒤돌아 비탈길로 올라갔다. 나는 뒤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소연이는 오붓한 시간을 보냈으니 들어가서는 각자 동기들과 놀자고 했다. 시은이랑 너무 붙어 있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소연이는 학생회 애들 술자리로 향했고 나는 시은이를 찾아갔다.

“너 소연이가 그렇게 좋아?”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아까 소연이 때문에 그런 거였잖아.”

“소연이도 너처럼 눈치가 빠르면 얼마나 좋을까. 얘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 같아.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가……. 차라리 너랑 사귀었으면 더 잘 맞았을 거 같기도 하다.”

“누구 맘대로? 네 맘대로 사귀냐? 내가 눈이 얼마나 높은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소연이가 백배 좋거든!”

시은이 얼굴에 그늘이 스쳤다. 비교당해서 기분이 상했나 보다.

“내가 더 좋은 게 이상한 거지. 너 아니라도 나 좋다는 사람 많아.”

나는 조용히 웅얼거렸다.

“언제는 없다더니…….”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어.”

“내 욕 했지?”

“바로 앞에 두고 무슨 욕을 하니? 욕은 뒤에서 해야지.”

“진심인 거 같은데? 뒤에서 내 욕 무지 하나봐?”

“당연하지. 너같이 도도한 아가씨랑 친구해줬으니까 그 정도는 해도 되는 거 아냐?”

“내가 뭐가 도도해? 그랬으면 너 같은 애랑 친구 했겠어?”

“그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도도한 건 사실이잖아. 남자애들이 너랑 친해지고 싶은데 다가가기 힘들다고 난리야.”

“그거야…… 내가 안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선을 그으니까.”

“그럼 난 선택받은 거야? 이거 좋아해야 되는 건가.”

“당연하지. 넌 신의 축복을 받은 거야. 나같이 예쁜 애랑 친구니까.”

“네 입으로 그런 소리하면 안 민망하니?”

“너니까…….”

나라서 괜찮다는 건가. 우리는 진정한 베프인 듯했다.

“외로우면 소개팅 시켜 줄까?”

“나도 됐고, 심심하면 내가 자주 옥상 올라와줄까?”

“여기? 와준다면 좋지. 혼자 서울 야경 쳐다보고 있는 것도 지겨워지고 있었으니까.”

“그럼 올라올 때 문자해. 쉬고 싶은 타이밍이면 올라와줄게.”

“그래. 대신 커피는 내가 무한제공 해줄게.”

“난 커피 안 마시니까 생과일주스로 준비해줘.”

“6시면 여기 카페 닫잖아. 그냥 자판기에 있는 거 마셔.”

“싫어. 그럼 안 먹을래.”

“좋아. 그럼 지하 편의점에 있는 걸로 말해. 거기까진 내가 갔다 와줄게.”

“그럼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 키위나 딸기로…….”

“너 변비 있어?”

“넌 애 낳을 때만 미역국 먹어?”

“변비 없구나.”

시은이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내려갈 거야?”

“응. 가자.”

내려가 보니 소연이는 공부에 빠져 있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나의 생활은 반복되었다. 달라진 건 읽는 책 하나뿐이었다.

소연이 옆에 앉아 책을 보다가 지겨우면 옥상으로 올라가 시은이를 불러 수다 떨며 놀고 다시 들어가 공부하는 패턴.

고마운 건 내가 부를 때마다 시은이가 재깍재깍 나와줬다는 것이다.

매일 만나 얘기하고 놀다 보니 시은이와 꽤 가까워졌다. 소연이보다 시은이가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진정한 베프가 된 셈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마냥 기분 좋은 일들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시험이 끝난 날부터 지연이 누나와 싸웠다.

지연이 누나는 시험기간 내내 날 못 봤으니 주말을 둘이서만 보내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동기 엠티가 그때 잡혀 있었다. 오래 전부터 소연이와 약속했던 거라 어길 수 없었다.

결국 지연이 누나와의 다툼은 진행 중인 상태로 두고 청량리로 훌쩍 떠났다.

청량리 마트 앞에서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소연이는 학생회 활동으로 분주했다. 나는 시은이와 담소를 나누며 출발을 기다렸다.

과대가 조를 발표했다.

“3조. 김정호, 김가희, 박수철, 이승훈, 정윤호, 차시은, 최희진”

소연이 이름이 없었다. 소연이는 날 보며 미소 지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펜션 도착. 방 배정하고 짐 풀었다. 점심은 즉석요리. 저녁은 고기 파티.

게임이 시작됐다. ‘몸으로 말해요’. 소소한 웃음.

커플 게임. 지철이와 소연이가 함께 나갔다.

지철이의 땀이 소연이 볼에 떨어졌다. 불결했다.

영식이가 쓰러지며 끝났지만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소연이는 지철이 팔을 주물러줬다.

기분이 확 상했다.

저녁까지 이어진 음주. 시은이는 내 옆에 붙어 있었고 소연이 옆엔 지철이가 붙어 있었다.

소연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마당 끝으로 나오라는 내용.

소연이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볼이 발그스름했다.

“술 많이 마셨어?”

“응. 조금, 아니 많이.”

“이제 그만 마셔.”

“쪼끔만 더 마실게.”

“그래. 오늘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근데 너…… 시은이랑 계속 붙어있더라?”

“시은이 말고는 친한 사람이 없으니까.”

“치, 그래도 다른 애들이랑 놀면 되잖아.”

“너도 지철이랑만 놀았잖아.”

“그거야 네가 시은이랑 그러고 있어서 홧김에 그런 거지.”

소연이의 투정이 귀여웠다.

나는 소연이를 끌어안았다.

“우리 소연이 질투 났구나? 시은이는 그냥 친구야.”

“나 솔직히 네가 시은이랑 붙어 있는 거 싫어.”

“시은이가 뭐가 예뻐? 내 눈엔 네가 젤 예뻐.”

소연이를 끌어당겨 키스했다. 깊고 진한 키스.

“우리 저기 강둑 가볼래?”

비탈길로 내려갔다. 소연이가 발을 헛디뎌 내게 안겼다.

소연이를 뒤에서 안았다. 가슴을 움켜쥐었다.

“빨리 떼.”

“조금만 더 있음 안 돼?”

소연이는 올라갔다. 나는 뒤따랐다.

소연이는 들어가서는 각자 놀자고 했다. 시은이랑 너무 붙어 있지 말라는 당부도.

나는 시은이를 찾아갔다.

“빨리 시험 끝났으면 좋겠다.”

“시험 끝나면 소연이랑 실컷 놀 거 아냐.”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아. 널 만나기 전까지가 싫었다는 거야.”

“거짓말.”

“진심이야.”

“외로우면 소개팅 시켜 줄까?”

“심심하면 내가 자주 옥상 올라와줄까?”

“와준다면 좋지.”

“올라올 때 문자해.”

“커피는 내가 무한제공 해줄게.”

“생과일주스로 준비해줘.”

“요구르트 마실래?”

“싫어.”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 키위나 딸기로…….”

“변비 있어?”

“넌 애 낳을 때만 미역국 먹어?”

시은이는 웃으며 일어났다.

“안 내려갈 거야?”

“응. 가자.”

소연이는 공부에 빠져 있었다.

시험 끝날 때까지 나의 생활은 반복되었다.

시은이와 매일 만나 수다 떨며 놀았다. 진정한 베프가 됐다.

시험이 끝난 날 지연이 누나와 싸웠다.

엠티 때문에 청량리로 떠났다.

펜션에서 게임. 커플 게임에서 소연이와 지철이가 함께했다.

기분이 상했다.

소연이가 마당 끝으로 불렀다. 키스했다.

강둑으로 내려갔다. 소연이가 안겼다. 가슴을 만졌다.

“빨리 떼.”

키스를 더 깊게 했다. 손을 티셔츠 안으로 넣었다. 브래지어 안으로도 넣었다. 소연이는 제지하지 않았다.

소연이의 작은 젖꼭지가 단단해졌다. 사랑스러웠다.

손을 더 아래로 내렸다. 아랫배를 지나 바지 속으로 들어갔다. 팬티 위로 보지털을 느꼈다.

소연이 다리를 오므렸다. 가운데 손가락 하나로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소연이가 손을 잡아 뺐다.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자.”

“키스 한 번만 더 하고 가자.”

소연이는 올라갔다.

나는 시은이를 찾아갔다.

엠티는 계속됐다. 술자리에서 시은이는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소연이와 지철이도 붙어 있었다.

그날 밤 소연이와의 키스와 시은이와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험 끝난 자유가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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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옥상, 시은이와의 우정, 소연이와의 질투, 강둑 키스, 가슴 만지기, 엠티 커플 게임, 지철이의 접근, 20대 청춘, 삼각관계의 시작, 첫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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