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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마지막 리허설

토토군 0 1077 0 2026.02.16

무대 위의 마지막 리허설


​며칠이 무료하게 지났다. 

창밖엔 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화사한 개나리꽃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아름답다. 시샘 난다. 나도 한때 저런 아름다움이 있었는데.

내 나이 마흔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 엄마에게 혼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흔이다.

세월의 속도는 어느새 날 이곳까지 떠밀고 왔다.

거실 창을 통해서 봄날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밀려들어온다.

이런 날 이렇게 집안에만 틀어앉아 있는 내가 처량해 보인다.

한적한 교외로 나가 드라이브라도 하고 싶다.

배가 고프다… 뭘 먹지… 귀찮아진다…

혼자 살면서 매일 매일 식사를 만들어 먹는다는 것처럼 귀찮은 일이 또 있을까.

시켜 먹어야겠다.

음식점들에서 보내온 메뉴판을 들쳐 보았다.

한식을 먹을까… 중식을 먹을까… 아님 양식… 그래 간편하게 돈까스를 먹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배달 오는 아르바이트 학생도 깔끔하고 점잖아 보였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주의할 수밖에 없다.

문을 열어두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세수도 안 했다.

거울에 가만히 얼굴을 들이밀고 바라보았다.

후후… 세월은 감출 수 없나 보다.

어느새 눈가에 잔주름들이 여러 줄 늘어서 있다.

그래… 그래도 이 정도 주름밖에 없다는 것도 큰 복이지…

밖에 나가면 아직도 서른대 초반으로 보이나 보다…

머리에 목욕 타월을 두르고 세안을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문 열렸어요… 들어와요…”

“배달 왔습니다…”

“네 잠깐만요… 금방 끝나니까 주방에 갔다가 놓아 주실래요?”

“네…”

잘생긴 총각이다. 깔끔한 옷차림과 단정한 머리 모양새가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가끔 느끼지만 편한 인상이다.

“저… 저… 있죠… 올려놓았거든요… 음식값은 나중에 그릇 가지러 올 때 받아갈까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앳된 목소리다.

“아… 잠깐요… 다 했어요… 그냥 드릴게요…”

순간 돌아서면서 세면대 위에 놓인 양치용 컵을 건드렸다.

컵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예리한 유리 파편들이 욕실 바닥으로 흩어진다.

“어머~! 앗…”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사방이 유리 파편으로 널려 있었다.

“괜찮으세요?”

밖에서 배달 온 총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네… 그런데 어떡하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다.

“저 잠깐만 좀 도와줄래요? 문 좀 열어 줄래요? 유리 파편 때문에 발을 뗄 수가 없어서 그러거든요.”

“네…”

문이 열렸다. 놀란 표정의 총각과 눈이 마주쳤다.

“저 주방 옆에 청소기가 있거든요 좀 가져다 주실래요?”

총각 역시 당황했나 보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청소기를 갖고 와서 바닥의 유리 파편을 빨아들였다. 능숙한 솜씨다.

“다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조심하세요… 혹 어디 보이지 않는 파편이 있는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첫 발을 내디딘 곳이 따끔거렸다.

“아얏~!”

금세 발바닥 주위가 붉은 피로 젖어갔다.

“아야… 어떻게… 난 몰라…”

왠지 모르겠다. 피를 보자 겁이 덜컥 났다. 순간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야야 아… 아파… 흑…”

“아이구 조심하시지 않고… 잠깐만요 그대로 계세요…”

주저 없이 총각이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날 번쩍 안아 올렸다.

세상에 내가 그렇게 가벼웠나.

전혀 힘 하나 안 들이고 안아 올린 것 같았다.

젊은 남성의 체취가 확 풍겨온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그런 땀 냄새 같기도 하다.

“잠깐요… 제가 봐드릴게요.”

발바닥 중앙 부분이 예리한 유리 조각에 베인 것 같았다.

흐르는 피가 무서워서 바라볼 수 없었다.

“작은 유리 파편이에요. 그런데 좀 깊게 베이셨네요… 혹시 약 없어요? 붕대라도.”

“저기 거실장 안… 아니 그쪽 말고 오른쪽에요…”

핀셋으로 유리 파편을 떼어내고 약을 바른 다음 붕대로 정성스럽게 감아준다.

자상한 손길이다. 훗날 결혼을 하면 아내에게 자상한 남편이 될 것 같다.

“자 되었어요… 전 욕실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올게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청한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희 누님 같으신데요 뭐…”

“누나가 몇 살인데요?”

“네… 큰 누님이 27이거든요…”

“하하하… 그럼 내가 그 누나하고 비슷해 보여요?”

“네… 몇 살 더 드신 것 같지만…”

당황했나 보다. 말꼬리를 흐리면서 얼굴이 빨개진다.

“하하… 전 아마 댁 어머니 정도의 나이일 거예요.”

놀라는 표정이다.

“설마요 저희 어머니는 47인데요…”

“후후… 저도 그래요 올해 마흔이에요…”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괜찮아요… 오히려 칭찬으로 들려서 좋네요…”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꾸벅 숙여서 사과를 한다. 순진하다. 때가 묻지 않았다.

욕실에서 유리 파편을 씻어내고 있나 보다.

흠뻑 물에 젖은 모습으로 욕실에서 나온다. 고맙다…

“잠깐만요… 음식값 드릴게요…”

“말씀 낮추세요. 존대말을 들으니까 죄송스럽네요…”

“하하하… 그럴까? 하지만 어떻게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놓아요… 그것도 옳지 않은 일이에요…”

일어서는 순간 발바닥이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아야~!”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저런 어떡하죠… 작은 유리 파편이 남아 있었나 봐요…”

다시 능숙한 손길이 다리를 주무른다.

손가락으로 상처 부위를 누를 때마다 꾹꾹 찔리는 감촉이 아프다.

“아야야 아파… 살살해요…”

“죄송해요…”

총각의 얼굴에 땀이 배어 나온다.

“어떡하죠 보이지 않는데… 잠깐만요…”

순간 내 발을 들어 올리더니 상처 부위를 덥석 베어문다.

헉… 짜르르하니 간지러운 자극이 발바닥에서 피어오른다.

“어머… 어머… 어떻게 더러운데… 그곳을 입으로…”

부끄러움에 나 역시 얼굴이 달아온다.

“아뇨 이렇게 해야 찾을 수 있어요. 잠깐만요… 전 괜찮아요…”

아주 작은 유리 조각인가 보다. 입술로 강하게 빨아당기다가 나오지 않으니까 혓바닥을 이용해서 상처 부위를 더듬어 왔다.

상처 부위를 부드러운 혀가 더듬어 갈 때마다 묘한 자극이 강하게 느껴온다.

간지러운 것도 아니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자극이었다.

움찔움찔 그의 혀 놀림에 따라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려온다.

“가만 계세요 그렇게 움직이시니까 잘 찾아지지가 않아요…”

그의 입가가 미끌거리는 침으로 젖어 있다.

“네… 하지만…”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설명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다시 자극이 전해진다. 다리가 다시 들썩거린다.

그의 손이 종아리를 부드럽게 잡아온다.

이런… 이 느낌은…

그의 손길에서 난 야릇한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따끔거리는 유리 조각의 감각마저도 흥분의 유희로 다가온다.

얼굴이 아까보다도 더 달아오르고 있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아… 그의 혀가 주는 감촉이 발바닥에서부터 커다란 자극으로 종아리를 타고 거침없이 올라와 깊숙한 그곳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으으음…”

나도 모르게 묘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르르 다리가 떨려온다.

다시 종아리를 잡아오는 그의 손길이 느껴진다.

“아… 헉…”

이번엔 입 밖으로 아까보다 더 큰 신음 소리가 흘러나갔다.

세상에… 지금 난 그의 입술에서 흥분을 하고 있었다.

성적인 욕구가 강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린 그의 손길을 애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쳤지… 미쳤어… 어린 아이에게서 이게 무슨 추태람…

마음과 의지는 서로 날 강하게 시험하고 있었다.

갈등이다. 입이 바짝 타오른다. 또 다른 자극이 밀려온다.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도 다시 그의 느낌이 발바닥에 전해오면 주체할 수 없도록 커다란 흥분감이 피어 오른다.

다시 신음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소파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그 움직임에 놀라 잠시 그의 입술이 멈춘다.

느꼈으리라. 그 역시 느꼈으리라. 나이든 여자의 추함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당황스러웠다. 창피스러웠다.

젊은 학생의 입술에서 이렇게 쉽게 흥분을 하고 마는 내 자신이 너무도 얄미웠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저… 저…”

그 역시 흥분에 젖어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가 주저주저 하면서 뭐라 말을 하려고 한다.

순간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달아오른 눈길에 뜨거움이 강하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의 뜨거운 눈길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아니 내 자신의 감정이 미웠다.

울컥 울음이 솟아 나온다.

“흑… 흐흑…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미쳤나 봐요…”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당황한 그가 일어선다. 순간 그가 내 몸 위로 쓰러져 온다.

그리고 강하게 날 끌어안는다.

“아… 아주머니… 미안해요… 저 역시… 참을 수가…”

뜨거운 숨결이 강하게 밀쳐온다. 엄청난 강한 힘이다. 그의 품에서 이대로 바스러질 것 같았다.

그의 체취가 가득 밀려온다. 또 다른 기대감으로 강한 흥분이 온몸을 휘감아 돈다.

내 두 팔이 나도 모르게 그의 몸을 끌어안는다.

탄탄한 젊음이 그 팔을 타고 전해온다.

그의 젊음이 세세한 느낌을 갖고서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순간 겁이 났다. 아… 이래선 안 되는데…

내 몸을 떠나 허공을 맴돌던 정신이 한순간에 내 몸 안으로 밀치고 들어오면서 육체의 갈망과는 다르게 강하게 그를 밀쳐낸다.

“안 돼… 안… 안 돼… 학생… 난… 나이 많은 아줌마예요…”

내 힘에 그가 밀려 바닥으로 덜컥 떨어져 내린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러간다.

“미안해요… 학생 난… 난…”

뭐라 설명할 수 없다.

순간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죄송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그가 그대로 밖으로 달려 나간다.

아… 이런 이게 무슨 낭패람…

내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욕실로 들어갔다.

잘 정돈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총각의 자상한 손길이 한눈에 느껴져 온다.

거울에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있다.

아… 그렇게 내가 외로웠나… 이렇게 쉽게 남자의 손길에 허물어질 나이인가…

한심하다…

차가운 물을 틀었다… 서글프다.

차가운 물에 두 손을 담가본다… 시원함과 함께 흥분된 감정들이 하나둘 찬물에 녹아들어간다.

두 손으로 가득 떠서 얼굴에 적셨다… 허전함이 밀려온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본다… 물에 젖은 얼굴이 날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말한다… 세희야 너 어떻게 이렇게 되었니.

그대로 물속에 얼굴을 담근다…

가슴속이 훅 하니 구멍이 뚫린 것 같다.

거실에 그 총각이 놓고 간 배달함이 놓여 있었다.

주위에 약통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아… 내가 죄를 지었구나…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놓았다.

배달 그릇을 가져가라고 전화하면 그 학생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다.

그래… 그대로 두고 내일 전화하지…

거실 창을 통해 봄이 밀려들어와 있다.

창밖엔 봄의 그림자가 아직도 그대로 머물고 있다.

화사한 개나리꽃 역시 아까와 다름없이 제자리에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 지금은 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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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연극단, 마지막 리허설, 허무감과 불안, 사회적 편견, 관객 없는 무대, 순희 누나의 기억, 발바닥 유리상처, 총각의 자상한 손길, 혀로 빨아내기, 뜨거운 흥분, 갈등과 포기, 이름이 순희, 재회 같은 밤, 봄날의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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