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바람을 따라
축제의 바람을 따라
우리는 전국의 축제만 찾아다닌다.
전주 국제영화제, 고성 공룡나라 축제, 충북 음성 품바 축제, 경주 한국의 술과 떡 잔치, 제주 왕벚꽃 축제, 기장 멸치 축제, 담양 대나무 축제, 함평 나비 대축제, 밀양 아랑제, 김해 가락문화제, 고양 꽃 전시회, 영월 단종 문화제, 하동 화개장터 벚꽃 축제, 부산 광안리 어방 축제, 영암 왕인 문화제, 영덕 강구 대게 축제, 진해 군항제…
누군가는 “무슨 축제가 그렇게 많냐”고 묻겠지만, 놀라지 마시라. 위에 적은 것들은 3월에서 5월 사이에 열리는 축제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 좁은 땅에 어찌 이리도 수많은 축제가 피고 지는지, 우리 남매는 그 바람을 따라 철새처럼 떠돌며 살아간다.
나는 하나뿐인 혈육인 석희와 함께 전국을 전전하며 히파리, 바람잡이로 생계를 이어간다. 엄밀히 말하면 석희는 누나가 아니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내가 그녀보다 겨우 2분 늦게 태어났을 뿐이다. 불과 2분 차이로 누나와 동생이 갈린다는 것이, 아직도 가끔 억울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집안 형편이 남부럽지 않았다. 아빠는 월급쟁이였고 엄마는 살림을 맡았지만, 우리 가족은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빠가 공장 산재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엄마는 점점 집을 비우더니, 우리 남매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초봄, 결국 어떤 남자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우리는 시골 할머니 품으로 맡겨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고2 때, 우리는 완전히 남매 둘만 남게 되었다. 친척들의 도움은 미미했고,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두 남매가 먹고살기 턱없이 부족했다. 석희는 결단을 내렸다. “시골은 그만두고, 우리가 살던 도시로 나가자.”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친척집을 전전했지만 눈칫밥만 먹다가 결국 길거리로 내몰렸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우리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석희에게 술집 일을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녀는 “동생과 떨어질 수 없다”며 끝까지 거부했다.
우리는 나이트클럽 주변에서 손님을 유치하는 히파리를 시작했다. 밤마다 건물 옥상이나 계단 밑에서 잠을 자며 라면 한 끼로 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나이트클럽 기도가 석희를 범하려 했고,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구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 도시를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여름 해수욕장에서 다시 히파리를 시작했다. 피서객이 버리고 간 텐트와 코펠, 침낭을 주운 것은 행운이었다. 석희는 자전거 두 대를 사자고 했고, 우리는 고물값으로 자전거를 구해 텐트를 싣고 축제장을 따라 이동했다.
가을이 깊어지던 어느 추운 밤. 텐트 안은 살을 에는 듯 추웠다. 하나뿐인 침낭을 석희에게 주고 나는 맨땅에 누웠다. 새벽이 되자 몸이 덜덜 떨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석희가 나를 끌어당겼다.
“석진아… 들어와.”
좁은 침낭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살결, 은은한 향기가 나를 휘감았다. 몸이 달아올랐고,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에 손이 갔다. 석희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운 숨을 토하며 내 입술을 받아주었다.
그 밤, 우리는 남매의 선을 넘어섰다. 석희는 처녀의 피를 흘리며 나를 받아주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제 네 거야”라고 속삭였다. 추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그건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서로만이 유일한 온기라는 것을 확인한 눈물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남매가 아닌 연인처럼 살았다. 축제를 따라다니며 국밥집, 막걸리집, 떡집 앞에서 손님을 불러 모았다. 석희와 함께 호객을 하면 장사가 잘 되었다. 번 돈으로 따뜻한 여관방에서 밤을 보내며 서로의 몸을 탐했다. 아픈 첫날 밤 이후로 석희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나를 받아주었고, 우리는 축제의 밤마다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사람들이 알면 손가락질할 금기된 관계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우리 남매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 탓이냐고. 부모를 잃고, 친척들에게 버림받고, 먹고살기 위해 길거리로 내몰린 우리를, 누가 따뜻하게 안아주었냐고.
지금도 우리는 철새처럼 축제를 따라 떠돈다. 자전거에 텐트를 싣고, 석희와 손을 잡고 새로운 축제장을 향해 간다. 낮에는 호객을 하고, 밤에는 침낭이나 여관방에서 서로를 끌어안는다.
비록 세상이 우리를 욕할지라도, 우리는 서로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 좁은 땅에서 피고 지는 수많은 축제처럼, 우리 사랑도 바람을 따라 영원히 이어지길 바란다.
남매에서 연인으로, 축제 히파리, 철새 남매, 가난한 남매 사랑, 금단의 근친, 텐트 안 첫날밤, 전국 축제 유랑, 따뜻한 금기, 황혼이 아닌 청춘 근친, 서로만의 온기, 19금 유랑 로맨스, 피로 맺어진 사랑, 영원한 동반자, 숨겨진 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