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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 아래 깨진 유리와 젊은 혀

토토군 7 52 0 2026.05.25

봄 햇살 아래 깨진 유리와 젊은 혀


​도심의 아파트 안에서 며칠이 무료하게 흘러갔다. 

창밖에는 봄의 따스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화사한 개나리꽃이 길게 늘어서서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답다. 시샘이 난다. 나도 한때 저런 화사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내 나이 사십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했지만 세월은 이미 깊이 새겨져 있었다.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 엄마에게 혼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세월의 거센 물결이 나를 이곳까지 떠밀어 온 것이다.

거실 창문을 통해 봄날 오후의 포근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부드럽게 밀려 들어왔다. 이런 화창한 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내가 처량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적한 교외로 드라이브라도 떠나고 싶었지만 몸이 무거웠다. 배가 고파왔다. 뭘 먹어야 할지 고민되면서도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혼자 살면서 매일 매일 식사를 준비해서 먹는 일이 이토록 힘들고 번거로울 줄이야. 결국 배달을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메뉴판을 들춰보다가 간편하게 돈까스를 주문했다. 배달 오는 아르바이트 학생은 늘 깔끔하고 점잖아 보였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 여러모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어둔 채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세수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후후. 세월은 결국 감출 수 없는 모양이다. 어느새 눈가에 잔주름이 여러 줄 새겨져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주름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밖에 나가면 아직도 삼십대 초반으로 보인다는 말도 들었으니까.

머리에 묵욕 타월을 두르고 세안을 시작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 열렸어요. 들어와요. 배달왔습니다. 네. 잠깐만요. 금방 끝나니까 주방에 가져다 놓아 주실래요? 네. 잘생긴 총각이었다. 깔끔한 옷차림과 단정한 머리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가끔 느끼지만 참 편안한 인상이었다.

저… 올려놓았거든요. 음식값은 나중에 그릇 가지러 올 때 받아갈까요? 굉장히 조심스럽고 앳된 목소리였다. 아. 잠깐만요. 다 했어요. 그냥 드릴게요. 순간 돌아서다 세면대 위 양치컵을 건드렸다. 컵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굉음을 냈다. 예리한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머~! 앗…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사방이 반짝이는 유리 조각으로 뒤덮여 있었다.

괜찮으세요? 밖에서 총각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그런데 어떻게 하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저… 잠깐만 좀 도와줄래요? 문 좀 열어줄래요? 유리 파편 때문에 발을 뗄 수가 없어서요. 네. 문이 열렸다. 놀란 표정의 총각과 눈이 마주쳤다. 주방 옆에 청소기가 있거든요. 좀 가져다 주실래요? 그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소기를 가져와 능숙하게 유리 파편을 빨아들였다.

다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조심하세요. 첫 발을 내디디자 발바닥이 따끔하게 찔렸다. 아얏~! 금세 발바닥 주위가 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아야… 어떻게… 난 몰라… 피를 보자 갑자기 겁이 솟구쳤다. 순간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야야… 아… 아파… 흑… 아이구 조심하시지. 잠깐만요. 그대로 계세요. 주저 없이 총각이 욕실 안으로 들어서더니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세상에. 내가 그렇게 가벼웠던가. 그의 젊은 체취가 확 풍겨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땀 냄새와 섞인 건강한 남자 향이었다.

잠깐요. 제가 봐드릴게요. 발바닥 중앙이 깊게 베인 듯했다. 흐르는 피가 무서워 차마 보지 못했다. 작은 유리 파편이에요. 좀 깊게 베이셨네요. 약 없어요? 붕대라도. 그는 핀셋으로 파편을 빼내고 약을 바른 뒤 붕대로 정성스럽게 감아주었다. 자상한 손길이었다. 욕실에 묻은 피를 스스로 씻어낸다고 청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희 누님 같으신데요 뭐.

누나가 몇 살인데요? 큰 누님이 스물일곱이거든요. 하하하. 그럼 내가 그 누나하고 비슷해 보여요? 네… 몇 살 더 드신 것 같지만… 당황한 그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하하. 전 아마 댁 어머니 정도 나이일 거예요. 설마요. 저희 어머니는 마흔일곱인데요. 후후. 저도 그래요. 올해 마흔이에요. 그는 크게 당황했다. 괜찮아요. 오히려 칭찬으로 들려서 좋네요.

일어서려던 순간 발바닥이 다시 따끔하게 아파왔다. 아야~! 소파에 주저앉았다. 작은 유리 파편이 아직 남아 있었나 보다. 그가 다시 다리를 잡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상처를 누를 때마다 아픔이 찔러왔다. 아야야… 아파… 살살해요… 죄송해요. 그러다 그는 갑자기 내 발을 들어 올리더니 상처 부위를 덥썩 입으로 빨아들였다. 헉… 짜르르한 간지러운 자극이 발바닥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어머… 어머… 어떻게 더러운데… 그곳을 입으로…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뇨. 이렇게 해야 찾아요. 잠깐만요. 작은 유리 조각을 입술로 강하게 빨아당기다가 혀로 상처를 부드럽게 더듬었다. 그 부드러운 혀가 상처를 쓸어갈 때마다 묘한 전율이 번뜩였다. 움찔움찔. 다리가 저절로 떨려왔다. 가만 계세요. 움직이시면 잘 안 찾아져요. 그의 입가가 침으로 미끌거렸다. 다시 자극이 올라왔다. 이번엔 그의 손이 종아리를 부드럽게 감싸왔다. 으으음…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부르르 다리가 떨렸다.

아…… 헉… 흥분이 점점 커졌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뜨거운 기운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 깊숙한 곳을 강하게 때렸다. 그의 젊은 손길과 혀가 주는 야릇한 감촉에 몸이 달아올랐다. 마음은 안 된다고 외치는데 육체는 이미 그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다시 신음이 터져 나오며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도 느꼈을 것이다. 그의 얼굴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에 뜨거운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울컥 울음이 터졌다. 흑… 흐흑… 미안해요… 내가 미쳤나 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당황한 그가 일어서다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아… 아주머니… 미안해요… 저도… 참을 수가… 뜨거운 숨결과 탄탄한 젊은 몸이 나를 감쌌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이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순간 정신이 돌아왔다. 안돼… 안… 안돼… 학생… 난… 나이 많은 아줌마예요… 그를 힘껏 밀쳐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안해요… 학생… 난… 그가 당황한 얼굴로 사과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 이런… 이게 무슨 낭패람. 욕실로 들어가자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보였다. 그의 자상한 손길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차가운 물을 틀어 얼굴을 적셨다. 허전함과 서글픔이 밀려왔다.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거실에는 그가 놓고 간 배달함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화사한 개나리꽃이 봄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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