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행 열차
토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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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남행 열차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 사랑도 흐르네
깜빡 깜빡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그때 만난 그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
만날 순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간첩 아니 한민족의 자손이 아닐 것입니다.
흐느끼듯 부르는 김 수희의 모습만 보아도 만인의 남자들이 침을 질질 흐리며 어떻게 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저는 본디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이 노래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말 그대로 십 팔 번이 되었습니다.
먼저 저라는 년의 소개부터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저는 제 작년에 여상을 졸업하고 서울 변두리의 작은 직장에서 경리를 보는 여자입니다.
처음에 직장생활에 적응이 안 되어 무척 힘이 들었고 객지 생활 역시 힘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용돈 같은 용돈을 변변하게 받은 적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돈을
어떻게 적절하게 쓸 줄을 모르고 월급을 받으면 마치 공돈이 생긴 양 마구 쓰다 보니 월급을 타고서
얼마 안 가면 빈털터리가 되어 다른 직원에게 빌려쓰기 일수였습니다.
방세 주고 전기세 물세 그리고 잡다한 화장품에 또 보는 것마다 어쩌면 그렇게 먹고싶은 것이 그리도 많든지....
제 주머니가 무슨 화수분입니까?
그러니까 날마다 쪼들리는 살림살이를 하였습니다.
한가지 안 한 것은 사무실의 시제에는(시제라 함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항상 준비하고 있는 현금) 절대로 손을 안 대었습니다.
만약 시제를 마음대로 썼다면 아마 지금쯤은 제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쫓겨나 어떤 신세가 되었을지....
더구나 속도 모르는 엄마 아빠는 돈을 벌었으면 하다 못해 낡아빠진 팬티나 속옷이라도 한 벌 안 사보낸다고 성화고.....
정말 말 그대로 미치고 환장하고 폴짝 뛸 기분이었습니다.
가불도 한 두 번이지 수시로 할 수도 없고....
사무실에 저의 한참 고참인 강 대리님이 저에게는 제일 만만한 상대였습니다.
강 대리님은 제가 입사를 하자 저에게 많은 신경을 써 주시며 많은 것도 가리켜주었습니다.
아쉽게도 강 대리님은 제가 입사를 하기 일 년 전에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습니다.
하기야 강 대리님이 미혼이라 한들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 결혼까지는 힘든 나이였습니다.
물론 이십 살이 차이가 나도 결혼을 하기는 한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른 하고도 다섯이나 되는
강 대리님과 겨우 스물을 넘긴 제가 막상 결혼을 하겠다고 우리 부모님들에게 말하였다가는 다리뼈가 성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하여간 강 대리님은 자기 마누라 몰래 비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저는 돈이 필요하면 강 대리님에게 빌려쓰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여름에 접어들자 저도 돈을 쓰는 요령이 생겼고 얼마간의 저축도 되었습니다.
그 것은 오직 강 대리님의 배려와 지도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제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고 난 그 날 밤 저는 너무 좋아서 뜬눈으로 통장만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유양아! 너 이번 여름 휴가 때 어디 가니?점심을 먹고 빈 사무실에 혼자 엎드려 있는데 강 대리님이 물었습니다.
별다른 계획 없어요하고 말하자
그럼 나랑 피서 갈래?하시기에
사모님은 요?하고 놀라며 묻자
배가 불러서 어디도 가기 싫다는 군하며 웃었습니다.
그럼 제가 사모님 대 타?하고 묻자
아니 그냥 혼자 낚시 가는 것이 싫어서하시기에
어디로 가시는데요
응, 우리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물 위에 방갈로 시설이 잘 된 곳이 있거든하시기에
회사에 소문나면 저 시집 못 가요하고 웃자
임마, 아무려면 내가 너를 건들겠니?하며 제 볼을 가볍게 꼬집었습니다.
메롱 강 대리님, 우리 엄마가 남자는 다 도둑이라고 하던데요하며 혀를 내밀며 웃자
임마 다 그래도 나는 아니다하시기에
언제 갔다 언제 오세요?하고 묻자
휴가가 8월 1일부터니까 전날 밤에 출발하여 휴가 하루 전인 4일 날은 와야지하시기에
좋아요, 저도 가겠어요하자
비용은 걱정 마, 내가 다 준비할게 유양 너는 김치만 조금 가져와하고는
이 것은 너와 나만의 비밀이다 알겠지?하시기에
알았어요하고 웃었습니다.
휴가 전날 저는 김치와 간단한 밑반찬을 준비하고 여 벌의 팬티와 티 드리고 다른 옷도 가방에 싸서 출근을 하였습니다.
강 대리님도 점심을 먹고 나더니 저 혼자 지키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퇴근 후 길 건너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업무를 보러 간다고 외근을 나갔습니다.
오후 시간이 그렇게 안 가는 것은 아마 제가 그 공장에 입사를 하고는 처음이었습니다.
전 종업원의 여름 휴가비를 봉투에 담고 그 것을 각 부서 책임자들에게 가져다 주자 퇴근 시간이 거의 임박하였습니다.
유 양아 내 휴가비간 대리님이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오더니 손을 벌렸습니다.
여기 있어요하고 봉투를 건네자
땡큐하고 받으며 윙크를 하였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다른 부서의 여 직원들이 한잔하자고 꼬드겼으나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을 와 강 대리님이 이야기한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습니다.
유 양 얼른 타라강 대리님의 아반테 승용차가 저의 앞에 서며 창문을 통하여 재촉하였습니다.
네하고는 차에 오르자 강 대리님은 행여 누가 볼세라 쏜살같이 차를 몰았습니다.
김치 쉴 건데...하고 말을 흐리자
조금 더 가서 아이스박스에 얼음 채우고 넣자하더니 한참을 가 얼음 집 앞에 차를 세우기에
저도 강 대리님을 따라 내려 얼음은 채운 아이스박스에 김치를 넣자
참 이 모자 써라하고 창이 큰 모자를 주었습니다.
모자를 쓰자
멋진데하며 웃기에
미모가 받쳐주니까 그렇죠하고 따라 웃자
참 이제부터 넌 내 동생이다, 날 부를 때는 오빠라고 불러하기에
알았어 오빠하고 말하자
역시 내 동생은 똑똑하단 말이야하며 따라 웃었습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다시 국도로 들어서더니 한참을 더 달리자 읍 소재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하자 강 대리님은 큰 슈퍼 앞에 차를 세우고 저를 데리고 들어가더니 갖가지 반찬과
라면 쌀 술 돼지고기 그리고 잡다 한 것을 샀습니다.
다시 차는 한참을 달리더니 밤이 깊지는 않았지만 눈에 확 트이는 넓은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정차시키더니 사무실로 보이는 곳으로 갔습니다.
어서 오세요하고 사무실에 있던 남자가 강 대리님과 악수를 하는 것으로 보아 안면이 있는 듯 하였습니다.
방갈로 예약 한 것 어느 것이죠?하고 강 대리님이 묻자
그런데 사모님하고 같이 안 오셨네요하고 그 남자가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아~만삭이라 동생을 데리고 왔습니다, 은아야 인사해라하기에
안녕하세요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자
친동생입니까?하자
그럼요하고 말하자
아~그래요, 짐 챙겨서 배로 갑시다하자
가자 은아야 짐 챙기게하기에
그래 오빠하고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하고 강 대리님과 차로와 낚시 가방을 비롯한 짐을
낑낑거리며 배가 정박해 있는 곳으로 옮기자 그 분이 배의 시동을 걸어 저수지의 물을 가르며 가더니
아담한 방갈로 옆에 배를 정박하기에 간 대리님과 저는 짐을 그 방갈로에 내렸습니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하고 그 사람은 다시 물살을 가르며 배를 몰고 떠났습니다.
방갈로 안에는 잠을 자도록 나무로 제법 아담한 방이 있었고 간단한 취사 도구도 마련이 되어 있었으며
식수 통도 가득 물을 담아 우리를 반겼습니다.
저녁을 안 먹어 시장하지?하고 묻기에
응하고 대답을 하자
오늘 저녁은 대충 라면으로 때우고 술이나 마시자하기에
내가 끌일게하자
이런데 나오면 여자는 편히 있고 남자가 하는 거야하고는 일어나더니 냄비에 물을 넣고 끓였습니다.
그 사이 저는 준비한 김치와 밑반찬을 방갈로 바닥에 펼쳤습니다.
아니 김치만 준비하라고 했더니 너무 많이 준비했다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4박 5일을 김치만 먹어요하고 웃자
여기서 전화만 하면 다 가져오거든하기에
파는 음식은 맛없어요하자
자~그럼 먹자하더니 공기에 라면을 퍼 주었습니다.
자~술도 한잔 받고하며 술도 따라주기에 저도 간 대리님의 잔을 채워주었습니다.
4박 5일을 즐겁게 보내자는 의미로 브라보하고 잔을 들고 외치시기에 저도 같이 잔을 들어
강 대리님의 잔에 박치기를 시키고 라면을 안주 삼아 마셨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산짐승들과 산새들 그리고 처량하게 울어대는 개구리의 울음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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