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실점 재앙' 이 악문 이승엽…포수 사인 무시한 영건의 참혹한 대가
토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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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 정철원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은 대량 실점 재앙을 예감한 듯 벤치에서 이를 악물었다. 의도가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팀플레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철원(24)은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정철원은 24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 0-0으로 맞선 8회초 등판했다. 두 팀 모두 좀처럼 점수를 뽑지 못하고 있었고, 당연히 1점 싸움으로 갈 가능성이 컸다. 이 감독은 셋업맨 정철원을 8회에 바로 붙이고, 불펜에는 마무리 홍건희가 몸을 풀게 했다. 선수단에 이 경기를 반드시 잡자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장면이었다.
바람과 달리 정철원은 쉽게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했다. 김현준과 이재현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무사 1, 2루 위기에 놓였다. 여기까지는 사실 문제없었다. 투수라면 누구나 안타를 얻어맞고 실점한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다음 장면이었다. 구자욱이 희생번트를 시도할 때였다. 타구가 정철원 앞으로 바로 굴러갔고, 포수 장승현은 1루로 던지라는 사인을 크게 보냈다. 1루로 송구하는 게 정석이기도 했고, 3루수 허경민이 3루를 비워두고 앞으로 나와서 수비를 하는 상태였다. 아무리 정확히 3루로 송구한다 한들 2루주자 김현준을 3루에서 태그아웃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정철원은 포수의 사인을 무시한 채 3루로 송구했다. 악의가 있었을 리는 없다. 자초한 고비를 넘기고, 무실점으로 틀어막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몸을 3루로 돌렸을 것이다. 정철원은 고교 시절부터 투수인데도 빼어난 수비 실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던 만큼 실수 없이 주자를 정확히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과욕이었다. 공은 허경민이 몸을 날려 간신히 잡은 덕분에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허경민이 3루로 재빨리 팔을 뻗어도 김현준을 태그아웃하긴 어려웠다. 무사 만루로 상황은 더더욱 악화됐다.
▲ 두산 3루수 허경민이 3루에서 어떻게든 삼성 선행주자 김현준을 태그하려 했으나 세이프가 됐다. ⓒ 연합뉴스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던 이 감독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끝까지 몸을 날렸던 3루수 허경민은 얼굴이 굳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정철원의 몸이 이미 3루로 돌아간 순간에도 1루로 던지라고 끝까지 외쳤던 장승현도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철원 역시 뒷머리를 감싼 채 상황이 잘못된 것을 직감한 표정을 지었다. 팀플레이 약속을 어긴 게 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 장면이었다.
결국 가장 흔들린 건 정철원 본인이었다. 무사 만루 호세 피렐라 타석에서 폭투를 저질러 0-1 선취점을 내줬다. 강민호를 자동고의4구로 거르며 1사 만루 작전을 썼을 때는 강한울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해 0-2가 됐다.
결국 이 감독은 정철원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리고, 이형범을 올렸다. 이형범이 오재일과 김태군에게 연달아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해 0-6까지 벌어졌고, 결국 1-6으로 허무하게 패했다.
2018년 두산에 입단한 정철원은 지난해 1군에 데뷔한 뒤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특유의 강심장과 시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를 앞세워 필승조로 자리를 잡았다. 58경기에서 23홀드, 3세이브, 4승, 72⅔이닝,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올해도 셋업맨으로 활약했고, 23경기에서 7홀드, 4승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공헌한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마운드에서 당차고 노련해 보였던 정철원도 이날만큼은 '영건'이란 단어를 다시 꺼내게 했다. 데뷔 이래 가장 뼈아픈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⅓이닝 2피안타 2사사구 5실점을 기록해 개인 한 경기 최다 실점 신기록을 작성했다. 종전 기록은 2022년 9월 16일 대구 삼성전 4실점(1이닝)이었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2.31에서 4.18로 폭등했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정철원은 이날 아픈 경험을 발판 삼아 한층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으면 그뿐이다. 물론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