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최초, MLB 역사상 10명뿐인 진기록…KIA전이라 실패할 작정이었다고? 왜?
토토군
0
39
0
2023.09.16
▲ 강승호 ⓒ 두산 베어스
▲ 리버스 사이클 기념구를 든 강승호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광주, 김민경 기자] "무조건 (1루) 베이스를 돌았을 것 같아요."
두산 베어스 내야수 강승호(29)는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진기록을 눈앞에 두고 실패할 마음부터 먹고 있었다. 개인의 기록보다 팀 승리가 더 간절하고 중요해서였다. 두산은 15일 광주에서 KIA 타이거즈와 시즌 운명이 걸린 3연전의 첫 경기를 치렀다. 경기 전까지 두산은 6위, KIA는 4위였다. 두 팀의 거리는 1경기차에 불과했다. 이번 주말 3연전을 망치면 가을야구 탈락과 직결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승호가 도전하는 기록은 '리버스 사이클(reverse cycle)'이었다. 보통 한 경기에서 단타-2루타-3루타-홈런을 순서에 상관없이 모두 치는 것을 히트 포 더 사이클이라 부른다. 이때 단타-2루타-3루타-홈런을 순서대로 쳐서 완성한 히트 포 더 사이클을 '내추럴 사이클(natural cycle)'이라 부르고, 반대로 홈런-3루타-2루타-단타 순서로 쳐서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완성하면 리버스 사이클이라 부른다. KBO리그에서는 리버스 사이클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강승호 이전에 달성한 선수도 없었다.
강승호는 1-1로 맞선 3회초 홈런포를 가동했다. 2사 후에 KIA 선발투수 윤영철에게 좌월 홈런을 뺏었다. 볼카운트 0-1에서 2구째 체인지업이 높게 들어오자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두산이 2-1로 앞서 나가는 발판이 된 값진 한 방이었다.
홈런으로 예열을 마친 강승호의 방망이는 갈수록 더 뜨거워졌다. 4회말 선발투수 브랜든 와델이 KIA 이우성에게 만루 홈런을 얻어맞아 2-5로 뒤집히고 맞이한 5회초 공격 기회였다. 양의지의 안타와 도루, 김재환의 볼넷으로 만든 1사 1, 3루 상황에서 강승호가 우중간 2타점 적시 3루타를 날려 4-5까지 따라붙었다. 추가로 허경민의 동점 적시타까지 터져 5-5 균형을 맞췄다. 강승호의 3루타는 이날 역전승으로 가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7회초 진기록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강승호는 1사 후 좌익수 왼쪽에 떨어지는 2루타를 쳐 히트 포 더 사이클까지 단타 하나만을 남겨뒀다. 그리고 6-6으로 맞선 9회초 마지막 타석을 맞이했다. 1사 후 호세 로하스가 볼넷을 얻어 걸어나간 뒤였다. 두산이 승리하려면 단타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강승호는 마음속으로 무조건 장타를 쳐야한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강승호의 장타를 허락하지 않았다. 강승호의 타구는 KIA 마무리투수 정해영 앞에서 굴절돼 1루수 앞으로 굴러가는 내야안타가 됐다. 마지막 퍼즐이었던 단타가 완성된 순간이었고, 1982년 KBO리그 출범 이래 최초로 리버스 사이클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두산은 이어진 만루 상황에서 김인태와 박준영의 연속 밀어내기 볼넷에 힘입어 8-6으로 승리했다. 두산은 5연승을 달리고도 6위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5위로 내려앉은 KIA와 경기차를 없애면서 5위권 진입 희망을 더 키웠다.
▲ 강승호ⓒ 두산 베어스
▲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한 강승호 ⓒ 두산 베어스
강승호는 생애 첫 히트 포 더 사이클을 리버스 사이클로 달성한 뒤 "(기록을) 알고는 있었는데, 팀이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라서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로하스가 1루에 있어서 장타를 생각하고 들어갔다"고 했다. 1루주자가 못해도 3루까지는 가게 해서 KIA를 더 압박하는 그림을 그렸다는 뜻이었다.
장타 코스면 무조건 끝까지 뛰었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강승호는 "점수차가 많이 나고 여유가 있었다면 의식을 많이 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장타가 나왔으면 무조건 뛰었을 것이다. 중요한 순위 경쟁을 하고 있는 KIA와 하는 경기였고, 점수차가 크게 나지 않아서 무조건 베이스를 돌았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실패할 결심을 했어도 막상 KBO리그에 첫 발자취를 남기니 영광이었다. 강승호는 "야구를 하면서 최초 기록을 하나 정도는 세워서 기분 좋다. 앞으로도 많은 좋은 기록을 쌓았으면 좋겠다"고 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리버스 사이클은 100년 념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딱 10명만 달성한 귀한 기록이다. 1885년 헨리 라킨이 최초로 기록했고, 1887년 비드 맥피, 1904년 샘 메르테스, 1937년 지 워커, 1939년 아키 본, 1948년 잭키 로빈슨, 1968년 짐 프레고시, 2006년 루크 스캇, 2008년 카를로스 고메스, 2016년 라자이 데이비스가 차례로 달성했다. 루크 스캇은 2014년 KBO리그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외국인 타자로 뛰었던 선수다.
내추럴 사이클도 흔한 기록은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5차례 달성 사례가 있었고, KBO리그에서는 딱 한 차례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 김응국이 1996년 4월 14일 사직 한화 이글스전에서 단타-2루타-3루타-홈런을 차례대로 쳤다.
강승호는 두산 역대 6번째 히트 포 더 사이클을 달성한 타자다. 두산은 강승호 덕분에 KBO리그에서 히트 포더 사이클 타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구단으로 이름을 올렸다. 2위는 삼성 라이온즈로 모두 5명을 배출했다.
OB 시절 임형석(1992년 8월 23일 잠실 롯데전)이 베어스 최초로 히트 포 더 사이클의 주인공이 됐고, 이종욱(2009년 4월 11일 짐실 LG전) 오재원(2014년 5월 23일 잠실 한화전) 박건우(2016년 6월 16일 광주 KIA전) 정진호(2017년 6월 7일 잠실 삼성전)가 차례로 달성했다.
▲ 양석환과 호세 로하스가 강승호에게 물을 붓고 있다. ⓒ 두산 베어스
▲ 물을 맞은 강승호 ⓒ 두산 베어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오늘(15일)은 강승호의 날이다. 사이클링 히트라는 기록도 대단하지만, 그 안타들이 모두 팀이 꼭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왔다. 팀과 개인 모두에게 큰 의미가 있다. 개인 처음이자 역대 30번째 진기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강승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수비에서 나 때문에 준 점수가 있어서 홈런과 3루타를 쳤지만, 그래도 조금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들뜨지 않고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며 다음 경기에서는 수비에서도 안정감을 더하겠다고 다짐했다.
KIA와 남은 2경기도 치열하게 덤벼 가능한 많은 승리를 챙기려 한다. 강승호는 "경기 끝날 때까지 역전 당해도 질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선수단 전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작년에 사실 9위를 했고, 확실히 힘든 경기를 하고 있으나 순위 싸움을 하는 자체가 좋고 재미있기도 하다. 다른 경기와 비교해 순위 싸움을 하는 팀과 경기를 하면 긴장감이 배가 되지만,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승호는 평소 기념구를 잘 보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KBO리그 데뷔 첫 안타 기념구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래도 이날 받은 KBO 최초 리버스 사이클 기념구 만큼은 잘 보관해 보려 한다.
강승호는 "초등학교 이후로는 보관하고 있는 기념구가 없는 것 같다. 이 기념구는 아내에게 잘 갖다 주겠다"고 답하며 웃었다.
▲ 강승호 ⓒ 두산 베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