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의 장(長)딴지] 흥국생명, 어이가 없네
토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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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3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은 지난 2일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의 동반 사퇴를 발표했다. 사실상 경질이다. 선두권을 달리며 순항하던 팀의 사령탑을 하루아침에 내쳤다. 납득할만한 이유조차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감독의 고유권한을 침범하는 등 월권을 행사했던, 감춰온 민낯만 드러냈다. 흥국생명이 배구계를 흐리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감독 경질
권순찬 감독은 2일 오전 구단으로부터 갑작스레 사퇴를 통보받았다. 선수단과의 갈등이나 내부 불화는 전혀 없었다. 권 감독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팀 성적은 더더욱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올 시즌 흥국생명은 권순찬 감독과 함께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6라운드 도중 여자부가 조기 종료된 가운데 흥국생명은 7개 팀 중 6위(10승23패·승점 31점)에 그쳤다. 8시즌 동안 동행했던 박미희 감독과 이별하고 권순찬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올 시즌 2위(14승4패·승점 42점)로 단숨에 우승권까지 뛰어올랐다. 꾸준히 선두 현대건설(16승2패·승점 45점)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흥국생명은 권 감독을 고문직으로 물러나게 하고 이영수 수석코치를 감독대행 자리에 앉혔다. 임형준 흥국생명 구단주는 보도자료를 통해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팀을 이끌어온 권순찬 감독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둘러대기만 했다.
‘순순히 구단의 말을 듣지 않아서’일 확률이 더 높다. 그간 권순찬 감독의 선수 기용에 꾸준히 간섭해왔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권 감독은 구단의 지시를 거부했다. 소신대로 라인업을 짜고 경기를 운영했다.
흥국생명은 이번 사태를 통해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했다. 어떤 감독도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구단, 입맛대로 감독을 휘두르려는 구단이 되기를 자처했다.
◆선수와 팬도 피해자
선수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됐다. 권 감독의 경질 소식에 크게 동요했다. 일부 선수들이 경기 보이콧까지 고려할 정도로 충격이 상당했다.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할 시점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선두 경쟁에 불이 붙었는데 구단이 제 손으로 사기를 떨어트렸다. 그동안 선수들이 쌓아온 땀과 노력이 구단의 훼방으로 물거품이 될 위기다.
선수들은 상처를 회복할 시간도 없이 코트 위에 서야 한다.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이고 당장 오는 5일 GS칼텍스와의 경기가 예정돼있다. V리그는 3일 3라운드를 마치고 4일부터 4라운드에 돌입한다. 정규리그의 반환점을 도는 동안 선수들의 몸과 마음에도 피로가 쌓였다. 이제는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극복하는 데 또 다른 힘을 써야 한다.
매 경기 관중석을 가득 채웠던 팬들의 마음에도 생채기가 났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김연경의 복귀와 팀 성적 상승으로 흥행을 주도했다. 압도적인 관중 수 1위를 달렸다. 홈에서 펼친 10경기에서 총 관중 4만3800명, 평균 4380명을 기록했다. 커지던 열기에 구단이 찬물을 끼얹었다. 실망스러운 행보다.
사진=KOVO / 권순찬 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