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ISSUE] 4달 전 경기 뛴 '수원 레전드', 독이 든 성배 이어받아

[스포티비뉴스=박건도 기자] 불과 4달 전 경기를 뛰었던 플레잉코치가 감독 대행직을 맡게 됐다. 강등 위기에 빠진 수원 삼성 얘기다.

김병수 수원 제8대 감독은 26일 경질됐다. 지난 5월 지휘봉을 잡은 지 142일 만이다. 수원은 강등권 탈출을 위해 데려온 소방수를 시즌 막바지 경질하는 초강수를 뒀다.

구단 레전드 염기훈이 지휘봉을 이어받는다. 수원은 26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염기훈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할 것이라 밝혔다. 염기훈은 올해 플레잉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동 시즌 말미에는 감독 대행까지 맡게 됐다.

수원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염기훈이다. 수원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 FA컵 3회(2010, 2016, 2019) 우승 당시 염기훈은 두 차례(2010, 2016) 최우수 선수(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전성기 나이가 지났음에도 예리한 킥력과 노련한 경기 운영 능력을 선보이며 수원 팬들에게 오랜 지지를 받은 수원의 대표 격인 선수다.

전례 없는 인사다. 지도자로는 플레잉코치 경력이 전부인 염기훈 대행은 강등 위기 탈출이란 중책을 맡게 됐다. 파이널 라운드까지 총 7경기가 남은 현재 수원은 승점 22로 11위 강원(25점)에 이어 최하위다. 매 경기가 살얼음판이다.

오동석 수원 단장은 염기훈 대행 체제 전환을 이유로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앞으로 남은 7경기 동안 과연 반전할 수 있는 지 고민하고 검토한 결과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라고 들었다. 이어 "구단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하고 시즌을 마친 후 서포터스들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라고 배수의 진을 쳤다.



불과 4달 전에도 경기를 뛰었다. 염기훈 대행은 지난 4월 대구FC전에 이어 5월 강원FC, 울산 현대전에서 그라운드를 누볐다. 갑작스럽게 강등 위기 탈출 바통을 이어받은 염기훈 대행은 "오랫동안 수원과 함께 하면서 무엇을 해야 팀이 좋아질 수 있을지 잘 알고 있는 만큼 강등 탈출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선수들에게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다 함께 서로를 도와서 단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자'고 주문했다. 지난 일은 잊고 오늘부터 앞으로 달리는 일만 생각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수원 구단에 따르면 염기훈 대행은 26일 선수단 미팅과 첫 훈련까지 진행했다. 주장단 교체도 단행했다. 베테랑 미드필더 김보경이 완장을 차고 고승범, 불투이스, 이종성이 부주장을 맡게 됐다.

올 시즌만 두 번째 감독 경질이다. 수원은 시즌 초 성적 부진을 이유로 이병근 제7대 감독과 결별을 알렸다. 구단의 전설적인 수비수로 통하는 이병근 감독은 불명예스럽게 구단을 떠나게 됐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겠다"라던 각오는 1년을 가지 못했다. 이병근 감독은 수원 감독 부임 후 364일 만에 팀을 떠났다.

위기 타파를 외친 수원은 전술가로 통하는 김병수 감독을 데려왔다. 2010년 윤성효 감독부터 이병근 감독까지 이어졌던 '리얼 블루' 기조까지 깼다. 13년 만의 '비 수원 출신'이었다. 수원은 "김 감독이 촉박한 시간에도 빠르게 선수단을 쇄신하여 수원을 본 궤도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며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김병수 감독 부임 후에도 수원은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 시즌 초 이병근 감독 체제(11경기 승점 5)보다 성적이 어느 정도 반등(20경기 승점 17)하고도 강등권을 탈출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강원과 수원FC, 제주 유나이티드도 같은 시기 부진했지만, 7경기를 남은 현재 여전히 최하위는 수원이다.

수원의 부진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곪은 상처가 터졌다는 것이 주 시선이다. 수원을 오래 지켜본 익명의 관계자는 수원 감독직에 대해 "수원 감독직을 잡는 대부분 지도자는 부임 최고 이유로 구단에 대한 애착이라 들었다"라며 "하지만 막상 부임하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다더라. 현실과 낭만이 달라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라고 짚었다.

지난해에도 강등 직전까지 몰렸다. 오현규(22, 셀틱)가 승강 플레이오프 FC안양과 최종전에서 극적인 골을 터트리며 수원을 위기에서 구했다. 수원을 지켰던 소년 가장은 유럽으로 도전을 위해 떠났다. 대체자로 데려온 외국인 공격수 뮬리치는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으로 줄곧 풀타임을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병준과 바사니까지 부진하며 수원의 빈공 문제는 계속 이어졌다.

갈수록 줄어드는 지원과 함께 성적까지 곤두박질치자 수원은 감독 교체라는 칼만 계속 꺼내 들었다. 급히 선임된 지도자들은 저마다 위기 타파를 위해 계속된 전술 변경도 서슴지 않았다. 장기적인 팀의 방향성을 제시할 시간조차 없었다.



김병수 감독은 다를 듯했다. 최초 계약 기간은 내년 말까지였다. 김병수 감독은 부임 후 기자회견에서 "당장 큰 변화는 어렵다"라며 "누군가가 (수원 감독을)해야 한다면, 도전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배울 것 같더라. 칭찬보다는 욕을 많이 먹을 것이다. 당연하다. 성장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미래를 내다보는 발언을 남겼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했던 부분이 먼저 터졌다. 김병수 감독은 2024년 말까지인 계약 기간에 대해 "내년이라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사실 제게는 좋은 형태는 아니다. 힘든 상황이다. 해낸다면 계약 기간은 큰 의미가 없다. 당장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위기 타파에 먼저 초점을 맞출 것이라 강조했다. 허나 김병수 감독은 계약 기간 3분의 1도 채우지 못한 채 씁쓸한 뒷모습을 남기며 수원을 떠나게 됐다.

일단 수원은 급한 불을 또 끄기 위해 구단 레전드를 일선에 뒀다. 강등 탈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구단의 설명이다. 오동석 단장이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도 붙였지만, 팬들의 시선은 싸늘함이 주를 이뤘다.

파이널 라운드까지 총 7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최근 4연패에 빠진 수원이다. 분위기를 추스를 틈도 없이 수원은 오는 30일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을 떠난다. 시기나 상황으로 보아 구단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염기훈 대행은 독이 든 성배를 이어받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