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 사퇴 소식에 가비·칸셀루 펑펑 울었다…바르셀로나, 혼돈의 도가니
토토군
0
39
0
2024.01.29
▲ 사비 에르난데스 감독.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선수단 전체가 술렁인다. 급기야 눈물을 보이는 선수들까지 나타났다.
사비 에르난데스 감독이 물러난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직접 발표했다.
후폭풍이 거세다. 스페인 매체 '문도 데포르티보'는 29일(이하 한국시간)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사비 에르난데스 감독 사퇴 소식에 동요하고 있다. 파블로 가비는 SNS에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특히 사비 감독이 라커룸에서 왜 자진 사퇴를 결정했는지 설명하는 순간엔 몇몇 선수들이 눈믈을 보이기도 했다. 가비, 주앙 칸셀루는 사비의 사임을 듣고 가장 크게 운 선수들이다"라며 "2022년 7월 여름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쥘 쿤데도 크게 흔들렸다. 당시 바르셀로나와 첼시가 쿤데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쿤데는 사비 감독 때문에 바르셀로나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사비 감독은 지난 28일 임시 홈구장인 에스타디 올림픽 루아스 콤파니스에서 열린 2023-2024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22라운드에서 비야레알에 3-5로 패한 뒤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올 시즌 최종 성적에 관계 없이 팀을 떠나겠다는 내용이었다.
바르셀로나도 사비 감독의 의견을 존중했다.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사비 감독이 오는 6월 30일까지만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수행할 것이다"라며 "그는 비야레알과 경기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입장을 전했다"고 알렸다.
이유는 성적 부진. 이번 시즌 전반기 부진으로 비판 여론이 상당했던 사비 감독은 새해 들어 반등을 노렸으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스페인 슈퍼컵) 준우승에 머물며 자존심이 구겨졌다. 대회를 불문하고 연이은 졸전이 반복되자 결단을 내렸다.
사비 감독이 사퇴하기 앞서 바르셀로나는 또 다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비야레알전에서 상대와 무려 8골을 주고받는 난타전을 펼쳤다. 그만큼 공수 어느 하나 안정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전반 중반 한 차례 골망이 흔들렸던 바르셀로나는 오프사이드 덕분에 한숨 돌렸으나 끝내 선제 실점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전반 41분 상대의 크로스 공격에 제공권이 밀리면서 골을 내줬다.
전반이 끝나고 전열을 정비한 바르셀로나는 후반 시작과 함께 파우 쿠바르시, 페드리, 주앙 칸셀루 등을 투입했다. 그런데 실수에 발목이 잡혔다. 후반 9분 칸셀루가 상대의 패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뒤로 흘렸고 비야레알 일리아스 아호마시에게 또 실점했다.
두 골 차이가 나자 다급해진 바르셀로나는 페란 토레스를 투입하면서 공세를 시작했다. 다행히 토레스의 발끝에서부터 만회골이 나왔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에게 패스가 부정확하긴 했지만 이 공이 더 좋은 위치의 일카이 귄도안에게 연결되면서 골이 나왔다.
만회골로 기세가 오른 바르셀로나는 빠르게 따라붙었다. 후반 23분 페드리가 귄도안의 발 맞고 나온 볼을 문전에서 정확하게 마무리했다. 두 골 차이를 따라붙자 이번에는 비야레알이 흔들렸다. 동점골을 내주고 3분 만에 자책골을 넣으면서 역전을 허용했다.
바르셀로나가 3-2로 앞선 상황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후반 38분 기어코 동점골을 내줬다. 이대로 끝내야 했는데 바르셀로나는 후반 추가시간 자멸했다. 추가시간도 무려 9분이 흘렀을 무렵 역전골을 내주더니 경기 종료 직전에 쐐기골까지 허용하면서 3-5로 믿기지 않는 패배를 당했다.
이날 경기 전부터 바르셀로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13승 5무 3패 승점 44점을 기록해 선두 레알 마드리드(승점 54점)와 무려 10점의 차이를 보였다. 아직까지 리그에서 1패만 기록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페이스를 고려하면 바르셀로나의 선두 추격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지난 시즌 4년 만에 라리가 챔피언을 탈환하며 연속 우승을 노렸던 바르셀로나 입장에서는 한 해 농사가 실패에 가까워진 셈이다.
경기를 마치고 회견장에 들어선 사비 감독은 결심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왔다. 변화가 필요하다. 바르셀로나 일원으로 내가 떠날 시간이 됐다고 본다"며 "구단 고위층과 대화를 나눴다. 6월 30일에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사임 의사를 알렸다.
사비 감독은 "이 결정은 모든 상황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책임감을 느낀다. 모든 일이 잘 진행됐다고 생각하며 우리 프로젝트는 6월 30일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항상 클럽을 위한 해결책이 되고 싶다. 문제가 되기는 싫다. 2년 3개월 전에는 내가 해결책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최선이 6월 30일에 떠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 사비 감독이 유종의 미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 내 마지막 4개월 동안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게 노력하겠다. 선수단이 많이 경직되어 있는데 곧 괜찮아질 것"이라며 "사실 이 결정을 오래 전에 내렸다. 이제 이를 밝히게 돼 홀가분하다. 기회를 주신 조안 라포르타 회장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고위층과도 합의를 봤다. 바르셀로나도 사비 감독의 결정에 동의한 바다. 사비 감독은 "회장에게 말씀을 드렸고 대화를 잘 마쳤다. 그동안 신뢰를 받았지만 이제 때가 됐다.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하다. 4개월은 더 투자해서 좋은 시즌으로 마무리하겠다. 그때까지는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채찍질했다.
사비 감독이 3년여의 시간만으로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지난 2021년 위태롭던 바르셀로나를 구할 소방수로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로날드 쿠만 감독이 성적 부진을 겪자 바르셀로나 보드진은 선수 시절 숱한 영광을 안겼던 레전드를 찾았다.
선수 시절 사비 감독은 바르셀로나의 색깔인 티키타카를 완성한 천재 미드필더였다. 유스 출신으로 1997년에 1군 데뷔 이후 2015년까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통산 767경기를 뛰었다. 라리가 우승 8회를 포함해 통산 25번의 우승의 주역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색채인 짧고 빠른 패스로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플레이의 마에스트로로 상당한 업적을 냈다.
바르셀로나는 로날드 쿠만 감독이 지휘하면서 티키타카의 철학이 희석됐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에 그라운드에서 지휘관으로 황금기를 열었던 사비 감독이라면 다시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조금은 초보 지도자였던 그에게 기회를 줬다. 그때까지 사비 감독은 카타르 알 사드에서 짧게 감독직을 수행한 게 전부였다.
구단 레전드 출신인 사비 감독을 통해 흐트러졌던 분위기를 다잡는 데 성공했다. 사비 감독은 바르셀로나에 오자마자 "우리는 세계 최고의 클럽이며 많은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모든 일이 잘되도록 내 목숨을 바치겠다"고 강렬한 취임 일성을 전했다.
처음 흐름은 괜찮았다. 2021-2022시즌 뒤늦게 발동을 붙이면서 바르셀로나를 리그 2위로 마치게 했다. 점차 가능성을 본 사비 감독은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에 값진 트로피를 안겼다. 스페인 슈퍼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한 데 이어 라리가에서도 4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섰다. 의미가 큰 우승이었다. 바르셀로나는 라리가를 놓쳤던 기간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재정에 타격을 입으면서 팀을 대표하던 리오넬 메시를 떠나보내야 했다. 메시뿐이 아니었다. 큰돈을 들여 영입했던 앙투안 그리즈만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임대로 보냈다. 에메르송 로얄 등 미래의 자원들도 팀을 떠나면서 스쿼드 뎁스가 눈에 띄게 줄었다. 멤피스 데파이를 급히 데려왔지만 모든 대회 우승을 노리는 팀에 적합하지 않다. 페드리 등 젊은 핵심 선수들까지 부상으로 이탈했다.
바르셀로나는 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주앙 펠릭스 임대와 같은 굵직한 영입으로 힘을 보탰다. 사비 감독도 지난 시즌에 실패했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좋았던 흐름이 유지되지 않았다.
작년만 하더라도 화끈한 경기력은 아니어도 적은 실점을 바탕으로 지키는 축구가 가능했는데 올 시즌에는 후방이 완전히 무너졌다. 사비 감독을 통해 중원을 장악하는 플레이를 원했는데 오히려 철학과 반대되는 접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바르셀로나는 리그 선두권에서 멀어졌고, 기대한 챔피언스리그 역시 기복 있는 경기력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16강에 진출한 상황이지만 우승 전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새해 들어 반등을 노렸는데 타이틀 획득에도 실패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스페인 슈퍼컵에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 굴욕적인 1-4 패배를 당했다. 꼬박 1년 전 레알 마드리드를 잡고 우승하면서 리그 정상 탈환까지 박차를 가했던 바르셀로나였는데 전혀 다른 상황에 내몰렸다.
사비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 한층 커졌다. 이번 시즌 내내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 경질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대패는 결정을 내릴 때가 왔다는 분석도 따른다. 사비 감독도 여론을 모르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에 패한 뒤 그는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비난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는 바르셀로나고 비판을 받는 데 익숙하다"며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우승 트로피까지 상대에게 내줬기에 오늘 결과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받아들였다.
스페인 슈퍼컵을 내줬을 때만 해도 바르셀로나는 사비 감독을 도중에 경질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데쿠 바르셀로나 단장은 "차비 감독에 대한 경질설은 말이 안 된다. 여전히 회장과 구단의 신임을 받고 있다. 이번 슈퍼컵에서 1-4로 진 건 아쉽지만 지금은 경질이 아닌 다음 경기를 생각할 때"라고 했다. 스페인 매체 '스포르트'도 "조안 라포르타 바르셀로나 회장은 사비 감독을 계속 신뢰한다"며 "라이벌에 당한 패배는 언제나 고통스럽다. 알 수 없는 위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사비 감독은 라포르타 감독의 격려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르셀로나는 당장 과감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즌이 끝나고 성적에 따라 결정할 계획"이라며 "바르셀로나는 아직 3개 대회에서 생존해 있고 우승 가능성도 있다. 구단 고위층은 사비 감독이 현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사비 감독 역시 "힘든 패배지만 이전에도 여러번 지면서 일어났다. 다시 경쟁력을 찾아 바르셀로나의 본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고, 달라질 자신감도 있다. 앞으로 라리가, 챔피언스리그, 코파 델 레이(국왕컵)를 위해 싸울 것이다. 나와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라고 힘줘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와 국왕컵 우니오니스타스 데 살라망카(3-1), 라리가 레알 베티스(4-2)전 승리로 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최근 아틀레틱 빌바오에 2-4로 패해 국왕컵에서 탈락하며 무관에 가까워졌고, 이날 비야레알에 충격적인 5실점 패배를 당하면서 사비 감독도 힘을 잃었다. 결국 이번 시즌을 끝으로 바르셀로나와 동행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